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부장이 된 후 첫 번째 과제는 인천지방경찰청을 방문하는 일이었다. 대관업무가 선거 공약의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새로 부임한 인천지방경찰청장에게 축하 난을 보내고 각 경찰서 업무 시찰이 끝날 무렵, 부속실로 전화를 걸어 방문 일정을 논의했다.
대관업무는 연속적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처음 물꼬를 트는 일이어서 난관이 많았다. 관계가 개선된 후, 부속실로부터 과거 경찰청과 약사회에 얽힌 에피소드를 전해 듣고서야 경찰청장 예방이 힘들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역경 끝에 청장실을 방문하기까지엔 신임 한진호 청장과 막역지우인 내 동생의 역할이 매우 컸다.
부속실에 들어서자 한 청장은 복도까지 마중을 나와 내 손을 잡고 청장실로 안내했다. 용무를 마치고 나올 때도 전용 엘리베이터까지 배웅을 하는 파격적인 환대를 해 주었고 담당 직원은 주차장까지 따라와 안내를 해주었다.
이런 극적인 관계에도 불구하고 여름철이 다가올수록 불안해 지는 것이 있었다. 경찰의 국민건강 위해사범 기획수사가 그것이다. 신임 한 청장님께 경찰의 약국 단속의 문제점에 대해 이미 말씀드렸지만 단속은 각 경찰서 수사과에서 착수하는 것이기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시. 도지부장 회의 중 경찰이 약국을 단속하고 있으며 모 임원이 적발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지난해처럼 또 다시 엄청난 숫자의 약국이 적발되어 수억 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상상만 해도 현기증이 났다.
적발된 당사자들은 지부장의 전화 한 마디면 해결될 줄 알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단속을 하러 다니지 않도록 사전 작업을 하는 것이 대관업무이지 일단 적발되면 구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저기 손을 써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법에 따라 불법을 단속하는 경찰을 탓할 수만도 없었다.
때마침, 93년 남동구 분회장 당시부터 인연을 맺어오던 언론사와의 정기 간담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어려운 현실을 호소했다.
2004년 9월 20일자 인천일보에는 <경찰, 건강 위해 사범 단속 실적위주-적발하기 쉬운 약국에만 치우쳐>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당일 오전, 한진호 인천지방경찰청장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 ‘단속 실적을 경쟁시키지 않았는데도 애꿎은 약국을 과잉 단속한 직원들을 철저히 교육시켜 경찰의 이미지를 훼손시키고 민생에 피해를 주는 무리한 약국 단속을 자제 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한 청장은 유효기간이 지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제품은 약국뿐 아니라 슈퍼나 구멍가게에 진열된 과자류ㆍ음료수ㆍ식품을 비롯해 얼마든지 적발할 수 있고, 약사 면허증을 소지하지 않은 자가 의약품을 판매하는 불법 행위는 정류장 노점ㆍ슈퍼와 구멍가게ㆍ 목욕탕 매점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는 실정도 익히 알고 있었다.
약사회 회원들의 불만은 슈퍼 등 약국 외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하다 적발될 경우 약사법 제74조에 의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 천만 원 이하의 벌금 처분을 받는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구멍가게에서 이뤄지는 불법 행위는 방관된 채 약국만 단속된다는 데 있다.
요즘 보도되고 있는 식품 관련 수사 내용을 보면 수입 소고기를 한우로 속여 몇 배의 이익을 내는 경우, 포장을 바꿔 쌀 생산지를 속여 파는 행위, 중국산 소금에 국산 소금을 약간 섞어 순수 국산품으로 위장해 10 배의 폭리를 취하는 경우, 유명 음식점에서 조리한 비싼 요리가 유효기간이 지난 재료를 사용했다는 놀라운 사실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고의적인 그들의 수법에 비하면 약국에서 일손이 부족해 수 백 수 천 가지 약품 중 미처 발견하지 못한 한두 가지 유효기한 경과 약품은 범죄 측에도 낄 수가 없을 것이다.
구멍가게 주인이 의약품을 판매하는 행위를 서민 생계와 사회 여론에 결부시켜 묵인하면서 약사 가족이나 종업원이 약사의 일손을 돕는 것을 과잉 단속하는 것도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2002년부터 보건범죄 특별 단속기간만 되면 약국이 단속 실적을 올릴 수 있는 만만한 대상이 되어 왔다.
더욱이 수사권을 내세워 관할 외 지역까지 단속을 하다 보니 경찰서 간 감정싸움으로 번져 결국 특정 지역 약국만 2중 3중으로 단속되는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한 청장의 지시로 단속이 중단되는가 싶었는데 보름 후 또 단속이 시작되었다. 이번엔 별로 단속을 하지 않았던 모 경찰서에서조차 영세한 약국을 적발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한 청장님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느냐 마느냐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내게 적어준 휴대폰 번호로 통화를 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한 청장은 대노하며 ‘지시를 어기고 약국을 단속한 내용을 경찰서별로 보고하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각 경찰서는 적발된 약국을 위반이 아닌 지도 점검으로 보고했고 더 이상 단속은 없었다.
다행히 한 청장님의 전화 한 통으로 신임 지부장이 취임한 이래 공을 들여 온 약사회-경찰 간의 신뢰 회복에 금이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시민을 위해 쌓아 온 인천시약사회 - 경찰 협조체제가 더 이상 와해될 염려도 없어졌다.
그렇다고 우리가 약국 관리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 더욱 약국 관리를 철저히 하여 자율지도권도 되찾아 와야 한다.
다시 한 번 한진호 인천지방경찰장님께 1,150여 회원들을 대신해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