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부장에 당선된 후 가장 힘들었던 일은 집행부 임원 임명이었다. 논공행상(論功行賞)보다 각 분회와 동문회에서 추천한 인물을 우선하다 보니 한 달이 지나도록 부회장 선임을 할 수 없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떼 놈이 챙긴다’며 고생은 누가 했는데 왜 저놈이 집행부에 무임승차를 하느냐고 내게 항의를 했다. 정작 도움이 아쉬웠던 대학 동문들은 ‘지부장이 회무를 집행하는데 걸림돌이 되면 안 된다’며 임원직을 일체 거절했다.
그런가 하면 A약사를 만나면 B약사를 조심하라고 했고 B약사를 만나면 A약사에게 이용당하지 말라고 조언해주기도 했다.
어느 날, 모(某) 임원이 분회와 지부 상임위원장을 비롯한 임원 합동 단합대회를 1박 2일로 가져야 단합이 잘 된다며 행사 추진을 재촉했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응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1백여 명 에 이르는 인원을 동원시키려면 최소한 1천 여 만 원 이상이 소요되는데 그만한 예산도 없었고 의약분업 이후 약사회에 협조해 줄 제약회사를 찾는 일도 힘든 일이었다.
결국 임원 동원의 열쇠를 쥐고 있는 분회장단과 지부 임원 연석회의를 열고 다수결에 따르기로 했다. 대부분의 분회장들은 아직 임원도 구성 못했고, 1박 2일의 일정을 따를 임원은 거의 없다는 의견을 내었다.
이 결정에 따라 그 임원의 제안은 없던 일로 했고 나를 가장 견제하던 모(某) 약사조차도 이번 결정이 현명했다며 박수를 보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 임원은 지부장이 아닌 사무국장에게 사표를 전달한 후 내 곁을 떠났고 나는 그의 허리춤을 잡지 않았다.
이듬해,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히자 1박 2일로 분회 총무를 포함시킨 임원 단합대회를 준비했다. 하지만 40 여명을 예상한 참가 인원은 출발 당일 절반으로 줄었다. 물론 행사를 준비하며 이미 맞춰 놓은 음식 값은 지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년 전, 만에 하나 지부 - 분회장 연석회의를 거치지 않은 채 그 임원의 지시대로 경솔하게 단합대회 행사를 추진했더라면 어쩔 뻔했을까 상상하는 순간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 후 나는 분회장 - 지부 회장단 및 상임이사 합동연석회의를 자주 갖는다. 회원들을 동원하고 회원들로부터 회비나 성금을 갹출하는 창구는 분회장이므로 부지부장이나 지부 상임이사만큼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야 회무가 순탄하게 돌아간다는 나만의 회무 철학 때문이다.
전국 약사대회 당시의 일이다. 지부 상임이사회는 지부연수교육을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일정을 잡았다. 하지만 얼마 후 전국약사대회 일정이 확정되었다. 분회장들은 의약분업 하에서 1주일 간격으로 회원들을 두 번 동원시킬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나는 지부 - 분회장 연석회의를 개최한 후 다수결에 따라 앞서의 상임이사회 결정을 포기하고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약사회는 회원들을 위해 존재하는 기구이므로 지부 상임이사회의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실리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모 상임이사는 ‘지부에서 결정한 일이니 분회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취중(醉中) 발언을 하여 분회장들과 마찰이 일기도 했다.
다행히 전국약사대회 왕복 버스 안에서 화상 교육을 실시하기로 합의를 보았지만 지부는 결코 분회의 상급 기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임원들에게 확인시켰다.
지부장이 왜 분회장들에게 굽실 거리냐는 항의도 받았지만 분회장을 역임해 보지 못한 임원의 짧은 생각이다.
또한 상임이사를 무시하고 분회장만 중시한다고 불평하지만 지부 임원진과 분회장의 연석회의는 누구든지 공평하게 의견을 낼 수 있는 회의 기구이기에 앞으로도 변함없는 나의 회무 스타일이 될 것이다. 다수결은 여러 사람의 고견을 들을 수 있는 민주주의 방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