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사랑과 동정심을 뜻한다. 눈물이 많은 사람은 마음이 여리고 인정이 도타운 까닭이다.
피는 혈관을 타고 흐르는 붉은색 체액으로 혈장과 혈구로 이루어져 있다. 산소, 영양분, 노폐물 따위를 운반하며 세균 방어 역할을 하기도 한다.
빨간 빛깔을 보면 어릴 적, 깨어진 사발에 곱게 짓이겨 놓은 봉선화가 떠오른다. 손톱마다 듬뿍 얹어 놓고 명주실로 묶어 한 밤을 지새우던 봉선화는 아름다움과 동심의 향수를 자아내는 꽃이다.
하지만, 뜰에 핀 봉선화를 보고 놀라 이마에 송송 맺힌 식은땀을 씻어 낼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는 이도 있다. 선홍빛은 추억에 따라 가슴에 와 닿는 전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피’는 솜털이 곤두서는 듯한 혐오감만을 안겨주는 단어가 아니다. 어느 해, 무더운 여름을 온통 뜨거운 눈물의 바다에 잠기게 했던 방송 프로가 있었다. 이산가족들의 오열을 우리 모두의 슬픔으로 동감하며‘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실감케 한 프로이다.
사람이 타인을 사랑하고 잘못을 용서함은 뜨거운 피와 눈물을 소유한 까닭이다. 이해심이 없고 몰인정한 사람을 가리켜 냉혈동물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텔레비전에서 만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모습이 인간들과 똑같아 자신이 ‘로봇’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온 소녀가 있었다. 하지만 차츰 성장하며 친구들과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기쁘거나 슬플 때 친구들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지만 그녀의 눈에선 차가운 물방울조차 나오지 않았다. 친구들이 뛰어놀다 다쳤을 땐 뜨거운 피가 흘렀지만 그녀의 상처에선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불안과 궁금증을 억제할 수 없었던 소녀는 자신의 팔목에 깊은 상처를 내어 보았다. 그 안에는 뜨거운 피가 아닌 복잡한 전선만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순간, 자신은 인간이 아닌, 금전으로도 사고 팔 수 있는 전자 제품에 불과하다는 좌절감에 눈물 없이 오열하는 내용이다.
요즘은 세상이 각박하다는 이유만으로 피와 눈물의 진정한 의미를 망각한 듯하다. 번잡한 지하도에서 소매치기를 뒤쫓거나 폭력배들에게 폭행을 당해도 모두가 관심 밖일 뿐이다. 볼썽사납고 부도덕한 행실을 나무라면 안하무인으로 대들기 일쑤며 스승이 제자에게 회초리를 들어도 폭행죄로 고소당하는 세태이기 때문이다.
불의를 보고 겉저고리를 벗어 던지는 의협심은 신파극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예전의 주먹들은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최소한의 양심은 갖고 있었다. 진정한 피와 눈물을 간직한 사나이들이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이웃사촌에게까지 자행하는 아녀자의 유괴, 납치, 살해 등 각종 범죄의 행각은 글자 그대로 냉혈동물과 별다를 것이 없다. 그들의 차가운 피와 눈물은 모조 인간 ‘로봇’소녀의 내부에 장치된 전자 부품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피는 한 송이의 빨간 장미이다. 비록 향기는 없지만 인간의 사랑을 듬뿍 머금은 따듯한 체액이기 때문이다. 장미가 그 빛과 향을 잃으면 낙엽으로 짓밟히듯 사랑을 상실한 인간의 피는 생명의 종말을 의미한다.
눈물은 수줍은 촌색시의 발그레한 볼만큼이나 순박한 감정의 표출이다. 눈물이 없는 통곡은 듣는 이에게 슬픔보다 청각의 피로감만을 안겨 줄 뿐이다.
진실한 눈물에는 아침 이슬보다 더 아름답고 고아(高雅)한 감동이 잠겨 있기에 얼굴을 적시며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불결한 액체로 비하할 수는 없다.
기쁘거나 슬픈 감동은 우선 콧등을 시큰하게 하곤 눈언저리를 적시게 마련이다. 눈물이 있어야 할 분위기에서 몰풍스럽게도 눈언저리가 메마른 사람이 있다. 이들을 가리켜 인정이 마른 ‘철면피’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보다 진한 뜨거운 피와 눈물 !
그것은 인간의 가슴을 사랑으로 채우는 원천이다. 싱그러운 물감으로 채색한 영원한 사랑의 수평선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피와 눈물에 함축된 은은한 인정을 되새겨 본다.
오늘도 눈물은 감정의 샘에서 쉼 없이 솟아 감동의 바다로 흘러내리고 있다. 내 영혼의 돛단배를 망망한 그 바다 위에 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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