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학교를 다니다가 적십자병원에 자원봉사를 나가는 분을 알게 되어 어느날, ‘나도 같이 봉사하자’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자리가 없다고 하여 몇 번을 부탁하였더니 얼마 후, 돌아오는 월요일에 같이 가자고 하여 적십자병원에서 자원봉사를 처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거즈 접기였습니다. 그런데 담당자가 ‘2층에 할 일이 많은데 거기서 일할 사람은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벌떡 일어나보니 저 혼자였습니다.
2층에 올라가니 박 과장님과 정 선생이라는 분하고 남자 두 분이 계셨습니다. 그곳은 헌혈용지를 관리하는 데 수 천 장이나 되는 일감이 너무 많아 1층에 내려가서 ‘할 일이 많으니 같이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왜 거기서 일을 하냐?’며 도와주지를 않아 할 수 없이 과장님과 일을 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헌혈 용지를 인명별로 접어서 봉투에 넣어 봉한 후 학생별, 개인별 따로따로 구별하는 것이었습니다.
봉사하고 싶은 차에 일을 만났으니 매일 아침9시부터 오후5시까지 즐겁게 근무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하는 사람이 세 사람으로 늘었는데 그분들은 오전만 근무하고 퇴근했습니다.
그분들이 일찍 퇴근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몇 년을 봉사를 해왔는데 어느날 기계가 들어왔습니다.
기계는 한 사람이 일거리를 올려놓으면 많은 분량을 다 알아서 해 저는 갑자기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석바위에 있는 서울여성병원에 아는 분이 입원해 있어 병문안을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인하대병원에서 자원봉사자를 받는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인하대병원 중앙 공급실에서 매주 수.목.금요일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자의 준수사항을 지키며 사명감을 갖고 진료 재료 소포장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면봉과 설압자를 포장하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포장지는 크고 면봉 설압자는 긴데다 정사각형 포장지를 반으로 접어 넣은 후 포장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자상하시고 인정이 많은 권 과장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면봉을 포장하다가 큰 포장지가 너무 아깝다고 하니 과장님도 고개를 끄떡이며 공감하셨습니다.
저는 용기를 얻어 ‘이렇게 삼각형으로 접어 자르면 포장지 절약도 되고 포장하기에 힘도 덜 들지 않겠어요?’하며 시범을 보였습니다.
그때부터 저와 권 과장님은 그 방법으로 일을 했으며, 무엇이든지 경제적으로 절약하고 아끼며 병원에 도움이 되는 봉사자가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또한 일을 할 때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의사선생님들이 진료하시기 편안하며, 여러 환자들께서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을까 연구하며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노력한 덕분에 환자들이 하루속히 병을 고쳐 건강하고 평안한 가정생활로 돌아가기를 기도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인하대병원 원장님을 비롯하여 여러 의사 선생님과 직원들께서는 항상 친절하시며 자상하시고 인정이 넘치는 분들입니다.
특히 원 선생님과 신 선생님은 저에게 잊을 수 없는 은인이십니다. 이렇게 인자하시고 아름다운 선생님들이 환자를 보살펴 주시고 진료를 하시니 어찌 빨리 병이 낫지 않겠습니까?
환자의 아픔을 치료해 주시는 인하대병원의 의사선생님들과 직원님들의 따스한 사랑과 숭고한 박애정신은 어두운 바다를 비추는 등대처럼 인천광역시는 물론 대한민국, 나아가서는 세계를 밝혀 주리라 믿습니다.
자원봉사로 제 인생에 새로운 보람을 안겨준 인하대병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그동안 어머니가 매일아침 집을 나가 저녁 때 들어오신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친구들의 모친 중엔 병석에 누워계신 분들도 계신데 나의 어머니는 오히려 병원에 나가 환자들에게 건강을 나눠주신다.
나의 어머니에게 자원봉사는 삶과 인생의 전부인 것 같다.
몇 년 전 자원봉사자 대회에서 금장 표창패를 받고 기뻐하시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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