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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체인 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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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체인 스토어
  • 의약뉴스
  • 승인 2009.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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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대의 일이다. 요즘 약국 가엔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온난전선도 한랭 전선도 아닌 가맹점 바람이다.

U. R 을 대비하여 자기들의 업계에 가입을 해야 싼값에 약품을 구입하여 가격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며 침을 퉁기고 있다. 헌데 가입비라는 것이 수백에서 천여만 원에 이르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체인스토아의 효시라면 구멍가게에 슈퍼라는 거창한 간판을 붙인 연쇄점일 것이다. 그 당시 구멍가게 주인이 매상 신장의 효과를 보았는지 간판 업자가 득을 보았는지는 궁금할 뿐이다.

요즘엔 24시간 편의점이란 가맹점이 활개를 치고 있다. 하루 종일 대낮처럼 불을 밝힌 채 소비자들에게 봉사하는 충정엔 고마움이 앞서기도 했지만 조그만 구멍가게 주인들이 대책 없이 폐업을 하고 골목길을 떠나야 할 땐 야수처럼 보이기도 했다.

편의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더니 이제는 구멍가게가 아닌 자신들이 도태되고 있다. 엄청난 전기요금과 3교대를 감수해야 하는 인건비, 출혈 경쟁으로 제살을 깎아 먹는 이윤 없는 난매와 로열티까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가맹점 업주의 주머니는 나날이 두둑해지니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떼놈이 버는 격이다.

얼마 전, 내가 남동구약사회장을 맡은 후로 가장 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

나이 오십이 넘은 약사 부부가 여기 저기에 체인 약국을 개설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개업식날 연예인까지 동원해 쇼를 공연하며 원가 이하로 난매를 쳤다. 시골 장터에서 손님을 끌어 모으기 위해 등에 북을 메고 바이올린을 켜던 약장사의 풍물을 재연하는 듯했다.

이웃에 있는 약사들은 아우성이었다.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품위가 손상되고 시장질서가 무너지면서 단골손님들에게 도둑 누명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점 마진보다도 못한 이윤의 약값을 지켜 오던 약사들의 속을 알리 없는 손님들은 원가 이하의 장난질이 정당한 가격인 줄로 알고 뜨거운 콧바람을 내뿜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계속 흙을 퍼다 가 장사할 수 만은 없는 법이다. 원가 이하로 팔아 손해 본 몫을 채워야 했다. 해서 약사가 아닌, 물에 빠져도 입술만 둥둥 뜰만큼 입심이 좋은, 저 학력의 판매원을 수백만 원의 월급을 주고 데려와 엉뚱한 방법으로 바가지를 씌워 메워야 했다.

약사회에서는 영업 정지 등으로 파렴치한 상행위를 제재했다. 그때마다 그들은 부부가 번갈아 가며 약국 개설자의 명의를 바꾸며 동료 약사들의 가슴에 못질을 해댔다.

그 약사 부부는 동료 약사들이 도둑 누명을 쓰든 대책 없이 폐업을 하든 상관치 않고 계속 손님을 끌어 모으기에 급급했다. 싸게 파는 약국으로 소문이 나면 엄청난 권리금을 받고 약국을 파는 짓을 되풀이 하며 엄청난 불로소득을 취했다.

그런 문제의 인물이 내가 회장을 맡고 있는 남동구에도 체인점을 개설한 것이다. 이웃의 약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판매 가격을 낮추어야 했다.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났다.

약사회라는 협회는 이런 파렴치한으로 부터 다수의 선량한 약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단체이다. 그 단체의 수장인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연일 이웃 약사들과 심야 회의를 하며 대책을 숙의했다.

나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었다. 사법 당국에서 그에 대한 과거 세무 행적과 약사법 위반 비리를 조사하는 동안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의 체인점 약국은 보름 동안이나 문을 닫고 있었다. 그들이 도피했다는 소문도 들렸다.

많은 회원들은 나의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듯했다. 나에게 닥칠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의 체인스토아에 철퇴를 가한 용단에 박수를 쳐주기도 했다.

계획대로 이곳에서도 권리금 장사가 성공하면 그들은 인근 지역에 또 체인점을 개설할 예정이었다. 때문에 나는 다수의 회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이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가지를 쳐야만 했다.

요즘 들어 문단에도 체인점의 기류가 일기 시작하는 듯하다. 피와 땀을 짜내어 탄생시킨 작품을 원고료 한 푼 주지 않고 실리면서 그것도 모자라서 자기 마당에서 놀려면 자릿값을 내라고 한다.

내 목소리를 크게 하기 위해 네 사람 내 사람을 만들다 보면 문단의 파벌까지도 조장할 수 있는 심각한 일이다.

중세기 희랍에서는 학문을 팔아먹는 사람들을 ‘소피스트’라고 칭했다. 그렇다면 문학을 빙자해 돈을 벌려는 수필가들은 무어라 칭해야 옳을까.

문화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비우고 문학을 사랑하는 문학도를 위해서는 자신의 지식과 재산을 아낌없이 털어 바칠 수 있는 사람만이 문화 사업을 해야 한다. 그런 사람만이 글과 언행이 일치할 것이다.

글과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작가는 겉으로 주민 건강을 내세우며 뒤로는 가격 장난질을 하며 바가지를 씌우는 문제의 약사 부부와 다를 것이 없다.

수필 문단의 체인스토아. 이들이 뿌리를 내리기 전에 누가 가지를 쳐 줄 것인가. 많은 문우들이 붓을 꺾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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