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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근 약사회장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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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근 약사회장 Ⅰ
  • 의약뉴스
  • 승인 2006.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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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의 공약은 절반만 지켜져도 성공작이라고 한다. 하기야 열애 중인 남성도 여심(女心)을 사로잡기 위해선 ‘하늘에 있는 별을 따주겠다’는 거짓말을 하는데 일단 당선되고 보자는 정치인들의 심정이야 오죽하랴.

 인천시약사회장에 출마하며 나 역시 공약을 내 걸었다.

 첫째는 회원들의 권익을 위해 창과 방패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회원들이 안심하고 약국을 경영할 수 있도록 대관업무를 충실히 하는 한편 수필가라는 능력을 살려 언론에 자주 기고하므로 써 약사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약국을 폐업하고 사무실에 상근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선자 발표가 끝나고 해가 바뀌자 ‘설마 네가 상근 약속을 지키겠느냐?’ 반신반의(半信半疑)한 모 회원이 사무국으로 확인 전화를 걸어왔다. 사무국은 ‘상근을 안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아직 이. 취임식 총회를 치르기 전이어서 지부장실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무국에서 내게 신상을 밝혀주지 않았지만 실망과 함께 ‘그럴수록 열심히 상근하겠다’는 각오를 안겨준 전화였다. 

 근무를 충실히 하기 위해 약사회관 근처에 아파트를 구입했다. 내 인생의 스승으로 삼아 온 고등학교 은사의 정년 퇴임식에 참석했을 때 감명 깊게 들은 퇴임사 때문이었다.

 내 학창시절에도 학생들의 권익을 위해 재단 측과 투쟁을 하셨던 그분은 결국 다른 학교로 전근하시고 그곳에서 정년퇴임을 하셨다. 선생님은 학교가 잘 보이는 인근에 살림집을 마련해 놓으시고 시시때때로 교정을 드나드시며 학생들과 시설물을 보살피셨다.

 한 밤중에 불이 켜져 있는 교실이 보이면 달려가 스위치를 내리고 오신 후에야 잠자리에 드실 수 있었다며 ‘몸담고 있는 직장을 사랑하고, 맡은 바 임무에 충실 하라’는 퇴임사를 끝으로 교단을 떠나셨다 .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오래 전 어느 추운 겨울날 약사회관을 들렀을 때, 수도가 제대로 잠가지지 않아 수돗물이 펑펑 쏟아지고 주차장 바닥이 온통 얼음판이 되었던 광경이 떠올랐다. 손을 써보려고 했지만 수도꼭지 안의 고무 밸브가 닳아 소용이 없었다.

 내가 약국을 폐업하면서까지 상근을 하게 된 동기도 그분 때문이다. 고교 1학년 시절, 내가 장애를 비관하며 3개월간 결석을 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퇴학 대신에 ‘하찮은 호랑이도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데 만물의 영장인 너는 무의미하게 인생을 소비하려 하느냐?’며 눈물로 호소하셨다.

 선생님 덕분에 다시 등교를 하였고 뭔가 보람 있는 일을 남기기 위해 약사가 되었고 오늘의 약사회장이 되었다. 

 나는 상근을 하며 점심 식사는 새로 이사한 집에 가서 했다. 주변에서는 약사회 임원들을 초청해 집들이를 하라고 했지만 타인에게 부담을 안겨 주는 것도, 과시하려는 듯한 오해도 주고 싶지 않아 한 귀로 흘려버렸다.

 또한 내가 11대 대대로 살아온 곳이 남동구 지역이기에 회장 임기가 끝나면 이 아파트를 매도하고 떠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파트가 약사회관 근처에 있어서 토요일이든 공휴일이든 한 밤중이든 시시때때로 드나들 수 있어 편했다. 매달 발행하는 회보의 편집 마감이 다가오면 1주일 동안 밤 12시까지 근무를 해야 하는데 늦게 퇴근해도 부담이 없어 좋았다. ‘먼 곳의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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