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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세 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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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세 닢
  • 의약뉴스
  • 승인 2006.09.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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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많은 분들이 내 곁을 떠났다.

 추석날부터 죽마고우의 부친상 소식이 오더니, 여기저기서 부음이 날아들었다. 줄잡아 한 주일에 한 분 꼴이다.

 그 중엔 천수를 다 누린 이별이 있는가 하면, 예기치 않게 꺾여 버린 요절도 있다.

 어쨌거나, 초상집을 다녀올 때마다 느끼는 것은, 제 명껏 살았거나 못 살았거나 간에 그들이 남기고 간 빈자리다. 텅 빈 그 뒷자리다.

 그렇게들 빈손으로 떠나갈 인생을, 왜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아귀다툼을 했나 싶어 허망하기만 했다.

 지난 반 년 동안, 내가 겪었던 이별 중엔 천수를 다 누린 외할머님이 있고 이웃에 살던 선배 약사의 요절이 있다.

 한편 ‘그리움’으로, 또 한편 ‘아쉬움’으로 내 삶 깊숙이 죽음에 대한 외경심을 불러일으킨 분들이다.

 외할머님은 유난히도 나를 아껴 주셨다. 당신의 큰따님인 내 어머님이 스물 다섯 청춘에 유복자로 낳아 키운 외손자라 그랬을까?

 어머니가 청상의 몸으로 한 맺힌 세월을 나에게서 위로 받아 왔듯이 외할머님도 그랬다. 가고 없는 당신의 큰사위 분신 이상으로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셨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의 눈금 앞에서 인간은 턱없이 무력했다. 결국 외할머님은 노환으로 누워 계시다가 잠들 듯 숨을 거두셨다.

 외할머님의 장삿날, 산역을 하는 선산 기슭에서 퇴색한 외갓집을 내려다보았다. 30여 년 전, 방학 때면 으레 찾곤 했던, 가난하지만 아직은 포근하게 느껴지는 내 어머님의 탯자리다.

 외손자의 여비를 마련하느라 이웃집을 들락거리시던 허리 굽은 외할머님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눈시울이 뜨거웠다.

 하지만 그 외할머님은 지금 꽁꽁 묶인 채로 얼어붙은 한 평 땅속에 묻히고 있질 않은가.

 외할머님의 산소 주변, 키작은 떡갈나무엔 빛바랜 가을 잎들이 매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미 땅에 떨어져 흙에 묻힌 낙엽들을 뒤따르지 않겠다는 듯,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애처로웠다. 살만큼 살았음에도 이승에 남기를 연연하는 사람들의 몸짓인 듯 싶어 서글퍼만 보였다.

 며칠 전, 이웃 약국의 선배 약사 한 분이 갑자기 불귀의 객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도 평소와 다름없이 대화를 나눴던 분이다. ‘밤새 안녕’이라 더니 어이없었다. 너무나 허망하여 곧이 들리질 않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선배 약사는 약국 외에도 다른 사업에 손을 대, 받을 돈, 줄 돈으로 신경을 쓰다가 혈압으로 쓰러졌다는 것이다.

 돈이나 명예를 잃으면 인생의 반을 잃고, 건강을 잃으면 그 인생의 전부를 잃는다더니, 가질 만큼 가진 선배는 더 많은 재산을 거머쥐려다가 그만 생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고 말았다.

 약국이 들어선 빌딩만으로도 그는 살기에 풍족했다. 상가다, 아파트다, 주식이다 영원토록 움켜잡을 줄만 알았던 그 재물들이 지금에 와서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한 벌의 가벼운 수의와 동전 세 닢, 널빤지로 짠 관이 들어갈 한 평의 땅이 고작인 것을---.

 선배 약사가 중환자실에 실려 간 후부터 그분의 약국엔 계속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다른 업종이라면 가족 중 누구라도 계승할 수 있겠지만, 약국은 약사가 세상을 뜨면 면허증이 폐기되기 때문에 그럴 순 없다.

 병원으로 실려 간 선배의 약국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짐짓 고개를 돌린다. 을씨년스럽게 내려진 셔터가 마치 내 약국의 일처럼 자꾸만 미루어 생각되기 때문이다.

 선배 약사가 회복되어 빨리 약국 셔터가 올려졌으면 했던 나의 바램도 허사, 결국 셔터를 내린 지 열흘만에 그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

 선배의 영정 앞에 머리를 떨구며, 어느날엔가 셔터가 내려질 내 약국을 또 한 번 상상해 보았다. 그 안에서 오열하고 있을 아이들과 아내의 가련한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앞이 캄캄하여 눈을 비비며 간신히 선배의 영전에 향불을 얹었다.

 그날 밤 상가에서, 나는 마실 줄도 모르는 술을 정신없이 들이켰다. 하지만, ‘이제 그만!’이라는 절대자의 느닷없는 선고를 어찌 무력한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가 있겠는가?

 산다는 게 도시 덧없고 허무하기만 했다. 갑자기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어졌다. 살아 있는 고마움을 가족들과 함께 잠시라도 더 나누고 싶어 나는 약국이 딸린 집을 향해 달렸다. 깊은 밤, 추위도 잊은 채 꽁꽁 언 약국의 셔터를 안아 보고 어루만져 보았다. 눈물에 젖은 두 볼을 비벼도 보았다. 언제까지나 고락을 함께 나누어주기를 마음속으로 빌며, 빌며---.

 동이 트면 힘차게 들어 올려 줄 제 주인이 있어 고맙다는 듯 ‘덩그렁’ 마주 볼을 비벼 주는 셔터가 따스하게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깨질 듯한 두통을 느끼면서 약국 문을 여는 나에게, 아내는 무엇이 그렇게 서러워서 셔터를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하였느냐고 놀려댄다. 내 어린 시절의 전부였던 외할머님의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내가 어젯밤엔 셔터를 붙들고 소릴 내어 엉엉 울더란다.

 그렇다. 지금까지의 인척이나 이웃의 죽음은 아쉽거나 아픈 작별 이상의 그 어떤 절망이나 충격을 나에게 부여하질 못했다.

 하지만, 같은 운명의 배를 탄 선배 약사의 죽음은 남의 슬픔, 남의 운명 같지가 않았다. 예정된 죽음, 예정된 이별을 앞당겨 체험한 현실, 그 현실이 주는 아픔 때문이었으리라.

 원컨대, 욕심 없이 살아가고 싶다. 조금이라도 더 이승에 남아 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퇴색한 떡갈잎이기보다는, 분수껏 주어진 세월에 감사하며 열심히 사는, 그래서 빨갛게 물이 드는 낙엽이고 싶다.

 그러기 위해, 오늘을 사랑하듯 내일을 사랑하고, 내 가족을 아끼듯 이웃을 아껴 가며 욕심 없이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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