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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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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연습
  • 의약뉴스
  • 승인 2006.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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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별’, ‘별리(別離)’, ‘헤어지는 연습’. 많은 선배 문인들이 발표했던 작품의 제목이다.

 딸을 출가해 보낸 후 텅 빈 딸의 방에서 추억을 더듬는 부모, 자식을 이국 타향에 유학 보낸 후 허전함과 염려스러움을 털어놓은 어느 선배, 부모 혹은 자식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후 가슴속에 무덤을 만든 유족의 오열 등 이별의 사연엔 뜨거운 눈물이 배어 있었다.

 1월 말, 큰아들을 육군에 입대시키느라 춘천을 다녀왔다. 대학을 다니다가 휴학을 하고 재수를 한 탓에 첫 입영 통지서는 여름방학 중에 배달되었다. 1학년을 마친 후 입영하겠다며 연기를 한 아들은 군대에 흥미가 없는 듯 ‘라니뇨’ 강추위를 걱정하며 또 연기할 눈치였다.

 그렇지 않아도 온실에서 과잉보호를 해 온 자녀 교육을 후회하던 부모의 심정으로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상상외로 완강한 아비의 기세에 밀린 아들은 자포자기 한 듯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후 친구들과 이별 연습을 하기에 바빴다.

 다른 집 자식들은 부모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후 입영 소집 장소로 친구들과 홀연히 떠나갔다는 데 아들은 배웅 나온 여섯 친구들을 소홀히 대접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꼭 필요하다며 소맷자락을 잡아 당겼다. 못난 아비를 둔 탓에 가정 풍파를 겪으면서도 심성만은 곧게 자라 준 아들이 고맙고 한편으로는 더욱 죄스러울 뿐이다.

 다섯 살 때부터 초등학교 졸업식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게 하고, 유치원 시절부터 승용차로 통학을 시켜주는 대가로 하루 한 권씩 동화책을 읽혔던 스파르타식 교육을 무던히 인내해 왔던 아들이었다.

 약국에서 함께 문제집을 풀고 아들이 학교에 간 사이 손수 채점을 하며 요점 정리를 해주고 시험 땐 문답을 나누며 새벽녘까지 함께 밤을 지새웠었다. 비상한 두뇌로 책 한 권을 글자 한자 틀리지 않고 암기하며 초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아들이었지만 새엄마를 맞이한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듯 사춘기에 들어서며 마음의 중심을 읽기 시작했다.

 방황의 터널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고 최고의 S대학 진학을 기대했던 이웃과 부모의 가슴에 실망과 아쉬움의 한을 깊이 새겨 놓았다. 자신을 원망하는 아비의 눈총과 맞대응하고 싶지 않다는 듯 아들은 가출을 한 후 한동안 친구 집을 전전하기도 했었다.

 뒤늦게 정신을 가다듬은 아들은 다니던 대학에 휴학계를 내던지고 노량진의 고시원에 들어가 재도전의 칼을 갈았다. 고시원에 짐을 실어다 주고 헤어지던 날, 윈도우 부러쉬가 두 손으로 눈물을 훔쳐내는 차창에도 내 가슴에도 장대 같은 빗줄기가 내리 꽂히고 있었다.

 발을 뻗으면 방문을 열어야 하고 가져간 소형 선풍기조차 놓을 자리가 없어 다시 가져와야 했던 고시원 독실은 차라리 독 감방이란 표현이 더 어울렸다. 그때도 한 주일마다 고시원을 찾아가는 것이 이별을 달래는 유일한 길이었다.

 부대 앞 식당에서 허둥지둥 마지막(?) 점심을 먹인 후 겨우 제시간에 맞춰 입영식장에 들어갔다. 유머 스런 사회자의 진행에 장병과 그의 가족 친지들은 헤어지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한 목적도 잊은 듯 폭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안녕히 돌아가시라며 부대 밖으로 등을 밀어내는 순간 여기저기서 두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가녀린 어깨를 들척이는 어머니들의 애틋한 모습이 나의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 운다. 좀 더 강인한 정신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군대에서 고생을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노래해 왔지만 나의 속마음에서 모진 부정을 기대한 것이 잘못이었다.

 아들의 부탁대로 친구들을 저녁 식사까지 대접해 보낸 후 나는 여독의 피로감을 잊은 채 아들의 텅 빈 방에 우뚝 서 있었다. 밤새워 대화를 나누던 주인을 한동안 만나 보지 못할 외로움에 한 풀 기가 꺾인 듯 입 다문 컴퓨터가 책상 한편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들이 떠난 지 벌써 20일, 오늘은 수십 명의 종친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는 구정 설날이다. 조상에 대한 덕담과 웃음소리가 만발한 분위기이건만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끼듯 향불 옆에서 술잔을 따르던 아들의 빈자리가 허허롭게 느껴진다.

 부대에서 소포로 부친 아들의 소지품에서 새엄마가 아닌 ‘어머니’라고 깨알처럼 적은 쪽지를 발견하던 순간 솟구치던 슬픔이 오늘 또 다시 메아리로 돌아와 내 눈시울을 적시며 끝내 서러운 설날을 맞게 한다.

 이 모두 아들의 어린 가슴에 쉽게 지워질 수 없는 멍 자국을 새겨 놓은 못난 아비의 죄책감 때문이리라. 먼 훗날, 아들이 자식을 군에 보내고 홀로 아비의 영전에 술잔을 따르는 시절이 오면 지금의 내 심정을 이해하고 용서해 줄는지---.

 이별은 만남의 전제 조건이라고 한다. 홀로 이승에 정수리를 내민 우리는 언젠가는 혼자가 되어야 한다. 별리(別離)는 사랑을 재확인하는 징검다리이기에 우리는 이별 연습에 익숙해야 하는가 보다. 인연의 고리를 끊고 떠나 버린 연인을 눈물로 사모하는 님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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