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에서 비싼 연료비를 들여 경작한 농산물이건만 공급 과잉으로 수개월 간의 노동과 투자의 대가를 한 푼도 건지지 못한 채 참혹하게 땅속으로 묻히고 있다.
조부모와 홀어머니가 만여 평(3만3천여㎡)의 농지를 경작하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당시는 배추농사를 지어 밭떼기로 상인에게 넘기곤 했다.
어느 해, 가을 추수를 앞두고 강추위가 급습한 적이 있었다. 식구들은 일꾼들과 볏짚으로 배추를 묶고 보온을 했다.
상인으로부터 이미 배추 대금을 받았으니 이렇게까지 할 의무가 없었지만 자식처럼 애써 키운 농작물을 동사하게 내버려둘 수 없는 것이 농부의 심정이기 때문이다.
농가소득을 위해선 일반적인 농작물보다 특용작물을 재배해야 한다며 비닐하우스를 적극 장려했지만 국제 고유가로 난방 연료비와 자재비 등 원가가 상승해 화훼와 시설 채소를 재배하는 농민들은 타산을 맞추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와 언론은 농산물 값이 비싸 주부들이 장을 보러가기 겁날 정도라며 마치 물가 인상의 주범이 농산물인양 몰아세우고 있다. 구제역 가축 살 처분 후 인상된 고기값을 축산농가의 폭리처럼 매도하는 것과 진배없다.
냉해와 수재 같은 기후 변화나, 경작 기피 등으로 인한 생산 감소를 사전에 파악해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지난해 배추 파동이후 정부는 서민물가안정 대책이라는 명분하에 배추 등 주요 농산물을 중점 물가 관리 품목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또한 국가권익위원회는 공직자의 뇌물 비리 원인이 축하 화분 때문이라는 듯 ‘3만 원 이상의 축하화분을 선물로 주고받으면 견책 등 처벌과 함께 인사고과에 반영시키겠다!’ 는 조치를 내린바 있다.
이 모두 인기영합의 포퓰리즘을 농축산물에까지 적용시키는 탁상행정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이로 인해 기획재정부, 법무부, 지식경제부, 농림수산식품부, 환경부, 고용노동부, 국토해양부 등 7개 부처가 집무하고 있는 과천정부종합청사에선 당사자의 수취 거부로 축하 화분이 입구에서부터 원천봉쇄당하고 있다며 화훼농가, 꽃집 운영자와 유통 업자들은 국가권익위원회를 성토했다.
한 공무원은 “꽃이나 화분을 받을 경우 직무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절차도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려 차라리 받지 않는 것이 마음 편하다는 분위기가 공직사회에 퍼져있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 놓았다.
반면에 농식품부는 공무원과 유관기관 직원들이 앞장서서 꽃 소비촉진 운동을 전개하며 매주 화(火)요일을 꽃(花) 사는 날로 지정했다.
나 역시 16년간 구와 시약사회장직을 수행하며 수많은 기관장들이 부임하거나 이임할 때 축하화분으로 마음의 정을 표하며 경우에 따라선 화분을 보내도 되는지 사전에 문의를 한 적도 있었다.
축하 화분이 무슨 뇌물이냐며 감사의 전화를 한 후 받은 화분을 부하 직원들이나 복지 시설에 나눠주는 현명한 공직자들이 있는가 하면 청렴결백을 강조하며 굳이 되돌려 보낸 이들도 있다.
약사회가 이권관련 단체가 아닌데도 보신을 앞세워 상견례조차 기피하는 인사가 있는가 하면 내외분이 약국을 찾아주시고, 집무실을 방문하고 나설 때 현관 앞까지 배웅을 해 준 K·H·M 지방경찰청장도 있었다. 물론 그 분들은 더 높은 자리로 승진을 했다.
지금은 정년퇴직을 한 모 기관장은 원리원칙을 강조하며 부임 시 나를 비롯해 관련 단체에서 보낸 축하 화분조차 일체 거절했다.
어느 날, 교육계 모 인사는 축하받을 일이 전혀 없는데 그가 자신에게 화분을 보내왔다며 아마도 그의 승진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사실을 안 것 같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털어 놓았다.
국어사전에 뇌물이란 ‘일정한 직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매수하려고 넌지시 주는 옳지 않은 돈이나 물건’이라고 정의 한다.
수백 만 원 이상의 동양난이 아닌 공개적인 축하 화분은 ‘넌지시 주는 물건’이 될 수 없다.
꽃집에서 대형 조화나 화환을 재탕 삼탕 판매하는 부도덕한 업자를 규제하는 데 반대하지 않겠지만 5~10만 원대 축하 화분을 뇌물로 매도하는 탁상공론은 화훼 농가와 국민 정서를 감안해 재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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