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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일등(貧者一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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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일등(貧者一燈)
  • 의약뉴스
  • 승인 2009.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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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가 사위국(舍衛國)의 한 정사(精舍)에 머물었을 때의 일이다. 그 마을에는 ‘난타(難陀)’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가족도 거처도 없이 구걸을 하며 연명해 가는 처지였다.

그 즈음 국왕을 비롯해 온 백성들은 앞 다투어 석가에게 공양을 하고 있었다. ‘난타’ 역시 석가에게 공양을 하고 싶었으나 가진 것이 없었다. 그녀는 온종일 동네를 다니며 구걸을 한 끝에 겨우 한 푼을 손에 쥐었다.

그 돈으로 기름을 사 공양을 하려 기름집을 찾았다. 하지만 주인은 ‘난타’가 내민 돈이 너무 작아 기름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전생에 죄가 많아 석가에게 공양을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기름집 주인에게 눈물로 호소를 했다.

‘난타’의 지극정성에 감동한 주인은 그녀가 내민 돈에 상관없이 좋은 기름을 선물했다. 그녀는 부자들의 화려한 등에 비해 아주 볼품없지만 정성스럽게 등을 만든 후 구걸한 기름으로 불을 밝혀 석가에게 바쳤다.

시간이 흐르며 심지를 적신 기름이 바닥을 드러내자 등불은 하나 둘 꺼지기 시작했다. 부자들의 크고 호화스런 등도, 서민들의 작은 등도 귀천을 가리지 않고 꺼졌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르고 드센 바람이 불어도 유독 꺼지지 않는 등이 있었다. ‘난타’가 바친 볼품없는 등불이었다. 등불의 사연을 전해들은 석가는 ‘난타’를 비구니(比丘尼)로 받아들였다. 현우경(賢愚經)에 나오는 일화 중의 하나다.

며칠 전, 일요일 오후의 혼잡한 서울 길을 마다않고 친구의 장녀 결혼식장에 참석한 덕분에 오랜만에 큰 감동을 맛보았다.

축가의 순서가 되었을 때 기부천사라는 별명을 지닌 연예인 김장훈 씨가 마이크 앞에 섰다. 하객들은 선행을 생활화하는 그에게 경외의 박수를 보내면서도 의외의 출연에 대해 궁금한 눈길을 보냈다.

축하곡을 부르기 앞서 김장훈 씨는 예식장에 참석하게 된 사연을 털어 놓았다. 그는 인기 연예인으로 부와 명예를 동시에 누릴 수 있지만 기부천사의 역할을 하느라 마포구 소재 밤섬현대아파트에 전세를 살고 있다고 했다.

그 순간, 대학에 다니는 아이들이 자취하던 아파트에 가끔 드나들 때 입구에 세워진 연예인용 승합차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경비원에게 ‘이곳에 웬 연예인이 살고 있느냐?’고 별 뜻 없이 물었을 때 ‘가수 김장훈 씨가 이곳에 전세를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남의 집을 임대해 살면서도 선행을 계속하는 그가 보통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김장훈 씨는 집주인 아주머니만 알고 있을 뿐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인 아들은 본 적이 없지만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축가를 불러드리겠다고 자청했다고 한다.

집주인의 아들이 신혼의 보금자리를 틀 수 있도록 김장훈 씨는 이사할 집을 새로 마련해 놓고 날짜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사 갈 집에 갑작스런 사정이 생겨 약속한 날짜에 집을 비울 수 없게 되었다.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신혼부부는 좋은 일을 많이 한 김장훈 씨가 이삿짐을 싸들고 거리에 나앉으면 안 된다며 ‘이사를 가는 날까지 새로 장만한 신혼살림을 각자의 집에 보관하고 당분간 다른 곳에서 지낼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보름동안 편의를 봐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인기연예인이 신세를 갚는다며 결혼식장까지 찾아와 출연료도 받지 않고 진심이 우러나는 목소리로 축가를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한참 오래 전, 인천시약사회는 심장병어린이 돕기 성금 모금을 위해 연예인을 초청해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약사회와 이벤트사는 행사를 홍보하기 위해 케이블방송국으로 하여금 행사 내용을 녹화 방송하도록 했다.

그러나 공연 도중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모 가수가 케이블방송국 카메라를 발견하자 갑자기 노래를 중단하고 카메라 철수를 요구했다.

저작권 침해라며 계속 녹화를 하면 공연을 취소하겠다고 역정을 내어 어쩔 수 없이 그의 공연 순서가 끝나 무대를 떠날 때 까지 카메라를 삼각대에서 분리해 땅바닥에 내려놓아야 했다.

그는 내가 대학시절 청바지와 통기타 문화의 선구자로 흠모했던 우상이 아니었다. 아무리 메뚜기도 한 철이라지만 흥행 목적의 공연이 아닌, 주최 측이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심장병어린이 돕기 성금 모금공연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수는 프로 근성을 앞세워 냉정했다.

달갑지 않은 오래전의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 가수 김장훈 씨의 사연은 더 깊은 감동을 내게 안겨주었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은 부처와 중생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는 진솔한 정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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