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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오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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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오염
  • 의약뉴스
  • 승인 2007.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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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보건사회부에서 마약류 남. 오용 예방 운동의 일환으로 표어 모집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추방하자 백색 가루, 예방하자 백색공포’라는 작품을 응모하여 가작을 차지했다.

 물론 나는 백색 가루를 본 일조차 없다. 하지만 마약 중독의 무서운 결과만큼은 매스컴을 통해 자주 보아 왔다.

 요즘, 일회용 1cc 주사기를 판매할 때마다 섬뜩함을 느낀다. 당뇨병을 치료하기 위해 인슐린 주사용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혹시나 히로뽕(필로폰)을 주사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다. 생각 같아선 일회용 주사기 판매의 제도적 보완을 강구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약사회 임원으로 약사 자율 감시를 하다 보면 잠깐의 부주의로 본의 아닌 피해를 당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한외 마약이나 향정신성 의약품의 판매량을 제대로 기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 중엔 한 개인을 중독자로 만들기 위해 고의적으로 장부에 기록하지 않고 감시 대상 의약품을 판매한 약사는 없다. 약국 청소부터 의료보험 수가 계산, 세금 계산서 관리, 독. 극약 판매 대장 관리 등 격무에 시달리다 보면 본의 아니게 판매 수량 기재에 오차가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약사인 나 자신조차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업소는 따로 있다. 법적인 규제를 받지 않는 맹점을 이용해 환각성 약품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비양심적인 무리들이다.

 한 때 그들은 J제약회사의 진해제(기침 치료약)를 봉투에 수십 알 씩 소분해 놓고 ‘킹’이라는 암호로 청소년들에게 판매했다. 도의적인 문제를 거론하면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약이니까 양심상 꺼릴 이유조차 없다고 오히려 항변을 한다. 하지만 법이란 사람이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므로 법 이전에 인간성의 회복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흔히들 초등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아이들이 물건 값으로 내는 돈을 코 묻은 돈이라고 표현한다. 50알 혹은 100 알씩 ‘킹’봉투를 준비해 놓고 청소년들의 꼬깃꼬깃한 주머닛돈을 노리는 군상들을 과연 약의 최고 권위자나 전문가로 대우해야 할지 분노가 치밀 뿐이다.

 그들은 약의 전문가가 아닌 판매원일 뿐이다. 도덕성을 상실한 돈의 노예일 뿐이다. 그들의 양심은 오염될 대로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의 자녀가 다른 약국에서 ‘킹’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복용하고 환각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면 어찌했을까? 아마도 같은 부모의 입장으로 돌아가 양심이 오염된 몰지각한 인간이라고 매도했을 것이다.

 나는 ‘킹’을 요구하는 청소년들에게 두 번 다시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꾸중을 쳐서 보낸다. 간혹 부모님의 심부름이라고 핑계를 내세우는 경우도 있지만 그들의 잔꾀에 넘어가지 않는다. ‘아빌’이라는 항히스타민제 피부약을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요구해도 마찬가지로 거절해 버린다.

 요즘은 ‘지페푸롤’제재가 문제 청소년들의 인기 품목이 되었다. ‘덱스트로메트로판’의 알약을 크게 만들어 수십 알씩 삼키기 힘들자 작은 캡슐의 ‘지페푸롤’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약 이름을 다 말하기도 전에 그들을 약국 밖으로 내쫓는 것이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그들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는 매우 많다. 정작 환자들이 필요로 하는 약품은 이미 규제 대상 약품이 구하기조차 힘들고 사용량마저 제한되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선 타인은 안중에도 없다는 식의 ‘양심 오염’ 탓이다.

 마약의 오염은 육체를 파멸시켰고, 양심의 오염은 이 사회를 타락시켰다. 무서운 세상이다. 심각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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