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이후 약국들이 병.의원의 폐문시간에 맞춰 초저녁에 약국 문을 닫고 있어 일반 응급약품조차 구입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약사들이 슈퍼판매를 반대하자 정부는 당번약국 강제화를 검토했다. 하지만 약사들은 자존심과 자영업권을 무시한 처사라며 반발했다.
고용창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재경부와 KDI(한국개발연구원)이 추진하고 있는 전문자격사 선진화방안은 일반인도 자본만 있으면 약사를 고용해 약국을 개업할 수 있다는 내용이어서 생존권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건물주가 현재 세입자인 약사를 내보내고 직원으로 고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약대 증원은 더욱 심각하다. 약학대학이 6년제로 전환됨에 따라 2년간 1,700여 명이 배출되지 않게 되므로 써 정부는 이를 보충하기위한 방편으로 약대 정원을 390명 증원키로 했다.
이것은 5개 도시에 각각 50명 정원의 약학대학을 신설하고 기존대학에 140명을 추가 배정한다는 안이다.
한 번에 390명이 증원되어 약사들이 졸업 후 설 자리가 줄어드는데다가 6년제 약대 졸업생과의 차별성으로 고민하던 중 정원 100명을 추가 배정하는 계약학과 제도는 약국가에 더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계약학과란 원래 산학협동 차원에서 업체에서 의뢰한 학생들을 대학이 특별 관리 교육시키는 제도로 인턴제와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다루는 약사를 계약제로 양산한다는 정책은 이해할 수가 없다.
약대 내 계약학과는 제약회사 직원 재교육 창구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질 저하는 물론 부정입학의 소지가 많은 제도이다.
계약학과의 순수한 의도는 제약회사가 자사 직원들을 기여 입학 형태로 장학금을 지원하며 약대에 입학시킨 후 졸업하면 회사로 되돌아가 정해진 계약기간 동안 근무를 하는 것이다.
문제는 힘든 입학 전형을 거치지 않고도 약대를 졸업할 수 있고 약사면허를 취득하고 나면 동등한 약사가 되어 약국도 개설할 수 있다는데 있다.
또한 계약학과 학생을 선발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이 제도가 제약회사 간부나 오너들의 가족과 친인척들의 부정 입학에 악용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현재 기존 약대에 배정된 계약학과 정원 100명을 놓고 전국 20개 약대 중 서울대를 비롯한 15곳에서 총 216명을 신청했다.
기존 약사들과 재학생들의 의사에 관계없이 약대 신설을 놓고 전국 33개 대학이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기존 약대들도 계약학과 정원을 놓고 치열한 정원 배정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교과부는 계약학과 정원을 원칙적으로 10명 이상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어서 신청한 15개 대학 중 5~10개 대학은 계약학과를 설치하지 못하게 된다.
반면에 성균관대약대, 강원대약대, 경성대약대, 조선대약대, 동덕여대약대는 계약학과 설립 취지 왜곡 등을 이유로 계약학과 설립 신청을 하지 않았다.
계약학과 정원을 신청하지 않은 5개 약학대학은 학생들을 교육해 제약산업에 종사토록 하는 ‘고용 계약형’이 아닌 기존 제약사 직원들을 입학토록 하는 ‘재교육형 계약학과’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했다.
15개 약대가 계약학과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와중에 지난 11월 25일, 전국약학대학 학생회협의회는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총궐기대회를 가졌다.
겨울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행된 이날 집회에는 전국 20개 약학대학에서 2천 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해 약대 신설과 증원, 계약학과 설치 반대를 주장했다.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얽힌 기존 약사도 아닌 약대 학생들이 왜 강의실을 박차고 거리로 나왔는지 교과부는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우려야 할 것이다.
아시아 모 국가에서는 과잉 배출로 인해 전문 자격사가 택시 운전을 한다고 한다. 직업의 귀천을 떠나 고급 인력의 낭비로 개인과 국가가 손해를 보는 일도 일어나선 안 된다.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다루는 전문직에 대한 교육정책을 백년대계가 아닌 시장논리에 맡기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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