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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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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유감
  • 의약뉴스
  • 승인 2010.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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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씩 인천지방검찰청 형사조정위원회에 참석한다. 형사조정위원회는 민원인의 고소사건을 경찰에서 수사해 검찰로 이첩했을 때 피의자와 고소인을 합의시키는 제도이다.

이 제도의 장점은 전과자를 감소시켜 밝은 사회를 조성하고 검찰의 수사력 낭비를 막는데 있다.

과거 이훈규 검사장 당시 창설돼 시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던 구속심사위원회는 이미 기소되어 있는 피의자를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도록 할 것인가, 불구속 상태에서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구로 형사조정위원회와는 기소 전과 후의 시기상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사건은 사소한 감정 다툼에서 시작된 것이기에 화해를 중재할 수 있는 역할도 제삼자가 나서야 한다.

조정위원들은 각계각층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일방적이 아닌 양측에 객관적인 화해를 권할 수 있다. 합의가 되고 안 되는 경우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득실을 설명해 주며 양측의 현명한 판단을 유도한다.

이번 달에는 고등학생이 중학생을 폭행한 사건으로 대리인으로 참석한 양측 모친들이 대기실에서부터 고성으로 언쟁을 벌이는 등 감정이 격해 개별적으로 면담을 해야 했다.

내용인즉 중학생이 하교 계단을 올라가다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고등학생의 팔을 건드렸고 고등학생은 중학생을 불러 얼굴과 무릎 등을 20여 회 구타했다.

고등학생은 사과를 안 해 구타를 했다고 했고 중학생은 사과를 했는데 듣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가해자 부모 역시 사과를 안 해 선배 입장에서 벌을 준 것인데 이런 일로 고소를 한 것은 너무 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피해자 부모는 남의 귀한 자식에게 이비인후과 진단 1주와 정형외과 진단 2주나 되는 폭력을 행사한 것은 선배로서의 계도 차원을 넘은 감정적인 폭행이며, 그동안 사과 한 번 안한 채 제삼자를 내세워 합의금 액수만 떠보는 부모의 안일한 사고방식과 무책임한 가정교육 때문에 자녀가 폭행을 저지르지 않겠느냐고 했다.

피해자 측은 진단서 비용을 포함한 치료비 50만 원과 이런 경우 얼마 정도의 위로금을 청구하면 되겠느냐며 조정위원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러나 가해자 측 부모는 진단서를 발급받았다는 자체가 단순 합의보다는 금전 보상에 목적이 있었으므로 위자료는커녕 진단서 비용을 절대로 지불할 수 없다는 의사를 강경하게 밝혔다.

피해자 측이 양보해 3분지 1에 해당하는 일백만원으로 합의금을 제시했으나 가해자 측은 단호하게 거절한 후 귀가했다.

피해자 측 부모는 학교에서도 정작 가해자 측이 자신에게 합의를 해달라고 사정하기보다 오히려 교직원들이 합의를 보라고 그녀에게 사정했다며 허탈해 했다.

그렇다고 가해자 학생의 앞날을 염려해 고소를 취하하는 것은 아들과 자신의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처사이기에 그럴 수 없다며 조정실을 나갔다.

자녀의 일생이 부모의 순간적인 감정 때문에 전과자로 전락한다는 사실이 안쓰러워 귀가중인 가해자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피해자 측과 합의할 것을 사정했다.

합의를 보면 전과가 3개월뿐이지만 합의가 안 돼 주임검사에게 사건이 넘어가면 평생 전과자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합의금이라기보다 자녀의 인생 교육 수업료로 생각하고 평생 폭력을 휘두르지 않도록 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라고 조언했다.

합의가 안 되면 소년 감호 처분을 받을 수 있고 이곳에서는 또 다른 범죄를 배울 수 있으며, 피해자가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청구하면 벌금 외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설명도 했다.

부모의 자존심과 아집을 버리고 창창한 자녀의 앞길을 생각해 제발 합의를 보라고 친인척도 아닌 내가 형사조정위원 자격으로 신신당부했으나 그녀는 변호사를 선임하면 된다며 전화를 끊었다.

3건 이상의 사건 중 1건이라도 화해 조정이 불성립되면 귀가해서도 마음이 무거운데 가정의 달에 모자가 관련된 사건이 불성립되었기에 한층 마음이 무거웠다.

때로는 학생의 신분과 장래를 감안해 부모에게 인도하기 위해 주임검사실로 출두를 요청하면 ‘그놈은 내 자식이 아니니 갈 수 없다’며 거부하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부자지간의 천륜은 부모 마음 내키는 대로 지울 수 없지만 개인의의 소유물처럼 자식의 장래를 부모의 감정에 따라 경솔히 결정해서도 안 될 것이다.



실제로 마트에서 쇼핑을 하던 모(某)씨는 몸을 돌리다가 손목에 건 플라스틱 장바구니로 옆 사람의 손등에 타박상을 입혔다.

별 일 아니어서 서로 사과하며 끝냈는데 피해자는 출구에서 모씨를 기다리고 있다가 합의금을 요구했다.

요구를 거절당하자 피해자는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한 후 모씨를 고소했다. 피해자는 손등 타박상으로 인해 신경염증을 일으켜 팔을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몇 개월분 치료비까지 요구했다.

조정을 맡은 전문의 조정위원은 ‘손등 타박상으로는 신경염도, 팔 마비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결론내리며 그간의 치료비와 교통비만을 받으라고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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