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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公約)과 공약(空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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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公約)과 공약(空約)
  • 의약뉴스
  • 승인 2006.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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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이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어린 시절엔 그런 억지가 어디 있느냐며 코웃음을 쳤지만 인생을 살다보니 이런 저런 일로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20년 가까이 소유하고 있던 주택을 매도한 후 약사회관 근처에 아파트를 매입했다. 이때부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국세청에서 조사반이 들이닥쳤다. 주소지가 약국으로 되어있으니 1가구 1주택으로 매도한 주택을 1가구 2주택으로 양도세를 다시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20년 전, 약국 근처에 주택을 건축하고도 주소를 이전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애당초 주소지인 만수동 생가(生家)는 11대를 살아 왔지만 등기조차 없는 시골 농가였다. 조상들이 살아 온 고향인 만수동 주소를 포기할 수 없다며 버티다가 지금의 간석동 약국으로 주소를 옮긴 데에는 집을 비운 사이 각종 공문과 고지서의 배달사고를 막고 98년 지방자치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였다. 약사회 근처에 아파트를 구입하고도 아직까지 주소지를 이전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부장에 취임한 후에도 국세청의 조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어 폐업을 하거나 주소 이전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부가세 신고 실수로 간이사업체가 일반사업체로 전환되어 지금 당장 폐업을 하면 재고 약품에 대한 10% 부가세를 환수당할 처지였다. 절세를 위해 세무사의 조언에 따라 6개월 후 간이과세로 전환될 때까지 개점휴업 상태에서 폐업을 보류시켜야 했다. 이것이 약국 문을 닫고 지부장실에 상근을 하면서도 폐업을 할 수 없는 이유였다.

  지역 주민과의 유대를 지속하고 세입자와 건물을 관리하기위해 저녁시간 외부 행사가 없는 날이면 텅 빈 약국에 들렀다. 어쩌다 한밤중에 문을 연 외진 약국에 손님이 올 리도 없었지만 이웃으로부터 동네 소식을 듣고 약국 컴퓨터를 이용하여 약사회보 편집을 하다가 밤 12시가 다되어 아파트로 돌아가곤 했다.

 이러한 속사정을 알 리 없는 모 회원이 밤중에 내 약국에 불이 켜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공약(公約)을 위반했다며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모 전직 임원은 컴퓨터를 지부장실로 옮긴 후 약사회관에서 회보 편집 작업을 하면 약국에 갈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호통을 쳤다.

 공무원과 약사회 사무직원 퇴근 시간 후의 내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그들이 면허를 빌려 약국을 2 - 3 곳씩 경영하는 약사들에 대해선 왜 관대한 것인지 이해가 안 갔다.

 모 지부장과 타 지역 회원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도대체 연봉을 얼마나 받기에 그런 수모를 당하느냐? 받았으면 당장 폐업을 하고, 무보수 봉사를 하고도 그런 수모를 받는다면 차라리 당장 때려치우라!’고 조언해 주었다.

 모 임원은 폐업도 하지 않았으면서 신상신고를 비개국 회원으로 했다고 꼬투리를 잡았다. 애당초 약국을 폐업할 생각으로 비개국으로 신고를 했지만 아직 일이 매듭지어지지 않아 서류상 폐업을 못한 것이라고 해명하며 폐업할 의지가 없었다면 개국 회원으로 신상신고를 했을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문제가 해결되기를 차일피일 기다리다가 만에 하나 금년 중에 해결되지 않아 폐업을 하지 못하면 약국 영업을 하지 못했더라도 개국 회원으로 신고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원리원칙대로 폐업을 했다가 내가 손해를 당한다고 해서 약사회나 말만 앞세우는 그들이 수억 원의 양도세를 대신 납부해 줄 것도 아니지 않는가.

 폐업을 못했지만 착실하게 상근을 한 내 경우와, 약속대로 폐업을 했지만 약사회 업무를 본다며 밖으로도 나돌기만 하는 공약(空約)의 경우 중 과연 어떤 것이 회원들을 위한 공약(公約)인지는 삼척동자도 판단할 것이다.

 “아예 신상신고조차 하지 않고 약국을 경영하는 회원이 있는가 하면 반년이 넘도록 약국을 경영하다가 폐업을 하면서 비개국 회원으로 신고하는 임원도 있다. 그런가 하면 6개월 이상 개업하다가 단 한 푼도 내지 않고 슬그머니 타 지역으로 이전하는 회원도 있는데 폐업을 못했을 뿐 약국 문을 닫고 상근하는 지부장이 사정이 생겨 임시로 비개국 회원 신고를 한 것이 큰 문제인가? 경찰 단속으로부터 회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결과 많은 회원들이 전처럼 수 억 원의 벌금을 물지 않도록 고생했는데 약사회에서 단 돈 50만원을 대신 납부해주어도 될 일이 아니가?”

 이런 말을 대신 해주는 임원은 아무도 없었다. 설사 그렇게 해준다 해도 회원들의 피와 땀이나 다름없는 소중한 회비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분회장 시절, 신상신고를 받는 여직원을 매년 도와주다가 회원 한 명의 회비가 모자라는 일이 생겼다. 당일 신상신고를 마친 회원에게 일일이 확인 전화를 했지만 50 여만 원이 비어 결국 내가 변상하고 말았다.

 여직원에게 변상시킬 수도 없었고 그 당시 나와 비슷한 배달사고로 차액이 생긴 회비를 공금으로 결손 처리한 모 분회를 따라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의 조사를 마친 국세청은 2004년 말이 되어서야 종결시켰고 결국 2005년 초 부가세 신고를 마친 후에야 폐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역 관리를 위해 아직도 약국 점포를 임대하지 않고 있으며 2-3일에 한 번씩 들러 우편물을 챙겨 오고 있다.

 2004년에 폐업을 못한 죄로 남동구분회에 개국 회원 신고비용을 추가로 납부했고 2005년과 2006년엔 가장 먼저 비개국 회원 신상신고를 마쳤다.

 약국 폐업 시비, 비개국 회원 신상신고 시비에 이어 이번엔 회장직 사퇴를 들고 나왔다. 이른바 탄핵이었다. 지부장 출마 공약의 하나로 중간평가를 받겠다는 약속을 했더니 이번 사건에 결부시킨 것이다.

 애당초 나의 중간평가 약속은 ‘회무를 게을리 하면 중간에 탄핵을 받을 각오로 열심히 봉사하겠다’는 재다짐이었고 그동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열심히 뛰었다.

 이번 총회 석상에서 그들은 탄핵을 표결할 심산이었다. 나는 직선제 회장이니만큼 몇몇 대의원이 아닌 전체 회원들의 심판을 받겠다고 했다. 그 동안 혼신을 다 바쳐 약사회를 사랑했노라 모든 회원들에게 떳떳하게 외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에게 이제라도 재평가 약속을 취소하라고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기왕 일이 이렇게 확대된 이상 회원들의 심판을 받고 싶었다.

 탄핵 문제로 두 시간 이상을 소비한 총회는 결국 대한약사회 정관에 재평가 투표가 없다는 결론에 따라 없었던 일이 되었다.

 


 그 후, 나를 괴롭혀 온 그들은 과연 얼마나 원리원칙과 약속을 지키며 세상을 사는가 싶어 수시로 그들의 야간 약국 근무 상황과 약사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 보았다. 어이가 없었다. 결국 모 기관과의 면대약국 심야 단속 계획도 보류시킬 수밖에 없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그 누구에게나 ‘부득이한 경우’가 닥칠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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