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는 만수동에 소재한 모 여고에서 진로교육을 한 적이 있었다. 원래 취지는 각 반마다 학부모 중에서 1일 강사로 나서기로 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기피하기 때문에 교사는 친구인 약사를 통해 당시 남동구약사회장인 내게 부탁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학부형도 아니면서 약국 문을 닫으면서 까지 참여하는 모양새가 을씨년스럽던 참에 그 교사도 아무런 답례도 하지 못해 부담을 느낀다며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근래에는 협회를 통해 강사 섭외가 들어오지만 의약분업 이후 약사가 약국을 비울 수 없는 상황이어서 결국 약국을 폐업하고 상근을 하는 내가 떠맡고 있다.
지난 5월 15일, 연수중학교에서 중3학생을 대상으로 개최한 ‘진로교육을 위한 직업인과의 만남의 장’은 가장 보람을 느꼈던 행사였다.
인성복지부 담당 김수정 교사는 ‘강의를 해야 할 내용과 방법, 출강 수락 및 원고 공개 동의서, 초빙강사 기록 카드’등 교장선생님 명의로 된 공문을 사전에 이메일로 보낸 후 수 차례나 확인을 했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 노용래 교장선생님은 강사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교육여건상 해당분야의 특별한 경험 없이 진로나 직업선택이 이루어짐에 따라, 학생들이 학과나 직업선택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므로 학생들의 진로선택에 도움이 되고자 직업인과의 만남을 통해 대화의 장을 마련하게 되었다’고 취지를 밝혔다.
어린 학생들에게 직업을 논하는 것이 시기상조여서 학생들의 반응이 강사들을 실망시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진로 교육을 자주 하다보면 관심을 갖게 될 것을 기대한다는 솔직한 고백은 교육 강사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학교 측은 강의를 마친 후 한 분도 가지 마시라며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식당으로 안내해 점심 식사를 대접했으며 강사료까지 입금해 주었다.
교장선생님과 담당 선생님의 적극적인 관심은 진로교육에 나선 강사의 사기에도 영향을 준다. 학생들에게 헛된 시간이 되지 않도록 심도있는 자료를 준비하게 되고 바쁜 시간을 할애해 참여한 데 대해 보람을 느끼게 된다.
반면에 단순히 진로교육 행사 시간을 메우기 위해 초청한 듯 싶어 강사로 참여한 것이 후회 막심한 경우도 있다.
강의 전에 학교 측과 강사들이 진로교육의 방향에 대해 담소를 나누어야 하므로 30분 전까지 도착해달라고 부탁해야 하는데 쉬는 시간도 아닌 수업 시작시간에 맞춰 통보해 강사를 숨 가쁘게 한다.
지각생이 되지 않기 위해 안내받은 교실을 향해 종종걸음을 재촉하니 타 직종의 강사가 오기로 돼 있다며 다른 층 교실로 다시 안내를 한다.
이번엔 약사회장을 사무국장도 아닌 사무차장으로 소개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전문직종 교육 내용을 어떻게 약사도 아닌 사무직원이 나선단 말인가?
그동안 한 번쯤 강사와 직접 통화를 하든가 이메일을 나누었다면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사무국에 협조공문 한 장만 달랑 보낸 탓이다.
학생들을 강의에 집중시키도록 준비해간 자료를 나눠주며 할당된 시간을 마치고 나니 속옷은 땀으로 흥건하다.
강의를 업으로 삼는 교사들이기에 이심전심, 강사들을 교장실로 안내해 간단한 평가회를 하며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라도 할 것을 기대했지만 현관 밖으로 나갈 때까지 배웅해 주는 교사도 없다.
학교장에게 인사라도 하고 가는 것이 예의인 듯싶어 발길을 되돌려 교장실을 노크하니 부재중이시다.
하는 수 없다며 포기하고 나오는데 지난 해 타 학교에서 진로교육 담당을 했다는 교사가 나를 알아본 후 현관에 서있는 교장선생님을 소개해 준다.
이제라도 바로 옆 교장실로 안내할 줄 알았는데 ‘협회 사무직원이 올 줄 알았는데 어떻게 지면에서 자주 뵌 회장님이 직접 오셨냐?’며 의외의 표정을 지은 후 안녕히 가시란다.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외부 인사들을 초청해 학생들을 한 시간이나 맡기는 진로교육을 실시하기에 앞서 학교 측은 예우에 어긋난 상황이 발생되지 않도록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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