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인생은 누구와 사느냐에 달려 있다. 그 사람의 행불행은 함께 하는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면.
백화점 판매원인 테레즈(루니 마라)는 남자 친구가 있다. 성실하고 그녀를 사랑한다. 한데 테레즈는 무언가 공허한 기색이다. 그의 사랑만큼 자신의 사랑이 거기에 가 닿지 못한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충만하지 못할 뿐이다.
영화의 제목이면서 주인공인 캐롤(케이트 블란쳇)은 어린 딸이 있다. 남편과의 사이는 좋지 못하다. 이혼 소송 중에 있다. 여자 친구도 있지만 테레즈처럼 삶의 어느 한구석이 허전하다. 구멍 뚫린 나머지를 채워줄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이 두 사람이 만난다. 손님과 종업원으로. 일부러 장갑을 놓고 온 캐롤. 기꺼이 돌려주는 테레즈. 둘은 그 순간 자신들이 어떤 강한 줄로 연결된 것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 같이 살아갈 동반자로 서로를 눈여겨본다.
마침내 테레즈는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대신 캐롤을 선택했다. 남편과 헤어진 캐롤 역시 테레즈의 사랑에 화답한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이 여정은 조마조마하기보다는 언제 하나로 합쳐질까 하는 타이밍에 집중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그렇게 된다. 남자들 사이로 눈빛이 서로 마주칠 때 둘의 인생은 행복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때 오드리 헵번을 닮은( 닮았다고 생각한다.) 루니 마라는 갓 구운 빵을 가슴에 안고 보석상 주변을 둘러보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다.
손에 담배를 들고 삶의 여유를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됐다는 만족감은 케이트 블란쳇의 볼 주름을 더 넓혀 준다. 이 두 사람에게 무엇이 더 필요한가. 주변의 시선도 다른 사람의 평판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랑을 나눌 때 했던 말들을 녹음하고 그것으로 협박해도 잠시. 그런 것들은 되레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기는커녕 키워줄 뿐이다. 자기 인생을 가는 테레즈와 캐롤에게 축복있으라.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을 터.
두 여자의 사랑은 남녀의 사랑 이상으로 불타오르는데 과정이 섬세하다. 문제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더 큰 사랑으로 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했다.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련되고 부티나는 퀴어의 여정에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기꺼이 동참해야 한다. 거칠면서도 우아하고 수줍으면서도 과감하다. 사랑에 우연이라는 건 없다. 필연을 위한 과정일 뿐.
국가: 영국, 미국
감독: 토드 헤인즈
출연: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평점:
팁: 패션과 화장술이 뛰어난 캐롤. 사진찍기가 취미이며 예술적 감각이 있는 테레즈. 두 사람의 조합이 자연스럽다.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 아니라 함께 하지 않으면 이상해 보일 정도로 궁합이 맞다.
카메라를 선물하고 음반을 건네 주는 손길은 마주 잡지 않아도 이미 열기로 가득찼다. X마스 시즌에 시댁에 가지 않고 미 서부로 여행을 떠나는 캐롤의 옆에는 테레즈가 있다.
같은 공간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애정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잠시 이별이 있었다. 캐롤은 편지로 헤어질 결심을 알리고 테레즈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랑은 여기까지인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 더 크고 영원한 사랑을 향한 작은 생채기일 뿐. 캐롤은 지난 10년간 남편만을 바라보고 산 생을 더 연장하지 않는다. 테레즈 역시 곁에 있어도 허전한 남자 친구에 연연하지 않는다.
맥박이 뛰는 곳에 향수를 발라주고 냄새를 맡을 때 그들은 이미 둘이 아닌 하나였다. 삶은 그렇게 두 사람을 질긴 끈으로 엮어 놓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을 남녀 구분이 없다.
영화가 끝난 후 비지스의 ‘투 러브 섬바디’를 들으면 여운이 길게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