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부장 취임 2개월 후, 승용차를 바꾸었다. 물론 공약에 없는 사항이지만 13년을 타며 엔진 보링을 두 번이나 한 승용차라서 고장이 잦았다. 혹시라도 회의에 참석하는 도중에 고장이 나면 인천시약사회원들에게 누를 끼칠 것 같아 큰(?) 결심을 했다.
차량은 장애인용 기아 옵티마 LPG 수동 변속형 2000cc 였다. 장애인 면세 혜택으로 등록비까지 천만 원이 채 안 든 값싼 승용차였다.
친지들은 인천시약사회장 체면도 있는데 대형 승용차를 선택하지 않았다며 혀를 찼다. 아마도 약사회에서 전용차를 구입해 주는 줄 알았나 보다.
취임 초기, 내가 상근을 한다고 하자 각 기관 및 사회단체장들은 축하인사를 하면서 ‘연봉은 얼마이냐? 승용차는 어떤 차종이 나왔냐? 운전기사도 있느냐?’는 질문을 후렴처럼 달았으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내 성격을 잘 아는 가족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13년 간 11만 킬러미터를 주행했지만 지부장이 되고난 후부터는 월 평균 2천 킬로미터를 주행하고 있기에 LPG 차량, 그것도 가스가 덜 소모되는 수동 변속형 승용차가 아니고는 판공비로 연료비까지 감당할 수 없었다.
차량의 구입비, 보험료, 감가상각비 등 도 내가 부담해야 했기에 대형차는 언감 생시 꿈도 꾸지 못했다. 또한 각계각층의 사회 인사들에게 신문에 글 잘 쓰고, 좋은 일 많이 하는 인천시약사회장으로 알려지고 싶었지 대형 승용차 타는 돈 많은 약사로 각인되고 싶지는 않았다.
13년 전, 그 당시엔 고급에 속하는 수동형 스틱 그랜저를 구입했지만 얼마 안 돼 보링을 한 쓰라린 경험이 있어 고급 승용차에 대한 집착도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그랜저 승용차의 계기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여 정비소를 들러야 했다. 하지만 당시 분회장 직이 너무 바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모 임원이 장인 상(喪)을 당해 영등포에 소재한 영안실로 조문을 가야 했다. 후배들이 제 차로 나를 모시겠다고 했지만 온종일 약국 업무로 피곤에 지친 후배들이 안쓰러워 내 차의 시동을 걸었다.
경인고속도로를 잘 달리던 그랜저가 목동 입구에서 갑자기 엔진이 정지된 채 멈추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지만 때마침 문을 연 정비소가 있어 도움을 청했다. 정비사의 말로는 엔진오일이 없어 피스톤이 실린더에 달라붙었다고 했다.
계기의 경고등은 엔진 오일의 부족을 예고한 것이었다. 더 이상 운행을 할 수 없으니 가까운 정비소에 보링을 맡기라고 권했지만 문상(問喪)을 마친 후 다른 임원의 승용차에 매달린 채 인천에 있는 단골 정비소로 이동시켰다.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단골 정비소에서 엔진오일을 교환할 때 오일통 마개를 제대로 닫지 않아 볼트 사이로 오일이 샌 탓이었다.
값싼 승용차를 운전하는 대가로 수난을 치른 적도 없지 않다. 인천을 대표하는 지도층 인사들의 모임인 인화회의 9조 월례회가 모 음식점에서 있었다. 지각하는 것보다 조금 일찍 참석하는 것이 돈 들이지 않고도 약사회 위상을 높이는 방법의 하나이기에 10분 정도 먼저 도착하여 주차를 했다.
마침 주차장엔 그 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는 원로분이 도착하고 있었다. 음식점의 주차장 관리인은 원로분의 대형 승용차를 식당 입구로 이동시켜 주었다. 내가 하차하려는 순간 식당 주인은 차를 뒤로 빼라고 손짓을 했다. 어느 곳으로 옮기라고 자리를 지정해 주었다면 알아서 운전을 할 텐데 무조건 후진하라며 수신호를 계속했다.
차는 주차장 내리막길에서 뒤로 밀리며 앞부분이 주차장 입구 쇠파이프에 긁히고 말았다. 음식점 입구에 어렵게 주차를 했을 때 주인은 오토가 아니어서 운전을 대신 못해주었다며 사과를 했지만 문제는 그 후의 일이었다.
내 차를 빼낸 좋은(?) 자리엔 뒤늦게 참석한 분들의 외제 승용차와 대형 승용차가 대신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날 기분은 엉망이었지만 내색조차 할 수 없었다.
때로는 ‘옷이 날개’가 되는 것이 인생사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