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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5-07-17 07:57 (목)
잊을 수 없는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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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환자
  • 의약뉴스
  • 승인 2006.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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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병원의 영안실은 빛바랜 고목 한 그루가 우중충한 천정을 뚫고 하늘로 솟아 있다. 허공을 향해 벌린 가지는 구천(九天)을 헤매는 영혼들을 달래려는 듯 한 애절한 모습이다.

 영안실이란 어느 곳이나 공통적인 분위기가 있다. 이를테면 안개가 깔린 듯한 음침함이라든가 코끝을 찡하게 자극하는 만수향 냄새이다. 게다가 유족들의 통곡 소리는 스산한 공기를 더욱 침울하게 만든다.

 K병원 영안실의 고목만큼이나 약사라는 직업도 인간의 生과 死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직업이다. 그러다 보니 잊을 수 없는 , 아니 잊혀 지지 않는 환자의 사연을 간직하게 된다.

 흔히들 팔자소관이라던가, 운명 또는 숙명이란 말을 자주 쓴다.

 줄자로 잰 듯 정해진 인생을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기에 혹자는 우연한 기회에 암세포를 조기 발견하여 장수를 누리기도 한다. 반면에 병명조차 밝히지 못한 채 병고에 시달리다가 삶의 여정을 마감하는 환자도 있다. 가까운 이웃 친지들의 영혼을 달래 줘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이 영안실을 찾아와 향을 지피곤 했다.

 내 약국 이웃에는 폐결핵으로 오랫동안 투약을 해 온 오십대의 C씨가 살고 있었다. 폐결핵이란 한 시절, 문학의 열병에 땅속보다 깊이 빠진 문학도들이 깡 소주를 마시며 줄담배를 피워 물다가 원고지 위에 진홍색 선혈을 토한 채 요절했던 낭만 어린 병이다.

 나 역시 젊은 시절에는 선혈을 토하면서까지 예술을 사랑했던 문학도를 선망했었다. 하지만 객혈의 현장을 C씨를 통해 몸소 체험한 후로는 끔찍한 악몽을 뇌리에서 지을 수가 없었다.

 C씨에게는 대학에 다니는 훤칠한 미모의 딸이 있었다. 그녀의 고질병이었던 여드름을 피부약이 아닌 위장약 처방으로 완치시켜 주었고, 그녀가 미술 학도로 예술적인 면에서 일맥상통 점이 있어 격의 없이 지내 온 터였다.

 어느 날 저녁, 부친이 위독하다며 그녀가 나를 찾았다. 평소처럼 코피를 흘리거나 급체이려니 가볍게 생각하고 따라갔다. C씨는 입가에 피를 묻힌 채 동공이 풀린 눈망울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 바닥은 이미 선혈이 낭자했고 부인은 안절부절못하며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C씨는 숨을 내쉴 때마다 코와 입으로 시뻘건 핏덩어리를 꾸역꾸역 쏟아 내고 있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나는 부인에게 119 구급 대에 연락을 취하도록 했다. 그녀는 신부님께 종부성사를 부탁한다고 뛰어 나갔다. 목울대에 고인 핏덩이를 더 이상 뱉어 내지 못한 탓인지 안색이 백짓장처럼 창백해지며 식은땀을 흘리던 C씨는 옆으로 쓸어졌다. 그를 부축하던 나 역시 덩달아 넘어졌다.

 호흡이 가능하도록 그의 고개를 앞으로 숙이게 했을 때 기도에 고였던 마지막 핏덩이가 용암처럼 쏟아져 나왔다.

 오분이 채 안되는 짧은 순간의 일이었다. 상체를 버티던 양어깨에 힘이 빠지며 벌목을 당한 원시림처럼 쓰러지던 순간에 C씨는 이미 운명을 한 듯싶었다. 상주도 아니고 종부성사를 집전할 신부도 아닌 나는 홀로 그의 운명을 지킨 셈이었다.

 119구급대에 C씨를 실려 보낸 후, 나는 양미간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땀방울을 닦을 기력조차 잊은 채 망연자실 피비린내 나는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저것이 바로 죽음보다 깊은 잠속에서 내가 꿈꾸고 선망했던 문학 열병의 종말이었던가?

 솜사탕 같은 낭만으로만 채워진 꿈과 차가운 현실의 괴리감을 피부로 절감하며 나는 영안실을 찾아가 그의 영전에 만수향을 지폈다.

 한참의 공백이 흐른 후, C씨 부인은 헝클어진 마음의 이랑을 가다듬고 소복 차림으로 나의 약국을 찾아왔다.

 “사람이 죽을 운이면 어쩔 수 없나 봐요. 결핵도 아닌 병에 엉뚱한 결핵약만 먹었으니---, 그 동안 약을 쓴 노력에 비해 뜻밖의 결과가 나온 것이 미심쩍어 사망 원인을 확인해 보니까 글세, 내 기가 막혀서---, 폐결핵이 아니라 폐디스토마라지 뭐예요?”

 만일이라는 단어는 萬에 하나, 즉 0.01%에 해당하는 희박한 확률을 의미한다. 뽕잎을 갉아먹듯 C씨의 폐를 잠식한 균이 폐결핵이 아닌 폐디스토마 인줄 꿈엔들 상상조차 하였으랴.

 사람의 운명이란 인위적으로 어쩔 수 없나 보다. 흉부 X-Ray 단 한 장의 오판이 저지른 끔찍한 결과였다.

 그러나 인간 지사 새옹지마라고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는 법인 가보다. C씨와 정반대의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L씨는 평소 과로할 때마다 담이 결리신다며 약을 조제해 간 환자였다. 오랜만에 그의 부인이 항생제를 구하러 나의 약국을 찾았다. 늑막염 수술을 한지 오래 되었는데 상처가 악화되고 지금은 혼수상태라는 것이다.

 결국 중환자실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다가 가망도 없고 산사람만이라도 살아야겠기에 퇴원을 시켰다고 한다. 그가 가문의 장손인 관계로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을 때는 숨 쉬는 모습이라도 한 번 보겠다고 친척들이 매일 문병을 왔다.

 퇴원 후 장례식 준비를 하고 마음까지 단단히 다졌는데도 거미줄 같은 목숨은 꺼질 줄을 몰라 혹시나 상처나 아물릴까 해서 항생제를 사러 온 것이다.

 L씨의 부인을 따라가 환자를 보았을 때, 욕창이 짓무른 상처는 피고름이 낭자했고 정육점에 걸린 고기를 연상시키는 검붉은 살점은 악취를 풍기며 너덜너덜 매달려 있었다.

 순간, 한약을 처방하면 완치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예감과 자신감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처방이라도 환자 측에서 약사를 불신하고 거부한다면 기적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다행히도 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소생의 운명을 타고난 덕인지 몰라도 L씨는 내 한약 처방으로 병고를 훌훌 털고 일어나 예전처럼 통장 직을 수행하고 있다.

 정녕, 병고(病苦)를 모른 채 삶의 여정을 누리다가 무아(無我)의 중생(衆生)을 매듭짓는 사람보다 더 행복한 이는 없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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