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이 중진 의원을 공천장사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K 의원 부인이 4억 4천만 원을, P 의원 부인은 21만 달러 외 모피코트와 고급 양주를 서울의 모 구청장 출마 예정자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나라당 중앙당 공천심사위원회의 한 위원은 위 두 의원 외에도 8명 정도가 관련되었으며 이것은 공천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경남의 한 지역에선 기초의원 1억 ~ 3억 원, 광역의원은 3억-5억원, 기초단체장 공천엔 10억-15억 원이 정찰가라고 한다. 한나라당 게시판조차 ‘낙천자의 착수금이 이 정도인데 공천 당천자 사례금은 얼마이겠느냐’는 글이 올라와 있다고 하니 국민의 실망이 얼마나 크겠는가.
하지만 공천 장사는 예견된 일이었다. 8년 전, 필자가 처음 지자체 선거에 관심을 가졌을 때 모 시의원은 ‘정당은 의원을 만드는 공장’이라고 정의했다. 후보자가 똑똑하고 평소 사회에 봉사를 많이 하면 되지 정당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정치 문외한의 사고방식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값비싼 수업료를 대가로 치르고 난 후에야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공천장사의 빌미는 유권자들의 낮은 정치 수준에도 책임이 있다. 후보자의 자질보다 바람몰이에 휩쓸려 어느 땐 기호 1번, 어느 땐 기호 2번만 달면 무조건 표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선거 제도의 모순성에 있다.
지난 해, 기초의원까지 정당에서 공천을 하는 중선거구제 법안을 국회에서 제정할 당시, 대부분의 기초의원들은 ‘지방자치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나고, 공천권으로 입후보자들을 길들이려는 처사’라며 구의원 사퇴서를 일괄적으로 제출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과연 그 당시에 사퇴서를 제출한 구의원이 있었는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장래보다는 현실의 유급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그들은 당선에 유리한 당을 찾아 줄을 서기에 급급했고 당내 경선조차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게다가 일단 정당의 후보 경선에 참여하고 나면 무소속으로도 출마할 수 없는 현행 선거법 제57조 2의 2항 때문에 경선은 결선이나 다름이 없고 실권자의 눈 밖에 나면 경선조차 불가능한 것이 냉혹한 현실이기에 공천 헌금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초의원까지 확대시킨 비례대표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 애당초 비례대표 제도를 도입한 취지는 각 전문 직역의 참신한 대표를 의회에 입성시켜 그 기능을 충분히 활용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국회의원, 시의원에 이어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기초의원까지 비례대표제를 도입 하지만 정치자금 마련을 위한 노골적인 공천 장사에 이용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 국민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문제는 공천을 받기 위해 수억 원을 상납한 후보가 선거 과정에서 더 많은 불법 자금을 뿌릴 것이라는 데 있다.
또한 그들이 당선 후 투자한 공천 헌금과 선거자금을 뽑기 위해 부하직원들의 인사 청탁과 각종 인. 허가를 비롯한 관급공사에 사리사욕을 결부시키게 된다는 사실이다.
결국 공천 비리는 먹이사슬로 이어져 혈세가 낭비되고 지방행정이 마비되어 초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매관매직의 병폐를 21세기 현실에서 접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정당의 인기가 상승했다고 해서 결코 오만해서는 안 되며, 그 프리미엄을 공천 장사의 제물로 삼아서도 안 된다.
평소에는 웃는 낯으로 ‘가장 참신하고, 전문지식을 갖춘 능력 있는 일꾼’이라고 추켜세우다가 막상 선거 때가 되면 정색을 하며 한 순간에 공천의 기준을 바꾸는 정치 풍토 역시 사라져야 한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는 한 유권자들은 이번 지방선거는 물론 다음 총선에 등을 돌리게 되고, 정치인들은 ‘공천 장사꾼’으로 국민들의 가슴에 영원히 새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