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나비는 사랑의 화신이다. 특히 이맘때쯤 암수 짝짓기를 할 때면 ( 흔히 볼 수 없지만) 웰메이드 멜로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훨훨 날며 퍼레이드를 펼치다 지상에 착륙하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장면이 드라마틱 하기 때문이다.
카렐 차베크의 희곡 ‘곤충극장’에서 나비는 실재처럼 사랑의 교향곡을 늘어놓는다. 점잖은 척 ‘사색 속에서 길을 잃었노라’ 떠벌이며 시를 음미하고 숭고하고 뭔가 순수한 것을 찾지만 궁극에는 조잡한 사랑의 바다에서 퍼덕거린다.
나비에게 사랑은 교미를 위한 서곡이다. 목표에 도달한 사랑이다. 이렇게 사랑으로 1막을 열면 2막에서는 청소부와 약탈자가 등장한다. 번데기는 탄생을 위해 애를 쓰고 쇠똥구리는 거대한 똥을 밀고 등장한다.
쇠똥구리에게 똥은 단순히 냄새나는 똥이 아니라 재물이다. 온전한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쇠똥구리는 똥을 땅에 파묻는다. 나비처럼 쾌락보다는 오로지 재물에만 탐을 낸다. 쾌락은 순간이지만 똥냄새는 영원하다는 것.
이때 벌이 등장한다. 새끼를 위해 더 좋은 음식을 주기 위해 열중이다. 딸을 자랑스러워 하는 아비가 바로 멥시벌이 되겠다. 새끼를 밴 귀뚜라미 가족은 행복에 겹다.
그때 멥시벌이 비수를 꺼낸다. 살인이다. 하지만 벌은 죄책감은커녕 자신의 딸만 생각한다. 맛있는 부위만 골라 맛있게 먹으라면서 살육의 댓가를 즐긴다. 그에게 다른 세상은 없다. 오직 가족만이 있을 뿐. 사라진 부인을 찾는 귀뚜라미 남편도 찌른다. 부부 살인자. 늙은 조폭이 따로 없다.
3막은 대단하다. 극 전체에서 가장 활발하면서 놀라움의 연속이다. 개미들이 주인공이다. 개미들은 말한다. 모든 명령에 복종해야 하고 일해야 한다. 오로기 그분을 위해.
여기서 그분은 국가이며 정부이자 민족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을 위해 전쟁을 벌인다. 피비린내 나는 종족 전쟁은 눈 뜨고 볼 수 없다. 병정개미, 일개미 할 것 없이 세계 평화를 위해 세계 전쟁을 벌인다. (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흡사하다. 입으로는 평화를 말하면서 전쟁을 벌이는.)
그 와중에도 일은 빠지지 않는다. 개미들에게 사인은 오직 과로사일 뿐이다. 생산을 증대하기 위해 일분일초도 허비하지 않는다. 국익과 평화를 위해. 더 많이 갖기 위해 더 많이 일해야 한다.
발명가는 이때다 싶어 전쟁기계를 만든다. 빠르고 강력한 첨단무기. 순식간에 만 명 십만 명 이십만 명을 죽이는. 국경을 넘어 노란 개미 영토로 침입한다. 풀잎 두 개 사이로 난 통로, 유일하게 남쪽으로 통하는 길.( 마치 호르무즈 해협을 연상시킨다.)
전쟁에는 독재자가 필연적이다. 스스로 독재를 선포한 자는 만수무강을 비는 참모총장과 병정들을 상대로 진군 명령을 내린다. 전쟁은 국가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방위일 뿐. 병사들이 죽으면 2차 징발 3차 징발을 하고 스스로 황제가 된다.
하지만 그는 병사에게 죽임을 당한다. 노란 개미들의 승리다. 노란 개미지도자는 말한다. 저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정의와 진보의 승리다. 우리는 국가의 명예와 상업적 이익만을 위해 싸운다.
이를 바라보는 여행자의 마음은 착잡하다. 곤충의 세계나 인간 세상이나 하루살이 인생일 뿐인데.
팁: 1차 세계 대전 이후 세상은 그 이전으로 돌아가는데 애를 먹었다. (이란 전쟁이 끝나도 호르무즈 해협은 그 이전과 같을 수가 없는 것처럼.)
카렐 차베크가 보기에 세상은 평화롭지 않다. 곤충과 인간의 삶이란 것이 도무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쾌락만을 추구하거나 자기 가족밖에 모르고 재물에 평생을 바치고 급기야 상대를 죽인다.
비인간화는 세계의 종말을 가져오는데도 말이다. 자아를 완성하는데 힘써야 한다는 말은 이상주의자들의 흰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 세상에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고 되레 전체주의로 가고 있다.
차베크는 이걸 ‘곤충극장’을 통해 경계하고 있다. 눈부신 과학의 진보는 인간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멸망의 길로 이르게 한다는 점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 핵무기를 보라.)
종족 학살을 위해 독재자의 명령에 따라 구령에 맞춰 진격하는 개미들의 전투 행렬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는다. 인간 존재는 과연 이런 개미들보다 나은가. 땅에 배를 바짝 붙이고 기어 다니는 벌레들보다 우수한가. 그래서 우리의 삶은 더 소중한가.
한편 ‘곤충극장’에는 등장인물이 수도 없이 많다. 아무리 큰 극단이라고 해도 배우들이 전부 출연할 수 기회가 주어져 초보 연극계가 선호한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