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상앙’은 새로운 법을 제정한 후 백성들이 제대로 믿고 지켜 나갈 수 있는 방안을 생각했다. 제아무리 훌륭한 법안이라도 백성들이 불신하고 외면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상앙’은 남문에 삼장(三丈)이나 되는 나무를 새워 놓고 ‘이 나무 장대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는 십금(十金)을 포상 한다’는 방을 붙였다.
그러나 아무도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상금이 작기 때문이라고 여긴 ‘상앙’은 오십 금으로 포상금을 올렸다. 나무 막대기 하나를 옮기는 데 비해 엄청난 포상금을 준다고 하자 백성들은 더욱 믿지 않았다.
어느 날 한 백성이 장난삼아 나무를 옮기자 ‘상앙’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약속대로 오십 금을 포상하며 진나라는 틀림없이 신의를 지킨다고 강조했다. 이런 본을 보인 후 새로운 법령을 공포하자 백성들은 신뢰를 갖고 법을 지켰다.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은 신의이고 군주의 신의는 곧 국력이기 때문이다.
수 년 전, 항간엔 정부의 말을 반대로 믿으면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풍문이 꼬리를 물었다. 예를 들어 ‘기름 값 인상이 없으니 걱정 말라’는 정부의 발표를 듣자마자 기름보일러와 자동차 연료 탱크를 채운 시민들은 손해를 보지 않았다.
백년대계를 바라보아야 할 교육 정책은 해마다 바뀌며 수험생과 학부형들을 혼란에 빠트리는가 하면, 택지초과부담금과 토지초과이득세를 납부하지 않고 항소한 시민은 이제 면세 혜택을 받게 되었지만 이미 납부한 모범 시민들은 혜택 대상에서 예외라고 한다.
국민 연금 가입을 안 하겠다는 자영업자들에게 원하는 액수로 신고를 받겠다고 약속했던 정부는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인상된 신고 액수를 정해 놓고 수정 신고를 강요하고 있다. 한 달도 채 안된 약속을 어기는 데 10년 후의 일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불신과 불안감으로 가득 찬 교원들과 공무원들이 퇴직금을 한 푼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명퇴를 서두르고 있다.
몇 년 전, 농토와 소를 팔고 빚까지 내서라도 증권에 투자하도록 정부가 바람을 잡은 탓으로 숫한 국민들이 패가망신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외국인 자본과 증권가의 큰손들에게 놀아나는 증권 열기가 거품이 아니라고 일국(一國)의 경제 책임자가 뚜쟁이 노릇을 하고 있다.
정치와 정책의 불신은 근본적으로 정치인에 대한 신뢰감 상실에 기인한다. 줄곧 집권당만을 쫓아다닌 철새 정치인, 편한 데로 당적을 옮기는 기회주의자들에게 어떤 검정과 여과 장치도 없이 앞 다투어 추파를 던지는 해바라기성 기성 정치인들의 자질은 오십보백보이다.
오늘 이 말을 했다가 내일 저 말로 바꾸기를 예사로 하고 이 당 저 당을 오가며 변절을 일삼는 정치인과 그들을 이용하려다가 배신당하는 기성 정치인. 그러면서도 일말의 죄책감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그들 양심 불감증 환자들에게서 국민들이 어떤 신의를 기대할 수 있으며 그런 자질의 정치인들이 짜내는 정책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나무 막대를 옮기는 시민에게 상금을 주겠다는 정책을 지금 발표한다면 차라리 나무 막대를 꺾어 버리고픈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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