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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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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 의약뉴스
  • 승인 2007.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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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을 처음 개설한지도 30년이 넘다보니 당시 가깝게 지내던 선배들이 어느덧 하나 둘 환갑을 맞고 있다.

여기저기서 후배들은 환갑을 축하하는 모임을 마련하고 기념품을 전달한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안색은 그리 달가운 표정이 아니다. 자신이 환갑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그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여약사회 모임에서 회장을 맡고 있는 후배가 환갑 전후의 선배들에게 ‘원로’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가 눈총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의 말뜻은 존경하는 선배를 강조했던 것이기에 즉석에서 사과를 하고 ‘선배님’으로 개칭했지만 서운한 감정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듯했다.

세월은 나이의 속도로 흐른다는 말이 있다. 시속 30 ~ 40 킬로미터로 흐르던 세월이 어느 날, 50 ~ 60 킬로미터로 변속되면서부터 걷잡을 수 없었다며 너희들도 얼마 안 남았다고 혀를 차는 선배의 심정을 이해할만 하다.

며칠 전, 모 여대 약학대학 인천동문회의 환갑 축하 모임에 초청을 받고 참석했었다. 환갑을 맞아 서글퍼할 주인공들을 어떻게 위로할까 고심했는데 그것은 기우였다.

낙천적인 주인공은 예순 환갑에도 일감(약국 경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예일’ 대학생이라고 소개하며 호탕하게 웃는다. 할 일없이 바쁜 ‘하바드’ 대학생도 ,동네 경로당이나 기웃거리는 ‘동경’ 대학생도, 방에 콕 틀어박혀 지내는 ‘방콕’ 대학생도, 지하철을 타고 방랑하는 ‘지공선사’도, 목적 없이 사는 ‘목사’도 아닌 당당한 여약사임을 자부하는 선배가 동료 약사로서 자랑스러워 보인다.

환갑을 맞는 주인공들에게 축사를 해야 할 차례가 되었다. 떠돌이 사진작가인 로버트(클린트이스트우드)와 현모양처 프란체스카(메릴스트립)의 노을빛 사랑 이야기인 ‘메디슨카운티의 다리’가 떠올랐다.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낸 중년의 사랑 이야기를 음미하며 지금까지는 자식과 남편을 위해 살았다면 환갑을 맞는 오늘부터는 자신의 인생과 자신의 사랑을 위해 사는 분기점으로 삼으라고 제언했다.

술은 입으로 마시고 혀끝으로 음미하지만 사랑은 눈으로 삼키고 가슴에 심는 것이기에 영원히 20대의 가슴으로 살아가시라고 당부했다.

환갑(還甲)은 천간(天干)인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와 지지(地支)인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가 합쳐져 60갑자(甲子)가 되고 태어난 간지(干支)의 해를 무사히 맞았다며 즐거워하는 행사이다.

회갑(回甲), 화갑(華甲/花甲) 혹은 주갑(周甲)이라고도 하며 환갑잔치를 수연(壽宴 ·壽筵)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생명과학의 발달로 수명이 연장되어 진갑(進甲, 62세), 미수(美壽, 66세), 칠순·희수(七旬·稀壽, 70세), 희수(喜壽, 77세). 팔순·산수(八旬, 傘壽, 80세)는 다반사이고, 미수(米壽, 88세), 구순·졸수(九旬, 卒壽, 90세)와 백수(白壽, 99세)까지 누리는 분들을 뵙는 것도 어렵지 않은 현실이다.

이제 환갑은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 분기점임에 틀림없다. 20대의 가슴으로 99세까지 팔팔하게 사는 ‘구구팔팔’을 택할 것인가, 사랑과 희망을 포기한 채 88세까지 구질구질하게 사는 ‘팔팔구구’의 인생을 택할 것인가는 각자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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