버스가 매끈한 고속도로 위를 요동 없이 달리기 때문에 예쁜 안내양이 따라 주는 주스가 한 방울도 잔 밖으로 흐르지 않았다는 탑승객의 경험담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 당시는 만수동에서 석촌입구(간석오거리)까지의 비포장도로를 30분 간격으로 시내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며 운행했다.
그나마 아스팔트로 포장된 경인국도는 여기저기 파손이 심해 이를 피해 곡예운행을 해야 하는 관계로 버스 승객들은 운전기사의 핸들 조작에 따라 전후좌우로 쏠리던 시절이었다.
고속버스 정기승차권을 구입해 통학을 하는 친구들이 귀족처럼 여겨졌던 경인고속도로를 40년이 지난 지금은 승용차를 직접 몰고 달리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출퇴근 시간의 경인고속도로는 도로가 아니라 주차장이라는 극단적인 원성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주말과 일요일에 서울에서 열리는 친지의 예식에 참석하기 위해 운전대를 잡는 순간마다 ‘혹시나’하는 불안에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는 시민은 없을 것이다.
경인고속도로의 차량 흐름을 정체시키는 목동 지하차도의 병목현상 때문이다.
30~40분이면 충분한 통행시간이 1시간 이상 지체되는 날은 영락없이 2차선인 지하차도에 고장 난 차량이 한 차선을 가로막고 있었다.
출퇴근 시간, 영등포경찰서 앞에서 경인고속도로로 진입할 때 30분 이상 정체되는 이유도 4차선에서 2차선으로 좁아지는 목동지하차도의 병목현상이 가장 큰 요인이다.
차량 흐름이 물 흐르듯 원활하다면 구태여 경인고속도로의 무료화를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국토해양부는 지난해 9월, 이윤성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경인고속도로 건설유지비 회수노선’ 자료에서 총 투자비는 2613억 원, 2009년 말까지 회수한 금액은 5456억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유료도로법 16조에는 ‘통행료의 총액은 당해 유료도로의 건설유지비 총액을 초과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고 ‘징수기간도 30년 이내로 정한다’는 시행령이 있다.
이를 근거로 이윤성 의원은 건설교통위 소속이던 2000년부터 경인고속도로 무료화를 시도했다.
인천경실련을 비롯한 시민단체도 함께 나섰지만 결과는 2004년 3월, 당시 1100원이던 통행료를 800원으로 인하시키는데 만족해야 했다.
인천경실련을 비롯한 4개 시민단체와 30명의 공익소송인단은 2000년 이후 11년 만에 한국도로공사 사장을 상대로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부과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2002년, 당시 법원은 유료도로법에 명시된 ‘통합채산제’를 이유로 특정 고속도로의 통행료 인하나 폐지가 불가능하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유료도로법 18조에는 ‘당해 유료도로를 하나의 유료도로로 하여 받을 수 있다(통합채산제)’는 조항이 있다.
즉, 한국도로공사가 관리하는 전국의 고속도로를 하나의 도로로 보기 때문에 일부 노선을 개별 폐지시킬 수 없으며, 새로운 고속도로가 건설되면 과거에 건설된 도로가 30년이 지났거나 건설유지비 총액을 초과 징수했어도 새 고속도로에 규정을 다시 적용시킨다는 것이 국토해양부가 주장하는 ‘통합채산제’다. 손자가 태어나면 할아버지의 연세도 다시 한 살이 된다는 식의 논리다.
한국도로공사는 경인고속도로에서 매년 368억 원의 통행료를 챙겼으면서도 목동 지하차도 차량 정체를 해소하기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
한국도로공사가 이윤성 의원에게 제출한 ‘고속도로 통행요금 제도 및 법령에 관한 개선방안 연구’안에는 경인고속도로를 통과하는 차량이 연간 4천 846만 대(2008년)에서 2016년엔 6천 20여 만 대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렇듯 상황이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2020년까지 총 39조6천221억 원을 투입하는 전국 32개 고속도로 신설 및 확장 계획안에서 경인고속도로에 대해선 아무런 배려조차 없었다.
한국도로공사는 남동공단 입주자들의 염원을 이윤성 의원이 발의해 제2경인고속도로 구간 중 남동국가산업단지로 진출하는 남동IC의 정체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차선을 2차선으로 확장하고 진출로의 설계 자체를 변경시켜 재건설한 바 있다.
한국도로공사가 경인고속도로의 요금을 무료화 할 생각이 없다면 신월 나들목에서 목동 지하차도가 끝나는 지점까지 편도 4차선으로 도로를 확장하는 등 병목현상 해소 대책에 통행료 수익금을 투자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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