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인생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애틀랜타’ 올림픽 개회식 중 절정의 순간이었다. 최후의 성화 봉송자로 모습을 드러낸 ‘무하마드 알리’. 그는 더 이상 떠벌이도 아니었고 ‘나비같이 날아 벌같이 쏜다’ 던 무적의 프로 복싱 챔피언도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자부했던 그는 우리가 중풍(中風)이라고 부르는 ‘파킨스 씨 병’ 환자에 불과했다. 나비의 날개처럼 사뿐거렸던 그의 두 발은 바위 덩이처럼 무거웠고 벌처럼 날카롭게 쏘던 주먹은 쉴 새 없이 떨고 있었다.
화무는 십일 홍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며, 인간의 앞날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가 보다.
중풍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섬뜩 소름이 돋는다. 나의 할아버님은 7년, 할머님은 3년을 중풍으로 앓아누우시다가 돌아가셨고 작은 할아버님은 뇌출혈로 돌연사 하셨다. 두 할아버님께서는 과음으로 인해 풍을 얻으셨기에 유전적인 중풍이 나에게까지 차례 오지 않을까 늘 긴장하며 술을 사양하곤 한다.
오래 전, 나의 죽마고우가 모친께서 머리에 타박상을 입은 후 기력이 쇠잔해졌다며 한방 보약 처방을 부탁해 왔다. 뇌혈관 파열로 중풍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나는 치료제가 아닌 보약일랑은 절대로 드리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내가 할머님께 애틋한 효도를 한답시고 보약을 지어 드릴 때 은사님께선 ‘노인에게 보약을 드림은 불효가 될 수 있다’는 충고를 하셨다. 그 말씀을 증명이라도 하듯 할머님께서는 삼년을 누워 계셔야 했고 임종 녁에는 일주일 동안이나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헤매다가 고통스런 영면을 하셨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지만 한 맺힌 교훈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다행히도 요즘은 건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져 평소에 건강 진단을 받는 등 자신의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연치 않게 초기 암을 발견하여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건진 사람도 있다.
그런 반면에 재산이 많으면서도 오직 돈 모으는 재미에 팔려 건강 진단은커녕 안주 값이 아까워 생소주를 마시다가 간 경화증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다.
‘있을 때 잘해!’ 란 말은 고인의 영전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유족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더 소중하게 간직해야 훗날 어리석은 후회를 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