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저에게 당신은 낯선 이름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제가 이승에 정수리를 내민 지 열 이틀 만에, 아버지는 차마 감기지 않는 눈을 감으며 이별을 서둘러야 했으니 말입니다.
세월은 우리의 슬픈 사연을 묻어 버린 채 쉼 없이 흘러 어느덧 저는 아버지의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장한 아버지이며 강한 아버지 어 야 할 저는 낯설기만 한 당신을 부르며 통곡이라도 하고픈 심정일 뿐입니다.
당신을 그리며 당신에게 받지 못한 정을 첫아들에게 듬뿍 쏟았습니다. 당신의 그늘이 없었기에 항상 느꼈던 아쉬움을 아들에게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세발자전거! 제가 얼마나 애타도록 갈구하던 것이었습니까. 아마도 당신이 살아 계셨다면 지금까지 제 가슴에 한으로 맺혀 있지는 않았겠지요. 저는 첫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세발자전거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아비보다 훌륭한 인물로 키우고자 다섯 살 때부터 일기를 쓰게 했습니다. 두 아들이 초등학교에서 돌아오면 큰 책상에 나란히 앉아 문제집을 풀고, 학교에 간 동안 채점을 한 후 요점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시험 땐 졸음을 참고 함께 밤을 새우며 예상 문제를 내주곤 했습니다.
학교 행사마다 빠지지 않고 얼굴을 내밀어 치맛바람이 아닌 극성스런 아버지로 낙인이 찍힐 정도였습니다.
생모와의 아픈 이별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중학에 진학해서도 상위권을 유지하던 아들은 친 엄마보다 더 정을 붙이던 새 엄마가 떠나 버리자 방황했습니다. 아파트를 얻어 친 엄마와 동거를 시켜도 마찬가지 이었습니다. 지금의 새 엄마가 들어오고 두 아들을 제 곁에 데려온 후부터 성적은 다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상위권을 되찾은 아들에게 저와 이웃 친지들은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학교 측도 모교의 명예를 드높여 줄 S대학 합격을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시험이 가까워지면서 아들은 불안을 감추지 못한 채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체력 관리를 염려해 간식을 싸 들고 독서실을 찾았을 때 자리를 비우는 빈도가 늘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뒤늦게 사춘기가 찾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한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수능 시험날 아침, 아들을 수험장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던 저는 차를 다시 수험장으로 돌렸습니다. 아비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 때문에 본의 아니게 마음의 상처를 입고 역경을 헤쳐야 했던 아들이 가여워 교문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 가슴 조이며 기다리는 아비의 심정은 아랑곳없이 아들은 자정이 다되어 들어왔습니다. 가정환경과 인성이 좋지 않아 교제를 반대해 왔던 문제의 여학생을 만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여학생은 자정이 넘어 전화를 걸어오는가 하면, 아들과 아들의 친구 사이를 오가며 희열과 좌절을 번갈아 안겨 주었으며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서슴지 않을 정도의 문제아였습니다.
수능 점수를 발표하던 날도 아들은 자정이 넘도록 귀가하지 않았습니다. 재수를 한다며 수능시험 다음날 새벽에 도서관으로 향했던 아들의 비장한 각오는 어느 사이 오리무중(五里霧中)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우유부단하고 안일한 사고방식으로는 재수를 한다 해도 일류 대학 진학을 보장할 수 없다’는 내용의 쪽지를 아들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새벽에 들어온 아들은 쪽지를 보자 다시 나가 버렸습니다. 이른바 가출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들을 찾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온실에서 과잉으로 보호했던 아들을 이제라도 거리로 내보내 아침 이슬도 맞고 비바람에 온몸을 적실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아들은 담임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친구의 집을 전전하다가 일주일 만에 돌아왔습니다.
‘만에 하나, 아비의 그늘이 사라지고 네가 가장이 되었을 때를 염두에 두고 전공을 선택하라’고 조언을 하자 아들은 ‘불치의 지병을 앓고 계시냐?’고 오히려 반문을 했습니다. 아들은 사회에 진출하기 쉬운 인기 학과를 선택하기보다 원하는 학문을 좇아 유학까지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공부하느라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탓으로 많은 재산을 사기 당했던 전철을 아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논술 시험 덕분에 제가 추천했던 I 대학교 전자 전기 컴퓨터 공학부에 그나마 합격했습니다. 서울에 소재한 일류 대학 대신 집에서 가까운 I 대학교에 합격한 것은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저는 세간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아버지’라는 소설을 아들에게 선물했습니다. 아들에 대한 기대만큼 실망 역시 매우 컸기에 조금이나마 보상을 받으려 했던 것이 솔직한 제 심정이었습니다. 독후감을 요구한 저에게 아들은 지루해서 도중에 책장을 덮어 버렸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다시 한 번 아들에게 실망을 느껴야 했습니다. 아들이 미웠고 초라해진 제 자신이 가여워 졌습니다. 저승에 계신 아버지에게도 ‘인생에서 제일 소중한 건 역시 내 자신’이었습니까? 아들을 미워하면서도 차마 가슴속에서 지워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따뜻한 사람의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아픔이기’ 때문이어서 일까요?
언젠가는 아들에게도 소설 ‘아버지’를 읽게 될 날이 오겠지요. 그때면 ‘35란 숫자’의 의미와, ‘주말이면 관악 캠퍼스를 찾아가 해가 질 때까지 이곳을 걷게 될 자식의 모습을 상상하며 부디 내 자식을 당신의 학생으로 받아 달라’고 갈구하던 주인공의, 아니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애절한 바램을 이해하며 가슴으로 흐느끼게 되겠지요.
그날만을 기다리며 다시 한 번 한 아름 희망을 안아 보겠습니다. 저에게 용기를 주십시오. 낯선 이름뿐인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