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7일, 인천시청 행정심판위원회는 모 약사가 남구 관내 모 병원 구내에 약국을 개설하려는 시도를 좌절시켰다.
의약분업이 실시된 이후 의료기관의 시설 또는 부지의 일부를 분할변경 또는 개수하여 약국을 개설하지 못하는 약사법이 신설되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관할 보건소는 문제의 병원 구내에 약국을 개설할 수 없다며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 병원은 지난해 9월 말 의료기관으로 허가되었으나 약사법상의 허가규제사항을 피하기 위해 금년 초 약국 자리를 제1종 근린생활시설로 용도변경한 바 있다.
하지만 12층 건물 전체가 의료기관의 시설로 되어 있고, 병원의 실소유주인 병원장과 관계인들이 공동 건물주로 등재되어 있어 담합을 금지하는 의약분업 원칙상 약국이 개설될 수 없는 상황이다.
병원 측과 약국 개설을 신청한 약사는 제1종 근린생활시설이므로 약국 개설에 문제가 없고 개인 재산권의 침해라고 주장하며 인천시에 행정심판을 청구하고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하지만 인천시약사회는 만에 하나 이 병원 내에 약국 개설이 허가된다면 전국의 모든 병원에서 이와 유사한 형태의 약국 개설을 시도해 병·의원 인근 약국이 붕괴되고 의약분업의 원칙과 취지가 무너진다며 약국 개설의 부당성을 담은 의견서를 행정심판위원회에 제출하는 등 대책을 강구했다.
의약분업이란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원칙에 따라 전문 지식을 활용해 정확한 투약을 하도록 상호 감독하는 제도이다.
그러므로 병원 내에 약국이 개설되면 병원의 부속기관으로 전락해 의약품 선택과 투약 등에 있어서 환자의 건강보다 경영 수지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병원과 약국 간 담합을 방지하기 위해 병·의원의 직계가족은 인접한 거리에 약국을 개업할 수 없고 병·의원 구내는 물론, 시설의 일부를 분할해 용도변경하거나 개수해 약국을 개설할 수 없는 것이다.
의약분업 관련 약사법이 애매모호하거나 탁상공론 적이어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분업 초기, 의료기관과 약국이 입점한 지상층과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지하 상가를 매입 후 약국을 개설하려던 약사가 있었다. 하지만 허가를 내주지 않아 약국의 일부에 다중시설인 도서대여점을 열었다.
어렵게 약국 허가가 났으나 이번엔 엘리베이터가 위층에 위치한 의원과 공용 통로이기 때문에 계단만 이용해야 한다며 환자가 엘리베이터로 지하 약국에 내려가는 것을 차단시켰다.
피해 당사자인 약사가 보건복지부에 질의를 하자 담당자는 전화로 듣기 좋은 답변을 해주었다. 하지만 서면상의 정식 답변 요구에는 ‘최종 판단은 해당 보건소장의 권한’이라며 회피했다.
몇 개월간 속을 끓이던 지하층의 약사는 결국 병을 얻어 사망하고 말았다.
약국을 했던 자리여서 의원이 들어설 수 없고, 의원이 있다가 이사 간 점포여서 약국을 개설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처방 건수가 별로 없는 치과의원이 경영난으로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자 시설을 축소하기 위해 점포의 절반을 건물주에게 반납했고 건물주는 중계인을 통해 이 자리를 약국으로 임대했다.
약사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시설 공사를 마쳤지만 약국 개설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의원이 있었던 자리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병·의원의 주차장으로 사용해 오던 부지 한 모퉁이에 건물이 들어서더니 약국이 새로 생겼다.
바로 옆 건물에서 약국을 경영해 오던 약사는 ‘의료기관 내 약국 개설 허가는 부당하다’며 아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법은 사유재산권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며 새로 개설한 약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주차장의 일부였지만 병·의원과 이해관계가 없는 제삼자에게 매매해 소유권을 이전했고 건물도 제삼자의 명의로 신축했다는 이유에서다.
의약분업은 약국가의 풍토를 바꾸었다.
과거의 단골 약국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지만 요즘의 환자들은 처방전을 받은 병·의원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운 약국을 찾고 있다.
동네 약국이 문을 닫고 병·의원 부근에 약국이 몰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