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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5-07-16 19:40 (수)
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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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 의약뉴스
  • 승인 2009.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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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은 팔에 다는 띠를 말하며 신분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상주가 찬 베로 만든 완장은 상복을 대신하는 의미를 지닌다. 남자 조상은 왼팔에, 여자 조상인 경우는 오른 팔에 완장을 단다.

완장에 검은 줄이 2개이면 고인의 직계, 1개면 가까운 가족, 줄이 없는 것은 인척이나 장례 도우미가 착용하는 경우도 있다.

앞 집게발이 2개, 양쪽에 대나무를 닮은 다리가 4개씩 모두 10개의 다리를 달고 있는 영덕대게 중 품질이 우수한 놈에게도 완장을 달아준다. 하지만 다리가 8개인 러시아 산은 완장을 찰 수 없다.

소설가 윤흥길의 작품 '완장'엔 안하무인인 주인공 임종술이 등장한다.

80년대 초, 부동산 투기에 성공한 최 사장은 널금 저수지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든 후 동네 건달 임종술에게 관리를 맡긴다.

임종술은 월급이 작고 나름대로 자신이 예전에 한 가닥 했다는 위신을 내세워 관리인 자리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완장을 차게 해준다는 말에 선뜻 관리인으로 취직한다. 임종술은 팔에 찬 완장을 광신한 나머지 저수지에서 낚시질을 하는 도시의 남녀들에게 기합을 주고, 고기를 잡던 초등학교 동창 부자를 폭행하기도 했다.

면소재지가 있는 읍내에 나갈 때도 완장을 두르고 활보하면서 자아도취에 빠진 임종술은 심지어 자신을 고용한 사장 일행의 낚시질까지 금지하는 월권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결국 임종술은 관리인 자리에서 쫓겨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저수지를 지키는 일에 몰두했다.

가뭄 때문에 수리조합에서 저수지의 물을 빼려하자 그는 수리조합 직원과 경찰에게 행패를 부린다. 저수지의 물을 뺀다는 것은 자신의 권력 기반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임종술이 완장을 저수지에 버리고 주점의 작부 부월이와 함께 떠난 다음날, 소용돌이치며 물이 빠지는 저수지 수면 위엔 임종술이 두르고 다니던 비닐 완장이 떠다니고 있었다.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 볼일 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평소 완장의 권세를 광신하며 나대는 임종술에게 주점의 작부 부월이 던진 질책이다. 그녀의 말처럼 힘있는 사람은 완장을 차지도, 앞에 나서지도 않는다.

완장을 찬 경비원은 분양하는 아파트의 모델하우스처럼 고용한 사업체를 대변하는 얼굴이다. 그러나 자신의 본분을 깨닫지 못하고 고객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의 흉내를 내는 경비원도 있다.

오랫동안 타 은행과 거래해 오던 약사회의 예금을 모 단위농협으로 옮기기 위해 00지소를 방문했다가 경비원 때문에 마음을 상한 적이 있었다.

업무 마감이 임박한 시간에 쫓겨 급히 주차장에 진입하려는 순간 경비원이 나타나 앞을 가로 막았다.

주차장이 혼잡한 것도 아닌데 사정을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 일단 여유 공간에 임시 주차를 한 후 농협이 셔터를 내리기 전에 예금 업무를 볼 생각으로 차를 한 구석으로 몰았다.

그 순간, 경비원은 차량을 파괴할 듯한 몸짓으로 상스런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주차장 구역에선 경비가 왕인데 감히 제왕의 지시를 거역했다는 표정이다.

단위 농협 직원들에게 ‘이런 몰상식한 경우도 있느냐?’고 항의했으나 아무도 경비원의 경거망동을 만류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유인즉 단위 농협은 세입자였고 경비원은 건물주가 고용한 직원이어서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그동안 각 업소를 찾는 고객들과 잦은 마찰을 일으켜 건물주에게 항의를 했어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글자 그대로 경비원은 농협이 세들어 있는 건물의 주인보다 더 높은 제왕이었다.

결국 경비원의 모습을 두 번 다시 보지 않기 위해 예금 거래처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시티은행 본점 앞‘00복집’건물은 지하주차장의 친절한 경비원 때문에 자주 찾아가고 싶은 업소이다.

널금 저수지에서 제왕처럼 군림하던 임종술과 모 단위 농협 주차장에서 경거망동을 서슴지 않았던 안하무인의 경비원은 완장을 찰 자격이 없다.

완장은 낮은 자리에서 친절한 미소로 방문객을 섬겨야 하는 업소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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