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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 드 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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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 드 폰
  • 의약뉴스
  • 승인 2006.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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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엔 여러 대의 전화기가 있다. 얼마 전에 구입한 휴대폰까지 합하면 모두 열 대가 된다.

 가정과 직장이 한 건물 안에 있는 나로서는 모두 필요한 존재들이다. 그 중에서도 무선 전화기는 약국 업무에 더없이 필요한 존재다.

 전화 통화가 잦은 나로서는 책상 앞에 앉아 통화를 하다가 환자를 맞아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때마다 판매대로, 조제실로 전화선을 끌고 아닐 수는 없는 노릇. 잠시 기다리라고 양해를 구하고 환자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미 통화가 끊겨 있다. 아니면 내 쪽에서 통화 대기 사실을 까맣게 망각하고 다른 일을 하는 수도 있다.

 해서, 생각다 못해 책상, 조제실, 거실, 주방 등 내 몸이 잠시라도 머무르는 장소마다 전화기를 설치하기로 작정을 했다.

 하지만 장마철이 되면 여기저기 늘어뜨린 전화선에 습기가 차서 불통되기 일쑤였다. 여러 대의 전화기 중 하나라도 고장이 나면 그 선에 연결된 전체가 먹통이 되기도 했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결국 탁상용 무선 전화기를 구입했다.

 탁상용은 수신처가 실내에 한정되어 불편하지만 핸드폰은 차 안이든 거리에서든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이번에 구입한 것이 바로 그 휴대용 무선 전화기, 즉 핸드폰이다. 이렇게 해서 내가 소유한 전화기 수는 꼭 열 대가 됐다.

 나는 약사회 회무와 문학 강의 수강 관계로 약국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 아내 역시 두 녀석들의 꼬마 감투 뒷바라지를 하느라 자주 학교를 쫓아다녀야 한다. 그때마다 급한 연락 상황이 발생하면 지금까지는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하지만 핸드폰을 소지하고 외출하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 떨어져 있어도 늘 같이 있는 기분이다.

 또한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서서 마냥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불편도 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편리한 만큼 엉뚱한 오해도 받게 되는 것이 핸드폰이다.

 큰 녀석의 학교를 처음 방문하던 날이다. 그날도 예외 없이 나는 안테나를 삐죽 내민 덩치 큰 구식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나의 모습을 발견한 교장 선생님은 나를 정보계 형사쯤으로 오인한 듯 했다. 난감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그분은 ‘사고 학생들 문제로 오셨냐’고 정중하게 물어 왔다. 이런 오해를 받을 땐 그지없이 민망스럽다. 하지만 뜻밖의 덕을 볼 때도 없지 않다.

 어제는 서울의 외곽 산장에서 문우들과 술잔을 나누느라 자정을 훨씬 넘기고 말았다. 이제 귀가할 방법은 영등포역에서 인천행 총알택시를 타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게 됐다. 헌데, 문우의 도움으로 영등포까지는 왔으나 총알택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시집가는 날 등창 난다더니, 때마침 인천 택시 조합이 파업 중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울 택시조차 요금의 고하를 막론하고 인천행을 거부했다. 파업 운전기사들의 돌팔매질을 우려해서 였다.

 드문드문 지나는 택시를 세우는 동안 뒤편에선 홍등가의 요화들이 취객의 소매를 잡아끌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핑계 김에 외도라도 하고픈 흑심이 발동한다. 아리따운 여인의 손길이 나의 소맷자락을 잡아 당겨 주었으면 하고 은근히 바랬다.

 하지만 여인들은 나의 휴대폰을 힐끗힐끗 훔쳐보며 영 접근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한때 그들을 매음 혐의로 입건했던 형사쯤으로 알고 경계하는 눈치였다.

 한참 만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부평행 택시에 겨우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이것이라도 타지 않으면 낯선 거리에서 밤새도록 헤맬 수밖에 없었으니까.

 나도 얼큰했지만 총알택시의 합승객들은 모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취해 있었다.

 “어디 나가슈?”

 나보다 연상인 한 승객이 나의 핸드폰을 곁눈질하며 묻는다. 취중임에도 기관원의 까만 무전기만은 알아볼 수 있다는 아부의 음성이다.

 “예, 어디 좀 나갑니다.”

 얼떨결에 대답한 나의 ‘어디’와 그가 묻는 ‘어디’란 단어에는 묵인 이상의 묘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잠시 후, 합승객들과 운전기사간의 요금 시비가 붙었다. 평소 요금의 곱절을 받겠다 거니, 아무리 인천 택시 조합이 파업을 한다 해도 너무 한다는 볼멘 소리였다.

 “여보 기사 양반! 조금 양보해서 적당히 받으시오!”

 나의 이 한마디에 차내는 쥐죽은 듯 잠잠해 졌다. 합승객들은 평소의 요금을 내고 내리며 고마움의 눈짓을 나에게 보낸다.

 새삼, 휴대용 무선 전화기를 바라보며 내 자신을 조명해 본다. 내 가슴 한구석에도 그런 만용이 자리 잡고 있었던가. 나는 외양이 곱상하고 목소리마저 가냘 퍼서 형사는커녕 계집애 같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식당에 가서 엽차를 주문해도 제 때에 대접을 받은 적이 없었다. 왜소한 체구와 나지막한 음성이 식당 종업원에게 조차 하찮게 보인 까닭이다.

 그런 수모가 몸에 배어선 지 내 자신이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싫은 소리 한 번 못하고 지내 온 처지다. 도대체 무얼 믿고 운전기사에게 명령 투를 서슴없이 내뱉을 수 있었을까. 취중 탓이었을까?

 또한 운전기사는 왜 말 한마디 못한 채 내 눈치만 살폈을까. 식당 종업원에게 조차 무안만 당하던 왜소한 내 체구가 한잔 술에 부풀어 거한이 되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다. 휴대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일 휴대폰이 아니었다면 요금의 시비는커녕 주정꾼으로 몰려 차 밖으로 쫓겨났을 것이다.

 정승집 강아지가 죽으면 문상객이 줄을 잇지만, 정승이 죽었을 땐 아무도 찾는 이가 없다고 한다. 권세에 아부하는 인간사를 꼬집는 말이다. 죽은 정승이 그의 강아지만도 못하듯 나 역시 핸드폰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자괴지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총알택시 운전기사가 바가지요금을 씌우지 못한 것은 내 인격을 존중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밤의 여인들이 나의 소맷자락에 매달리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눈에 기관원의 무전기로 보였던 까만 색 핸드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고 보니 핸드폰 덕분에 분수 넘친 대접을 받은 나 역시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한 것만 같다. 아니 핸드폰의 시녀로 전락된 기분이다. 하찮은 핸드폰이라도 들고 다녀야 대우받는 세상인심. 휴대폰보다 사람이 대우받는 사회 풍토가 아쉽다.

 큰 아이의 학교 일로 외출하는 아내에게 무선 전화기를 건네준다. 아내만은 여형사로 오인되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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