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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와 관광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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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와 관광자원
  • 의약뉴스
  • 승인 2007.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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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기관지 ‘월간문학’ 출신 수필가들의 모임인 ‘전국대표에세이문학회’ 세미나가 2005년 6월 5일과 6일에 걸쳐 무의도(舞衣島) 송림해변에서 펼쳐졌다.

이번 행사는 회장을 맡고 있는 내가 주관해야 했기에 개최장소를 결정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회장이 인천사람이니 당연히 회원들이 갈망하는 실미도로 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만장일치 의견이었지만 그들이 상상하는 운치 있는 해변과 시설 좋은 호텔의 두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고장 인천이 저명한 문인들의 작품 속에 살아 숨 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실미도(失尾島)가 바라다 보이는 무의도(舞衣島) 송림해변으로 낙점하고 말았다.

비록 숙소가 누추하기는 했지만 ‘송림식당’ 주인 부부의 친절한 손님맞이 덕분에 문인들은 하루 밤의 고생을 가슴 한 구석의 추억으로 묻어둘 수 있었다.

문학 세미나를 호텔이 아닌 바닷가 소나무 숲에서 치른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바다 건너에 웅크린 자세로 엎드려있는 초록빛 섬은 가슴 아픈 역사의 제물로 사라진 영혼들이 피맺힌 한을 삭이기 위해 지금도 소리죽여 통곡하고 있는 실미도가 아니던가.

1968년 4월에 창설되어 684부대라 이름 지어졌고 ‘출정명령’ 단 한마디를 기다리기 위해 기나긴 3년 4개월 동안 지옥 같은 훈련을 반복하다가 산화한 영령들의 한숨소리가 귓전에서 맴도는 듯하다.

때마침 썰물로 드러난 갯벌마저 삼켜버린 칠흑의 어둠 속으로 성난 684부대원들이 바람을 몰고 달려오는 듯 해변의 밤하늘은 등골까지 한기를 느끼게 한다.

이튿날 아침, 바다가 갈라지는 시간을 지난밤부터 학수고대하던 문인들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징검돌을 따라 실미도로 향했다.

하지만 실미도에 도착한 일행은 해변 우측과 좌측으로 갈라져 우왕좌왕 해야만 했다. 무의도에서 마주 보이던 실미도 해변이 비운의 역사가 잠들고 있는 참혹한 현장인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촬영장으로 가는 길 안내판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좌측으로 가야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해당화와 아카시아 꽃이 만발한 해변을 따라 거닐다보니 그제야 영화 ‘실미도’ 촬영지로 가는 안내판이 일행을 반긴다.

안내판 앞에서 일 천만 관객을 감동시킨 ‘실미도’ 영화 포스터를 배경삼아 기념사진을 찍은 후 숲속 오솔길을 따라 실미도 정상을 가로지르니 탁 트인 바다가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우리가 찾던 역사의 현장은 실미도 산등성이를 힘들게 넘은 후에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무의도에서 바라보던 섬 반대편 쪽에 꽈리를 틀 듯 자리 잡고 있는 형상이 요새라기보다는 해변의 별장을 떠오르게 한다.

“아! 실미도 ---.”

문인들의 입에서 새어나온 신음에 가까운 외마디가 이내 바닷바람에 파묻혀 버린다. 예상은 하고 왔지만 영화에서 보았던, 부대원들의 피땀이 얼룩진, 막사와 초소 등 시설은 흔적조차 사라지고 화면에서 낯익은 웅장한 바위들만이 묵묵히 일행을 반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건물이 서있었던 자리에 묘비처럼 서있는 사진 게시판 아래에는 하얀 마가레트 꽃이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타고 하늘하늘 날갯짓을 하는 하얀 꽃잎의 모습이 마치 무명용사의 묘지 앞에 놓인 한 다발의 조화(弔花)를 연상케 한다.

바로 옆에선 지방에서 온 회원 한 분이 부대원 막사가 자리 잡고 있었던 언덕을 가리키며 ‘관광자원으로 보존해야 할 영화 세트를 철거시킨 것은 구청 측의 경솔한 처사’라며 관할 구청을 성토한다.

하지만 관계자로부터 내가 들은 내용은 달랐다. 실미도 촬영 세트는 영화 제작 단가를 낮추기 위해 애당초 1회용 소품 자재를 사용해 장기 보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또한 구청에서 강제 철거를 한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 내용대로 최종 폭파한 현장을 청소하지 않고 산림까지 훼손해 이를 시정하도록 어쩔 수 없이 영화사를 고발했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세트를 복원시켜 관광자원화 할 수 없을까 아쉬워했지만 개발 제한된 개인 소유의 토지에 일방적으로 건축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게다가 영화의 거리를 만들기 위해선 구청에서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금액을 촬영 전 영화 제작사에 보조해야 하는 속 깊은 사연이 있었다.

감정이 메마른(?) 인천지역 공무원을 탓하며 서운한 마음을 애써 달래는 문인들에게 어떤 변명이 통하겠는가. 차라리 훗날 한 편의 수필로 오해를 풀어 주리라 마음먹으며 684부대원들의 군화 발자국을 따라 이곳저곳의 체취를 음미해 본다.

오랜 세월, 파도의 칼끝에 조각된 기암절벽이 썰물 때를 맞춰 물속에 감추었던 하반신마저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하지만 바위 곁으로 다가서니 불법영업을 단속한 듯 각종 취사도구와 의자들이 쓰레기와 함께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다.

바닷길을 따라 이곳까지 오는 동안 곳곳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어 관광객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었는데 영화 촬영 현장인 이곳에서도 그 모습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어젯밤 보았던, 별빛이 보석처럼 영롱했던, 밤하늘 빼고는 섬 전체가 쓰레기로 황폐해 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며 영화 ‘실미도’의 환상마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지경이다.

영화 흥행으로 엄청난 유명세를 탄 실미도가 관광지로 개발되지 못한 채 추억 속으로 묻혀 져 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오래전 태국을 관광했을 때, 우리 정부가 외국 관광객을 의식하며 노점상과 잡상인들을 단속하는 것과는 달리 태국은 관광 달러를 벌어들이라며 오히려 주민들에게 온갖 편의를 제공하는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그런 실속 있는 관광자원화 정책을 펴 왔기에 태국이 오늘의 관광부국으로 발전한 것이 아닐까.

실미도가 한국이 아닌 태국에 자리 잡고 있었다면 하는 상상을 해보며 태국 정부의 선견지명을 시샘해 본다.

이제라도 토지주와 당국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여 영화 ‘실미도’ 세트를 복원시킨 후 입장료를 징수하여 관광수입을 증대시키고, 실미도 환경정화 비용으로 사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간직한 채 잠시 후면 밀물에 가라앉을 실미도의 징검돌을 부지런히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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