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럴 땐 늙은 말의 지혜를 써야 한다(老馬之智可用也)』 고 ‘관중’이 말했다. 일행은 말을 풀어 준 후 그 뒤를 따라가 제 길을 찾았다.
어느 날 산 속을 거닐다가 마실 물이 떨어졌다. 『개미는 겨울에 산의 양지쪽에 살고 여름엔 북쪽 그늘에 살며, 개미집이 땅 위 한치 높이에 있으면 그 여덟 자 밑에는 반드시 물이 있다』고 ‘습붕’이 말했다. 일행은 개미집을 찾아 땅을 파서 물을 얻을 수 있었다.
‘한비자’는 이 이야기 끝에 『‘관중’이나 ‘습붕’처럼 지혜가 깊은 성인이라도 자신이 모르는 것은 늙은 말이나 개미일지라도 수치심으로 여기지 않고 선생으로 모셔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요즘 국민 연금과 의약 분업 정책을 보면 현 정권에 ‘관중’과 ‘습붕’같은 지도자가 없는 것인지 ‘늙은 말’이나 ‘개미’를 능가하는 인재 부재인지 울분이 치밀어 오를 정도이다.
그 누가 대통령으로 하여금 IMF 경제난으로 고통을 받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던져 주지 못할 망정 사과의 발언을 하도록 만들었는가?
모 일간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치적을 쌓기 위한 밀어붙이기 식 정책’이라고 했듯이 어떤 정책이든 시행에 앞서 충분한 준비 기간을 가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될 요지가 보이면 즉시 중지하거나 보완책을 마무리한 후에 밀어붙여도 늦지 않을 것이다. 급히 먹은 밥이 체하듯 개혁의 고삐 또한 서둘러 당길수록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새삼 생육신과 사육신의 의미를 새겨 보게 된다. 역사가 심판을 해주는 충신이 온 민족의 숭앙을 받는 이유를, 그리고 과거나 현재나 충신의 숫자가 극히 적은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某 각료는 대통령이 방귀를 뀌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모순된 정책을 제안할 때도 ‘지당하신 분부이옵니다. 각하!’라는 아부의 말로 일신의 영달을 누렸다고 한다.
TV 역사극은 과거를 거울삼아 두 번 다시 실책을 하지 말라는 교훈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엔 사약과 유배를 각오한 고언(苦言), 직언(直言), 충언(忠言)보다는 자리를 지키기 위한 복지부동식 처세술이 우선인 세태이다.
연금 보험이 개인의 미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제도라면 절대로 강제성을 띄우면 안 된다. 많은 서민들이 힘겹게 부어 오던 적금마저 해약해야 하는 이 경제 난국에 몇 십 년 후의 복지를 위해 얼토당토않은 액수의 연금 보험금을 강제 납부하라는 것은 그릇된 정책이다.
필자는 지난 8월 29일자 인천일보에 ‘의약 분업과 전문성’이란 제언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완전 의약 분업의 실시, 필요한 경우 의사의 동의 없이 약사의 처방전 수정, 특정 회사의 상품명(일반명)이 아닌 성분 명으로의 처방, 의약 분업에 주사제 포함’ 등을 선결하지 않으면 소규모 약국의 도산 사태를 초래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또한 아무리 다급할지라도 의사에게 처방료를 지불한 후에야 그 처방전으로 약국에서 약을 구입할 수 있는 현 의약 분업 제도는 이 경제 난국에 적합한 정책이 될 수가 없다. 시기에 걸맞지 않은 개혁은 오히려 혼란과 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을 자처하며 서둘러 G-7에 가입하고 금융 실명제를 갑자기 도입했던 실책을 통해 우리는 ‘뱁새가 황새를 좇아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낀 바 있다.
GNP 2만 불(弗) 이상인 선진국에서나 가능한 의약 분업과 국민 연금 정책을 이 경제 난국에 밀어붙인다는 것은 우리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거품 경제 환상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 그릇된 정책을 알고도 복지부동해 오던 국회 의원들이 여론을 등에 업고 하나, 둘, 뒤늦게나마 충언을 내뱉고 있다. 왜 진작, 먼 훗날 역사가 증명해 줄, 충신이 되지 못했는가? 귀여운 자식에게 매 한 대를 더 때린다는 말처럼 진작 고언(苦言)을 했더라면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진사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구의원이든, 시의원이든 국회의원이든 여야 의원들은 국민을 위해 일하라고 선출해 준 것이지 복지부동의 처세술로 자신의 앞가림이나 챙기고 소속 당을 감싸라고 배지를 달아 준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특히 집권당의 인사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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