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김수영은 시로 잘 알려져 있다. 산문도 그에 못지않다는 건 많이 모른다. 하지만 김수영의 산문은 시에 버금갈 만큼 사랑을 받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김수영의 산문이 없었다면 김수영의 시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산문은 그만큼 김수영 자신의 내밀한 곳까지 솔직히 드러내 주는 시의 원천이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산문은 ‘시여, 침을 뱉어라’ 가 분명하다. 제목에서부터 도발적인 냄새가 풍겨 과연 김수영답다, 라고 찬탄하게 된다.
산문의 첫 문장은 “나의 시에 대한 사유는 아직도 그것을 공개할 만한 명확한 것이 못된다”고 겸손하게 시작한다. 하지만 시인은 곧 그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반격을 가한다.
그러면서 20년 년 시작(詩作) 생활을 해 왔지만 아직도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다음 시를 쓸 수 없다는 것. 김수영은 다음 시를 쓰기 위해서는 여태까지의 시에 대한 사변을 모조리 파산시켜야 하고 그렇게 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못을 박는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구절,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문장으로 시에 침을 뱉는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도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간다는 말에 전율이 인다. 시를 쓰는 것이 머리나 발이나 손이나 심장이 아니고 온 몸이라니. 그것도 온몸으로 동시에. 마치 마라토너가 결승선을 향해 온몸을 들이밀며 마지막 질주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함부로 시를 쓰고 누구나 시인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경고일까. 그러면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며 이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고 단언한다.
사랑을 말하는 시인의 가슴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순간이다. 형식이 나왔으니 내용도 나와야 한다. 그는 모험을 꺼내 든다. 시론이나 시평을 통해 모험의 의미를 연습했고 이러한 탐구의 결과로 참여시의 옹호자라는 달갑지 않은, 분에 넘치는 호칭을 받고 있다고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시를 논할 때 내용이 반 형식이 반이라는 도식적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하나의 시 작품은 자기의 전부이고 산문의 편 즉 현실성의 편에서도 하나의 작품은 자기의 전부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시의 본질은 이러한 개진과 은폐의 세계와 대지의 양극의 긴장 위에 서 있다는 것. 소설을 쓰는 마음으로 시를 쓰는 김수영의 태도를 알 것만 같다. 그만큼 (산문을) 시에 많이 도입하고 있다.
그러면서 내용의 면에서는 완전한 자유를 느끼고 있고 너무 많은 자유가 없다는 것. 내용은 언제나 밖에다 대고 너무나 많은 자유가 없다는 말을 계속해서 지껄여야 한다는 것이 김수영의 생각이다.
그는 이렇게 지껄이는 것이 낙숫물로 바위를 뚫듯이 38선을 뚫는 길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면 시인의 헛소리가 헛소리가 아닐 때가 온다는 것. 헛소리를 자꾸 외우다 보면 헛소리가 참말이 될 때의 경이, 그것이 시의 기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수영은 자신이 참여시의 효용성을 신용하는 한 사람이라고 자평한다. 시가 고독하고 장엄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자유의 서술에 그치지 말고 자유의 이행이 있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시인은 이런 횡설수설보다는 지금 당장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라고 일갈한다. 그러면서 당신도 나도 새로운 문학에의 용기가 없는데 이러고서도 정치적 금기에만 다치지 않는 한 얼마든지 새로운 문화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는가 하고 개탄하고 있다.
꾸짖는 목소리가 지금 들어도 가슴이 울렁인다. 정치적 자유가 없는데 개인의 자유가 어디 있으며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개인의 자유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자유당 때 하고 비교해 보더라도 기인이나 바보, 얼간이들이 (지금은) 완전히 소탕되어 있다고, 주정꾼다운 주정꾼이 사라진 지금( 부산은 어떤지 몰라도 서울의 경우 문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술집에도.)이라고 김수영은 주장한다.
짧은 산문의 마무리는 이렇게 끝난다.
“자유의 과잉을, 혼돈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깃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시작하는 것이다. 모깃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이 누룩의 역할을 하는 시의 임무라는 것이 김수영의 판단이다.
팁: 김수영은 이 산문을 1968년 4월 부산의 한 문학 세미나에서 발표했다. 청중들은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어라, 같은 과격한 언어에 크게 당혹했다. 보통 문학 세미나와는 결이 달랐다.
도발적이고 난해하고 논쟁적인 발표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후 ‘시여, 침을 뱉어라’는 김수영 시의 핵심 사상이 됐고 오늘날에는 현대 시론에서 중요한 글로 평가 받고 있다.
김수영은 이 산문을 발표하고 두 달 후인 1968년 6월 16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마지막 문학 선언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시와 산문을 떼어 놓고 볼 수 없었던 김수영의 산문이 시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산문보다는 시인으로 더 각인된 김수영의 시는 말 그대로 나와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을 정도로 적나라한 현실, 누구도 하지 못했던 용기있는 행동으로 오늘날 숱한 후배 시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잘 알려진 시로는 세상을 떠나기 보름 전에 쓴 ‘풀’ 외에도 ‘폭포’, “왜 나는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로 시작하는 ‘어느 날 고궁을 나서면서’, ‘눈’, “김일성 만세 (金日成 萬歲)” 등이 있다.
4.19 혁명 직후인 1960년 6월에 쓰인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노고지리가 자유로워다고/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시 ‘푸른 하늘을’ 은 시와 산문이 어떻게 밀접하게 연관됐는지 살피는데 도움이 된다.
김수영 탄생 100년 하고도 5년이 지난 지금 김수영의 시와 산문은 고전으로 우뚝 서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