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古典)에는 ‘뒷다리가 튼튼해 잘 뛰므로 사기(邪氣)로부터 달아날 수 있고, 귀가 크므로 장수할 상이며, 윗입술이 갈라져 여음(女陰)을 떠오르게 하니 다산(多産)할 것이며, 흰털은 백옥 같은 선녀의 아름다움을 상징한다’고 적혀 있다.
유교에서 민첩한 토끼는 심부름꾼이나 전령 역할을 도맡는 충성스런 동물로 전해져 오고 있다.
문경의 토천(兎遷)이란 지명은 불정역 맞은편 절벽 위를 지칭하는데 길을 잃은 고려 태조에게 토끼가 절벽을 따라 달리며 길을 안내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보름달 안에서 떡방아 찧는 토끼는 어린이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 준 동화속의 귀여운 동물이다.
달 속의 계수나무 밑에서 두 마리의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는 그림은 고대 벽화와 조선시대의 민화, 선암사 법당 문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는 금슬 좋은 부부애를 상징하기도 한다.
도교에서 옥토끼는 달에 살면서 떡을 찧거나 불사(不死)약을 만드는 장생불사의 동물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 개마총의 월상도(月像圖)에는 불로장생약을 찧고 있는 토끼와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두꺼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지붕을 덮는 신라 막새기와의 그림에도 중심에 큰 꽃 항아리가 있고 좌우에 두꺼비와 토끼가 춤을 추는 모습이 있는데 모두 부부애를 묘사한 것이다.
고려청자 투각 칠보 향로는 연꽃 위에 둥근 달을 칠보문으로 투각하고 받침다리를 토끼로 만들었는데 이는 부부애와 자손의 번성을 기원한 것이다.
스리랑카의 캔디 불치사 내에도 달 속에 있는 토끼 그림이 있다.
나이지리아 주쿤족의 민화에서 토끼는 왕의 사신으로서 사람들과의 중개자 역할을 한다.
또한 미지의 작물이나 쇠를 다루는 기술을 사람들에게 전수해주는 역할을 하는 한편 사기술(詐欺術)로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토끼가 대지의 오물을 묻고 최초의 인종을 지하 세계에서 해방시킨 성스런 동물로 여긴다.
그러나 토끼에 대한 부정적인 면도 적지 않다.
‘토끼다!’란 속어는 ‘몰래 도망간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놀란 토끼 같다’, 토끼가 제 방귀에 놀란다‘는 말처럼 행동이 경망하고 남몰래 저지른 일에 대해 지레 겁을 먹을 정도로 소심한 동물이기도 하다.
헤브라이에서는 부정한 동물, 마녀의 심부름꾼, 교활한 책략, 주의 깊고 소심한 기질을 상징하며, 흰 토끼는 마녀의 상징으로 보기 때문에 배를 탄 후에는 토끼 이야기를 금기한다.
임신한 부인이 토끼 고기를 먹으면 언청이 아이를 낳는다는 속설이 있다. 토끼의 윗입술이 찢어진데서 유래하며 언청이를 토순(兎脣) 혹은 토결(兎缺)이라 칭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토끼는 ‘속임수의 명수’이기에 교활한 토끼(狡?)로 회자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민담 중 ‘호랑이를 속이는 토끼’, ‘자라를 속이는 토끼’가 그 예다.
일본에는 교활한 토끼가 상어를 속였다가 오히려 큰 봉변을 당했다는 ‘아나바의 흰 토끼’, 토끼가 악한 너구리를 응징하는 ‘가치카치 산’, ‘토끼와 거북’의 달리기 경주 설화가 있다.
그중에서도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이야기와 삼국사기의 ‘귀토설화(龜兎說話)’에서 유래한 판소리 소설인 ‘토끼전’ 혹은 ‘별주부전’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내용이다.
달리기 경주 상대가 되지 않는다며 시합 도중 낮잠을 잔 사이 느림보 거북이에게 참패한 토끼의 교만함을 나 역시 답습하고 있지 않는지 토끼해를 맞아 반성해 본다.
용왕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토끼의 간을 뺏기 위해 토끼를 용궁으로 유인한 자라(별주부)의 충성심, 명약인 간을 노리는 이들이 많아 산 속에 감춰두고 왔으니 뭍으로 다시 나가 가져오겠다며 탈출한 토끼의 영악한 지혜를 욕심내 본다.
그러나 토끼를 거론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뭐니 뭐니 해도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이다.
신묘년 토끼해를 맞아 함께 떡방아를 찧는 부부애와 자식들의 번성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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