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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물리학자들(1962)- 솔로몬 왕이 된 정신병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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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물리학자들(1962)- 솔로몬 왕이 된 정신병원 의사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5.12.11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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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정신병동 이야기는 으스스하다. 이렇게 흐리고 진눈깨비마저 내리는 날이면 거기서 빠져나와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 설상가상으로 연쇄 살인 사건마저 일어난다면.

공포광 빼고 당장 책을 덮어야 옳다. 하지만 뒤렌마트의 ‘물리학자들’이라면 말은 달라진다. 미스터리 호러물이 아니다. 범인이 잡히고 사건이 완전히 해결돼서가 아니다. 어떤 거대한 흐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는 좌절감에 압도당하기 때문이다.

여기 세 명의 자발적인 정신병원 입원자가 있다. 병원 원장은 폰 찬트 박사다. 나이든 미혼녀다. 그녀는 워낙 그 분야의 명성이 자자해 돈 많은 엘리트로 병원이 가득 차 있다. 환자들은 무해하고 유순해 다루기 쉽다.

그 가운데 한 명이 뉴턴이다. 본명이 있지만 자신은 만유인력을 발명한 뉴턴으로 착각하고 있다. 1막이 시작되면 수사반장이 사건 현장 검증을 하고 있다. 다름 아닌 아인슈타인이 자신을 돌보던 간호사를 죽였다.

그러나 살인범은 체포되지 않았다. 상대성 이론을 만든 아인슈타인으로 생각하는 미친 사람이기 때문이다. 수사반장은 수간호사에게 여자 간호사에게 병동을 맡기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지난번에도 뉴턴에게 여간호사가 이번처럼 목 졸라 살해됐기 때문이다. 남자 간호사였다면 일어날 수 없다는 것. 수사반장은 범인을 취조하고 싶다. 그의 행방을 묻자 수간호사는 그가 진짜 아인슈타인이 그랬던 것처럼 바이올린 켜고 있다는 것.

▲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세 명의 물리학자 이야기를 통해 과학자들의 정신적 고뇌가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다.
▲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세 명의 물리학자 이야기를 통해 과학자들의 정신적 고뇌가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살인자가 태연히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니. 당장 멈추게 하라는 수사반장의 말에 수간호사는 그럴 수 없다고 맞선다. 범인은 환자이고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만이 진정된다는 것. 말하자면 연주는 치료의 일환이다.

폰 찬트 박사를 찾자 수간호사는 아인슈타인 옆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게 어디 인간 사회에서 가능한 일인가. 하지만 정신병동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석 달 동안 두 건의 살인 사건에도 찬트 박사는 수사반장의 안전대책 요구에 태연하다. 환자 스스로보다 자신이 환자들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며 내 환자는 내가 관리 한다는 것. 위험한 환자인지 아닌지도 자신이 결정한다고 되레 화를 낸다.

하지만 찬트 박사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뫼비우스가 22세 간호사 모니카를 목 졸라 죽인 것인 것이다. 2막이 시작되면 1막과 마찬가지로 수사반장이 사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제 찬트 박사는 형사가 말하지 않아도 세 명의 물리학자 전담 간호사를 여자가 아닌 남자로 바꾼다. 이들은 헤비급 유럽 챔피언 복서 등 무시무시한 운동으로 단련된 거구들이다.

한편 박사는 뫼비우스에게 자신을 따른 간호사를 어떻게 죽일 수 있느냐고 질책한다. 뫼비우스는 태연하다. 솔로몬 왕이 명령했다는 것. 뫼비우스는 살인 직전 창가에 서서 어두워 오는 저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솔로몬 왕이 나타나 창유리를 통해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정신병자를 체포할 수 없는 수사반장은 처음에는 자신이 개입할 수 없는데 화가 났으나 이제는 즐기게 됐다고 뫼비우스에게 고백한다.

살인자 세 명을 체포하기 않아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게 됐다는 것. 정의가 마침내 휴식을 취하게 됐다고 환호성을 올린다. 정의는 사람을 혹사시킨다는 것이 반장의 지론이다. 정의에 헌신하다 보면 건강상으로나 도덕적으로 황폐해 진다는 것.

수사반장은 사건 현장을 떠나면서 뉴턴과 아인슈타인에게 안부 인사를 전해 달라고 뫼비우스에게 부탁한다.

팁: 세 사람 즉 뉴턴과 아인슈타인 그리고 뫼비우스는 자발적 정신병자다. 스스로 병원에 갇힌 그들은 각자 중요한 임무를 띠고 있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은 뫼비우스의 논문의 비밀을 탈취하려고 각국을 대표해 파견된 첩자들이다. 서구와 동구의 스파이라고나 할까.

뫼비우스는 자신의 논문이 세계로 퍼질 경우 지구 멸망, 인류 소멸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질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안전한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것.

한편 찬트 박사는 이들이 미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뫼비우스의 논문을 확보했다. 그걸 바탕으로 그녀는 거대한 공장을 세우고 거기서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고 한다.

그녀는 세 명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이제 알아도 문제 될 것이 없으니까. 자신에게도 찬란한 진짜 솔로몬 왕이 나타났다는 것. 그녀는 현생의 솔로몬 왕을 꿈꾼다. 그래서 살인을 하도록 꾸몄다.

세 명의 간호사가 세 명의 물리학자를 따르도록 부추겼다. 왕의 권력을 넘겨 받은 찬트 박사. 세상이 정신병원 의사의 손에 떨어진 순간이다. 정말로 정신병원에 감금되어야 마땅한 찬트 박사. 하지만 막은 여기서 내린다.

극이 쓰여진 1962년은 쿠바 핵 미사일 위기와 미소 대결이 극한으로 치닫던 냉전의 시대였다.

뒤렌마크는 히틀러가 죽은 후부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작품 활동을 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이 ‘물리학자들’의 탄생 배경이 될 것이다.

뫼비우스는 영화로도 제작된 핵물리학자 오펜하이머를 연상시킨다. 과학자의 책임은 어디까지이고 그 과학은 정치에 종속되어야 하는가 하는 심오한 문제가 서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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