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게 있었다.
‘문둥병자가 잡아먹는다. 배를 갈라서 김이 나는 간을 빼먹는다. 그들이 바랑에 넣고 다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소금이다. 꺼낸 간을 찍어 먹기 위해서다.’
말 듣지 않는 아이가 수시로 이런 말을 들었다면 식상할 법도 한데 들을 때마다 매번 등에 식은땀이 났다. 진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60년대 후반쯤이었다. 툭 하면 잡아 먹힌다고 했고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몸을 사렸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말은 들은 적은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오랜 세월 그러니까 백년전 혹은 그보다 더 이전에는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었을 수 있겠다 싶었다.
수천 년 전 중국에서도 이런 것이 문제가 됐던 모양이다. 그래서 루쉰은 ‘광인일기’에서 식인문화( 이것을 문화라고 해야 하나. 악습이겠지.)에 대해 일갈하고 있다.
정상적인 사람의 입으로 표현하기 어려우니 광인이 쓴 일기 형식을 빌려 수천 년 간 이어온 사람 잡아먹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피해 망상증에 걸렸으나 지금은 나은 나의 옛 친구가 쓴 일기 두 권의 내용은 이렇다.
큰 형님이 사라진 아니 죽은 다섯 살 난 누이동생을 먹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부모가 편찮으면 자식은 자기 살점을 푹 삶아 드려야 효자다.' 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한 점을 먹을 수 있다면 송두리째 먹을 수 있다. 어머니는 울면서도 아니라고는 하지 않는다.
큰 형님의 밥이 된 불쌍한 동생. 나는 이런 것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사람은 개과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차 세상은 사람을 잡아먹는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
사람을 안 잡아먹어야 진정한 사람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습관은, 악습은, 생계는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흉년이 아닌데도 사람을 잡아먹느냐는 반문은 흉년이면 잡아먹는다는 다른 말과 같다. 식인자는 여전히 사람을 먹는다. 하지만 그들도 그것이 썩 좋은 일은 아니라는 것, 다시 말해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짜낸 묘안이 먹히는 자를 광인 취급하는 것이다. 미친놈을 잡아먹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자기 위안을 삼는 것이다. 그래야 살인자라는 불명예를 쓰지 않고 덜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된다.
상투적인 수법이다. 그리고 식인 행위가 용기이며 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큰 형님 패거리들은 더 잡아먹으려고 혈안이 돼 있다. 못된 놈, 정신병자를 죽여서 간을 꺼내 먹는다. 소금에 찍어 먹고 기름에 튀겨 먹는다.
생선인지 사람고기인지 모른다. 그들은 말한다. 싹 다 먹어 버리자. 범인이 처형되면 폐병환자는 그 피에 만두를 찍어 먹는다. 그 패거리들은 누구라도 먹을 수 있다.
광인이 언제 잡혀 먹힐지 몰라 불안해하는 이유다. 그러면서 그러면 잘못이라고 한다. 사람은 선해져야 한다. 분위기는 점차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기울어야 한다는 것.
이런 분위기 탓인지 식인 패거리들은 직접 죽이는 대신 자살하게 만든다. 허리띠를 스스로 풀어 대들보에 목을 메고 죽기를 바란다. 겁에 질려 번민 끝에 죽은 자들도 환영이다.
살인죄도 피하고 소원성취도 이룬다. 악인으로 몰아 죽게 만든다. 죽은 고기를 먹는 하이에나와 다를 바가 없다.
창피하다. 옛날부터 그랬으니 지금도 그래야 한다는 것은 식인을 즐기기 위한 거짓 논리에 불과하다. ‘아큐정전’으로 유명한 루쉰은 고대 중국의 식인 습관을 타파해야 할 봉건주의에 빗대서 표현하고 있다.
께케묵은 장부를 걷어 차듯이 차버려야 한다는 것. 이 소설은 근대 중국 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팁: 유명한 한의학서인 ‘본초강목’에도 식인 습관이 나와 있다. 인육도 달여 먹을 수 있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오죽 치료약이 없었으면 그랬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
오죽 먹을 게 없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왜 없겠는가. 흉년도 아닌데 어떻게 잡아먹느냐는 말에 공감하는 까닭이다. 삼일 굶고 도적질 안하는 사람 없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살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한다. 양심이나 도덕적 잣대는 생명 연장 앞에서는 뒷걸음질 친다. 찬양할 수는 없을지언정 이해는 간다.
자식을 서로 바꾸어 잡아먹을 수 있다거나 사람고기를 뜯어 먹고 가죽을 깔고 자야 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사람고기를 못 먹어본 어린이가 있을까. 광인이 남긴 일기 두 권에는 인간 백정들에 대한 이런 말들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