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저 농담이려니 한 귀로 흘려보냈는데 출판사에 결재를 해달라고 정색을 한다.
초등학교 시절 한 때에는 소설을 쓴다고 컴퓨터와 씨름을 했지만 중학교에 입학한 후부터는 학교와 학원을 바쁘게 오가느라 작품 활동을 멈춘 줄 알았다.
서너 살 어릴 때부터 흥겨운 노래가 들려오면 몸을 흔들고 드라마의 슬픈 장면에선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던 아이였다.
‘뮬란’이란 중국 만화 비디오를 자주 본 딸아이는 늙은 아버지를 대신해 전쟁터에 나가기 위해 머리칼을 자르는 여주인공을 흉내 내느라 거울을 보며 가위로 제 머리칼을 자르기도 했다.
초등학교시절부터 야외에 나갈 때면 영감이 떠오른다며 메모지에 적어 내게 주곤 했지만 시에 무뢰한인 나로선 좋다는 말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딸아이는 책읽기를 무척 좋아한다. 틈만 나면 책을 펼쳐 제 엄마는 ‘그만 읽고 공부하라’는 말이 잔소리였다.
만화로 된 그리스신화를 몇 번 읽은 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신화전을 관람하던 딸아이는 안내원이 설명을 잘못 했다며 오히려 한수를 가르친다.
모 TV 방송의 퀴즈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나는 ‘우리 막내딸이 골든 벨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라며 무언의 압박을 가하곤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모 교육청에서 주최한 독서퀴즈대회에서 골든 징을 울렸고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성인들의 고난도 퀴즈도 제법 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학년에 올라 두 번째 골든 징을 울리기 직전 주최 측이 독도와 관련한 문제를 잘못 선정하고 매끄럽게 진행을 하지 못해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후 책을 멀리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마음의 갈피를 잡았지만 그 후 퀴즈란 말만 나와도 손사래를 친다.
서양화가인 제 엄마의 피를 닮아선지 컬러 찰흙으로 온갖 조형물을 만들고, 의상을 스케치하고, 못 쓰는 천을 재활용해 인형 드레스를 짓는 손재주도 있다.
나의 네 번 째 칼럼집과 딸아이의 첫 번 째 시집 출판 기념을 겸한 자리에 참석한 친지들은 막내딸이 다재다능하다며 장래 직업에 대한 부모의 희망을 묻는다.
자신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선택하기 바랄 뿐이라고 말하지만 전문직 화이트칼라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솔직한 욕심이다.
고교 진학을 앞두고 어린 나이에 새벽까지 책상 앞에 앉아있는 딸아이가 안쓰러운 한편 대견스러웠는데 어느 날, 조기 유학을 떠난 친구 이야기를 하던 중 저도 입시지옥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속마음을 무의식중에 털어 놓아 내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코카인에 손쉽게 노출된 환경, 귀국 후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방황과 기러기 가족의 사회적인 문제점을 보아왔기에 동의할 수 없다는 나름대로의 주장을 펴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간혹, 책을 많이 읽는 것만으로도 박학다식(博學多識)할 수 있으니 학교를 집어 치우고 차라리 도서관에서 독서나 했으면 하는 상상도 해 본다.
튼튼하게만 자라달라며 책상 위 형광등 불빛이 아닌 밝은 태양아래 초원을 마음껏 뛰놀고, 풍부한 감성을 살려 예술 활동이나 하라고 등을 떠밀고도 싶다.
하지만 딸아이도 부모도 차마 용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수험생 가족의 피할 수 없는 입장이다.
중등 교육이 고등학교와 대학 입시를 위한 전초 과정이며, 장차 사회에 진출해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선 수능시험, 대학입시, 입사시험 등을 대비해 어릴 때부터 각종 시험에 익숙해 져야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야외 자율학습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이를 마다할 학생이 어디 있겠는가.
과거 모 교육부장관은 취임 후 학생들이 원치 않는다며 한자교육에 등을 돌리는 근시안적인 정책을 강행한 결과 신문은커녕 한문으로 된 자신의 이름조차 읽지 못하는 세대를 양산했다.
요즘 수험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의 가슴을 찌르는 TV 공익광고 문구가 귓전에서 메아리 치고 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을 꿀 시간을 주지 않는다.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한다. 당신은 부모인가, 학부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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