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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의 의식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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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의 의식 개혁
  • 의약뉴스
  • 승인 2007.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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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약사회는 지난 12월 9일, 사상 첫 직접 선거를 치렀다.

입후보자가 5명이나 되는, 전국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선거전이었다.

당선을 축하한다며 악수를 청하던 친목회원 한 분이 의미 있는 미소를 지며 ‘이번 선거에 얼마나 돈을 썼느냐’고 묻는다. 모 정당의 당원으로 활동하는 분다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분이 원하는 답변을 줄 수 없었다. 이번 대한약사회 인천지부장 선거는 내가 지자체 선거에 출마했던 1998년 당시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자체 선거 당시에는 유권자를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그들의 모임에 초청 받는 일이 두려웠다 하지만 약사회 선거는 달랐다. 유권자인 회원들은 자리를 마련해 놓은 후 모든 후보들을 초청했다. 후보들은 아무 부담 없이 참석해 소견을 발표하고 함께 식사를 한 후 다른 모임으로 자리를 옮기곤 했다.

5명의 약사회장 후보 중 2명은 나의 대학 후배였다. 한 동문에서 3명이 출마한 것은 한 정당에서 3명이 출마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3명 모두의 낙선은 불을 보듯 뻔 한 결과였다.

게다가 당선 확률이 가장 높았던 상대 후보는 가장 많은 동문을 거느린 대학 출신이고 회원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의 분회장이었다. 그러나 약사회원들의 후보 검증 기준은 달랐다.

시의원을 지낸 모 변호사가 ‘정당은 의원을 만드는 공장’이라고 한 조언이 떠올랐다. 그의 말대로 어느 선거에선 1번이, 다음 선거에선 2번이 압도적으로 당선되는 정치 바람 앞에 입후보자의 학벌과 능력과 봉사 경력도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한국의 정치 현실이다.

2번의 바람이 불던 시절, 나는 기호 추첨에서 2번을 거머쥐는 행운을 낚았다. 하지만 그것은 기호를 추첨하는 순서를 정하는 추첨이란다.

잠시의 기쁨을 물거품으로 날려 보내고 다시 주사위를 거머쥐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오른 손에 잡힌 주사위의 번호를 보게 되었다. 2(나)번이었다.

고의로 부정을 저지른 것처럼 양심이 허락지 않아 잡았던 행운의 번호를 놓고 눈을 질끈 감은 후 자루 속의 주사위를 다시 선택했다. 바보 같은(?) 행동으로 3(다)번을 추첨하게 되었고 결국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나처럼 2번 소속 정당의 내천을 받고도 3(다)번을 추첨한 모 후보의 장인 장모가 투표를 하고 나와서 사위를 찍었노라 며 2(나)번을 연호 했다는 일화는 슬픈 전설이 되어 버렸다.

내가 낙선의 충격과 과로로 몸져누워 있을 때 15일 간 고락을 같이 했었던 일부 선거 운동원들은 낙선자의 아픔을 달래주기는커녕 수고비를 더 달라며 생떼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약사회장 선거에서의 참모들은 후보의 자질과 능력을 충분히 검증한 후 선택한 후보를 위해 아무 대가 없이 봉사해 주었다.

직선제 약사회장 선거에서는 좋은 번호도, 정당의 프리미엄과도 같은 동문회 소속감도 유권자의 표심을 유혹하지 못했다. 오직 그 동안 유심히 지켜 보아왔던 후보자의 능력과 봉사 정신을 저울질하며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몇 개월 후의 총선을 앞두고 각 지구당 사무실이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이제 유권자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지자체 선거 당시, 부탁한다며 고개를 숙이는 나에게 ‘부탁할 사람은 오히려 우리 주민들’이라며 두 손을 감싸 주셨던 유권자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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