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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학생들은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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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학생들은 돌아갔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6.11.0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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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십육.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멍한 상태가 된다. 승길이 그랬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자기 소대 학생이 죽었다는 것. 책임 여부를 떠나 비극이었다.

교육대 역사상 학생 자살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승길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혼미한 정신.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우발적 사고사와는 또다른 차원이다. 학생들이 돌아가면 바로 외부로 알려질 것이다.

사회문제가 된다. 군인이 아닌 학생의 신분이기에. 왜? 라는 질문이 먼저 들었다. 박봉길 학생과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 승길은 생각했다. 하지만 곧 모든 생각은 중단됐다.

중대 행정반 침상 위에 흰 천을 덮어 놓은 임시 시체 안치실. 죽음은 곧 냉동창고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 할 것이다.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실내 온도가 걱정이었다. 누군가 알아서 빨리 명령 했으면 싶었다.

이 자리에 저렇게 방치되고 있는 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승길은 그걸 떠올렸다, 어처구니 없게도. 조금 전까지 살아 있던 사람의 죽음. 긴 머리 휘날이며 꿈과 이상을 말했을 젊은 청춘의 죽음. 기간병 1명과 학생 1명 1:1 근무 중에 학생은 근무지를 이탈해 자살했다. 

기간병에 따르면 근무중 학생이 사라졌다. 급한 용변이나 아니면 담배 한 대 피우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10분이 지나도 인기척이 없자 기간병은 주변을 돌면서 학생을 나직이 불렀다.

큰 소리로 부르면 소리에 반응해 비상이 걸릴지 몰랐다. 그러면 그 책임은 온전히 자신이 뒤집어 써야 한다. 근무 중 학생의 행방불명이라니. 상병 말호봉으로 어지간히 군생활에 이력이 났지만 이런 경우는 허둥댈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수색로 주변을 돌다 마침내 철책 기둥에 목을 매고 늘어진 시체를 발견했다. 기절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정신을 차리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둘러댈 거리를 찾는 것.

시간대 별로 알리바이도 정리했다. 소변 보러 간다길대 그러마, 하고 허락했다는 것. 돌아오지 않아 찾으러 가보니 이런 상태였다는 것. 당연히 자신이 철모를 깔고 앉아 졸고 있다는 사실은 숨기려고 했다.

하지만 조인트 한방에 실토하고 말았다. 그만큼 순진한 기간병은 곧 식당으로 쓰는 막사에서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우선 시신을 옮기기 전에 보안대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승길도 그들이 천을 열고 시신을 확인할 때 얼핏 박봉길 학생의 친구 얼굴을 봤다. 긴 머리지만 파마한 탓인지 귀가 드러나 있었다. 쪽박귀 형태였다. 크게 특색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미리 데모꾼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살펴보고 주의를 기울였을 텐데 마지막 날 저녁에 그것도 침상에서 잠든 얼굴을 본 기억만이 남아 있었다. 저런 얼굴이었나 싶었다. 그 순간 누군가 옆구리를 쳤다. 구대장이었다. 그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자기 관할 소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야, 뭐가 짚이는데가 있어?"

보안대 조사원을 의식한 듯 나직이 한 질문이었다.

“전혀, 전혀 모릅니다.”

“정말 모르지? 아는 것 있으면 지금 다 말해? 나중에 밝혀지면 큰 코 다친다.”

평소와 다르게 구대장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잠시 후 승길과 구대장은 사령관이 부른다는 말에 임시 조사실 역할을 하는 식당으로 향했다. 멀지 않은 길을 가면서도 구대장은 여러 차례나 아는 것이 있으면 말하하고 다그쳤다.

“없습니다. 박봉길 학생이 그를 가리키면서 데모꾼이라고 했던 말은 기억납니다. 어제 저녁이었습니다.”

“왜 보고 안 했어?”

“그럴 시간이, 낮에 지피 갔다고 오고 바로 지오피 근무 들어갔고.”

“됐다. 그대로 말해. 데모꾼인 것은 본부도 다 아는 사실이고.”

식당에 도착하자 학생과 근무를 섰던 기간병은 포승줄에 묶여서 보안대 요원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얼추 조사가 끝난 모양인지 승길과 구대장이 도착하자 이리로 앉으라고 손짓했다.

옆에서 사령관이 담배를 피면서 조사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승길은 사실대로 말했다. 뭐 숨길게 없었다. 처음에 요원들은 거칠게 나왔다. 반말은 기본이고 숨기다 걸리면 영창이라고 떠들었다.

그들과 함께 온 다른 요원은 어디서 구했는지 포승줄을 매만지고 있었다. 계급이 깡패라고는 하지만 무례함이 도가 지나쳤다. 군복에 계급장이 없어 도무지 어느 정도 위치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답답했다.

그들은 승길은 물론 구대장까지 자기 부하처럼 닦달했다. 그러다 요원 중 한 명이 승길을 유심히 쳐다봤다. 그리고는 “어라, 너 승길이지?” 하고 물었다.

“이게 누구야?”

밤색 잠바에 검은 바지 차림의 그가 아는 체를 했다. 그는 사단 동기였다. 정명구 이병. 정상적이라면 일병을 달고 3개월쯤 지났을까. 그는 승길의 병장 계급장을 보고 구대장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동료에게 일차 보고서는 이것으로 마무리 짓자고 말했다. 자기들끼리 무언가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구대장을 향해서는 존댓말을 쓰고 승길에게는 목소리를 낮췄다.

이후 질문은 추궁하는 태도가 아니라 형식적으로 물어본다는 듯한 자세였다. 그 시간에 어디 있었고 무엇을 했는지 시간대별로 물어봤는데 이런 정도의 알리바이는 승길에게 확실한 것이었다.

대답에 토를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믿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는 안심 시키려는 듯이 결론을 내렸다. 특별이 자신들에게도 귀찮은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듯 싶었다.

“월북 시도도 아니고, 총기 사고도 아니고. 그럼 간단하네.”

요원 하나가 문제가 해결됐을 때 보이는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

“양키용병교육 반대도 아니고요.”

옆에 서 있던 중대장이 직속 상관 대하듯이 깍듯하게 대답했다.

"신병 비관이라. 별일 없을 겁니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일어서던 감색잠바 차림의 요원이 조교를 향해 다가왔다. 그가 박봉길 학생이 근무 중인지 물었다.

“조교라고 그 많은 학생들 일과를 다 알겠어. 근무 중 아니면 취침 중이겠지. 일단 내무반으로 갑시다.”

승길이 머뭇거리자 보안대 정명구 요원이 앞장섰다. 승길은 봉길이 받을 충격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취침 중이었다. 4시부터 5섯시 사이 근무가 예정돼 있었다. 정명구 요원은 망설임 없이 승길이 지목한 침상으로 다가갔다.

“일어나, 박봉길 학생. 근무야 근무.”

졸린 눈으로 봉길이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을 깨운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조교 옆에 또 한 사람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퇴소하는 말년답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뭐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중대 행정반에 가서 잠깐 얘기 좀 하자.”

조교가 말했다. 봉길이 순순히 따라왔다. 무언가 일이 벌어졌고 자신이 연관돼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몇 걸음 안 떨어진 중대 행정반에 들어섰을 때 중대장과 구대장은 자리에 없고 처음 보는 보안대 요원이 담배를 피고 있었다.

헌병도 보이지 않았다. 정명구 요원은 승길에게 조교는 나가 있어, 라고 했다.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낀 그는 일어서는 승길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학생만 남기고 떠나는 것이 승길은 찜찜했다. 보호자로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나가려고 승길이 출입문을 잡았을 때 “조교 너도 여기 있어”, 하는 날카로운 명령이 떨어졌다. 명령권자가 정명구 요원인지 아닌지 승길은 그때나 지금이나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지 못한다. 중대장이 앉았던 곳에 조교와 학생이 나란히 앉았다.

요원은 학생에게 승길이 했던 말이 사실인지 확인했다. 넘겨짚기도 하고 유도 심문도 했다. 삼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승길은 학생과 함께 내무반으로 돌아왔다.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으나 어떻게 갔는지 모를 만큼 빨리 지나갔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소문은 소대 전체로 퍼졌다. 하지만 일정은 일정대로 소화했다. 토요일 아침 페바로 이동한 학생들은 처음 도착했을 때 숙소였던 막사로 돌아와 다른 기수 학생들과 다름없이 해산 명령을 받고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 당시 학생들은 모두 머리카락이 귀를 덮을 만큼 장발이었다. 80년대 유행은 그랬다.
▲ 당시 학생들은 모두 머리카락이 귀를 덮을 만큼 장발이었다. 80년대 유행은 그랬다.

멀리서 학생들을 태우기 위해 3번 도로를 통해 여러 대의 버스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연병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막사 천막 사이로 승길은 그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과 짧은 작별 인사를 했다.

"일주일간 수고 많았다. 좋은 것만 가지고 가고 나쁜 것은 모두 남겨 놓고 가라. 남은 것은 조교가 치우겠습니다. 교육 도중에 돌아간 학생이 하나도 없어 다행입니다. 다 같이 고생한 모두를 위해 서로 마음속으로만 박수를 쳐 줍시다. 그리고 알다시피 여러분 동료 중 한 명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습니다. 같이 왔다가 같이 떠나지 못한 것이 조교의 책임인 것처럼 무겁습니다. 그 학생을 위해 잠시 묵념을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승길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묵념이 끝나고 밖으로 집합해 인원 점검을 마치자 기다리고 있던 버스들이 정문을 통과해 연병장에 순서대로 멈춰섰다. 오와 열이 딱딱 맞았다.

“잘 가세요. 나중에 우연히 길에서 만나면 아는 체 하기 없어요.”

“아는체 할 거에요.”

슬픔 속에서도 학생들은 이렇게 응수했다. 학생들은 버스에 올라타기 전 한 명씩 손을 내밀어 승길과 악수했다. 그 전의 종별식과 비슷하기도 했고 사뭇 다른 분위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학우를 잃은 아이들은 시끌벅적하지 않았다. 웃거나 떠들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침울하지도 않았다. 학생들이 떠나고 승길은 막사로 돌아왔다. 텅 빈 막사 안에서 승길은 잠시 죽은 학생의 이름이 기억하려고 했으나 박봉길만 생각났다.

관물대도 정리하고 보급품도 확인해야 하고 정리 정돈 할 것이 제법 있었으나 승길은 잠시 여유를 부렸다. 침상 옆에 분대장 역할을 했던 박봉길 학생이 수고했다며 피엑스에서 산 선물로 주고간 앨범을 펼쳤다.

텅빈 앨범 속에 어떤 사진들이 채워질까. 승길은 곧 조교들의 집합이 있을 것을 알았다. 예상은 맞아 떨어졌고 ‘조교 집합’ 하는 소리가 막사와 막사 사이에서 울렸다.

‘비밀로 해라’, 어디서건 입도 뻥긋하지 마라. 이 한마디 하고 사령관은 대기하고 있던 짚차를 타고 떠났다. 중대장은 비슷한 말을 따라 하고 그도 곧 주말 외출을 위해 막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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