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사물을 관찰하기도 하지만 상대방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권투 경기 도중 다운 당한 선수의 눈동자가 풀어졌다고 판단되면 주심은 경기를 중단시킨다. 사경을 헤매는 환자의 눈까풀을 열고 불빛을 비췄을 때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의사는 가망이 없음을 단정한다.
거슴츠레한 사람을 가리켜 병든 닭 같다고 함도 눈이 마음의 창뿐 아니라 건강의 창이기 때문이다.
7년 동안 중풍을 앓던 할아버지가 화장실에 가다가 쓰러졌을 때의 일이다. 왕진을 온 의사는 성냥불을 할아버지의 눈동자 위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어린 나는 의사가 불장난을 하는 줄만 알았다.
할아버지의 눈동자는 불빛을 따라 좌우로 움직이지 않았다. 불빛에 눈이 부셔 찡그리지도 않았다. 의사가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순간 기대감에 가득했던 집안은 온통 통곡 소리로 바뀌었다.
‘눈에 칼을 세운다, 눈에 불을 켠다, 눈에는 눈으로’라는 말이 있다. 눈은 억울하거나 화가 났을 때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옷이 날개’라는 말처럼 인간의 외양을 의상이 저울질하듯 눈은 마음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나는 상대방을 처음 만나면 눈동자를 주시하는 버릇이 있다. 간혹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주눅이 들어 눈치를 살핀다거나 바람둥이로 오해를 받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상대방의 눈동자를 바라보노라면 각양각색의 바다를 바라보는 듯하다. 가슴에 와 닿는 그들의 눈빛은 산호초가 물위에 떠 있는 듯 한 명경창파가 있는가 하면 흑심으로 검게 오염된 바다가 있다.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한 수면이 있는가 하면 노도(怒濤)가 이는 듯 한 폭풍의 바다도 있다.
토끼처럼 눈이 큰 사람은 유달리 겁이 많다고 한다. 나는 눈이 작아 와이셔츠 단추 구멍 같다는 놀림을 받지만 구태여 쌍꺼풀 수술까지 할 생각은 없다. 사물을 보는데 불편한 점도 없거니와 눈이 작으면 인정이 많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서다.
쌍꺼풀 수술을 한 여인들을 보면 복제 인간을 보는 듯 한 느낌이 든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신분의 노출을 감추려면 눈을 가릴 정도로 눈은 개성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현상 수배된 살인범들의 공통된 인상은 눈매가 매서운 것이 특징이다. 월남전에서 상이용사가 되어 돌아온 이웃집 아저씨의 충혈된 눈동자가 떠오른다. 그분은 평소 개미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던 성격이었다. 단지 돈이 아쉬워 전쟁이 무엇인 줄도 모르고 월남 파병을 자원했다.
그러나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전쟁의 철학은 그를 합법적인 살인자로 만들었다. 그가 귀국했을 때 피의 맛에 길들여진 그의 눈동자는 살기 띤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그의 눈과 마주칠 때면, 깊은 밤 담장 위에서 나를 노려보던 도둑고양이의 번득이는 눈동자를 보는 것 같아 소름이 곤두섰다.
상대방을 자석처럼 끌어들이는 눈동자도 있다.
얼마 전, 한 여인의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 그녀는 같은 공장에서 근무하며 스스럼없이 지내던 다섯 명의 외국인 취업자들에게 능욕을 당했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벅찬 충격을 당한 듯 그녀의 눈빛은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사고의 순간을 털어놓는 여인의 눈동자는 갑자기 충혈 되기 시작했다. 책에서나 읽었던 ‘정염(情炎)에 불탄다’는 바로 그 눈빛이었다.
나는 맥이 풀어지며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나의 몸과 혼(魂)을 빨아들일 듯 한 그런 눈길을 받아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여인의 눈빛이 이런 초능력을 발휘할 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며칠 전, ‘보디가드’라는 영화를 관람했다. 뒤늦게 재상영관까지 찾아간 이유는 여주인공 ‘휘트니 휴스턴’의 눈동자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눈빛이 매력적이라는 말을 문우인 L선생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애수(哀愁)에 젖어 드는 듯 한 그녀의 눈빛을 보는 순간 ‘애잔한 눈동자의 여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력적인 그녀의 눈빛이 나의 심장을 잠식하는 동안, 평소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애절한 주제곡도 쉽게 가슴에 와 닿는 듯 했다. 눈빛 하나만으로도 나의 기억에서 그녀의 피부 빛이 검다는 사실조차 지워 버릴 수 있었다.
목석에 가깝다는 말을 자주 들어온 나로서는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눈동자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 지능과 함께 천부적인 자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실한 눈빛을 대할 때면 구차한 설명이 없어도 상대방의 진솔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거울 앞에 설 때마다 ‘휘트니 휴스턴’의 눈동자를 가질 수 있다면 하는 욕심을 품어 본다. 외양을 꾸미듯 마음을 가꾼다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닐 것 같다.
눈은 마음의 창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