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F 국난의 전주곡이 시작되던 YS 정권 말기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자살한 중소기업체 사장들. 그들은 정치인들의 비자금에 비하면 쌈짓돈도 안 되는 부도액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면죄부로 내놓은 채 한 맺힌 영혼은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다.
반면에 중소 기업인들이 부도를 당하도록 정치를 잘못한 무리들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못한 채 말 같지 않은 말들을 떠벌리며 재집권의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 살아 남아 있는 중소 기업체 사장들 마저 자살케 하고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을 두 번 죽이려는 심보가 아닐 수 없다.
작은 대통령으로 일컬어졌던 전직 대통령의 차남이 대선 자금 70억 원을 국가에 헌납키로 한 약속을 어긴 데 대해 국민들은 배신당했다며 울분을 금치 못하고 있다. YS가 밝힌 대로 김대통령의 대선 자금에 대해 발목을 잡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의 순수한 약속을 이행하느라 여론을 무시한 채 서둘러 8.15 특사 대상에 포함시켰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안타까운 인정으로 치자면 어쩌다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가 가족의 생계가 달린 면허를 취소 당하고 거동 못하는 노부모와 젖먹이 자식을 남겨 둔 채 구속당하는 경우도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이 두 가지가 아니라면 전직 대통령 차남에 대한 특별 대우는 도대체 어느 나라의 법이란 말인가.
전직 두 대통령들도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헌납하지 않고, 내각제를 두고 조석으로 말을 바꾸는 마당에 그 역시 겨우 70억 원의 헌납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는지 모른다.
정부 여당이 반 부패 특위를 만들어 공직자들에게는 단돈 몇 만원의 축의금도 못 받게 해 놓고 정작 국무총리는 총리 해임 건의안 표결 때 퇴장한 대가로 소속 당 의원들에게 500만원의 오리발을 돌렸다고 한다. 요즘은 아랫물이 맑아야 윗물도 맑아지는가 보다.
그들은 계약을 어긴 임차인과 매수인이 계약금을 포기하고 임대인과 매도인은 계약금의 2배에 해당되는 위약금을 변제해 주는 서민들만도 못한 짓들을 서슴지 않고 있다.
‘씨랜드’ 사건으로 일곱 살 난 아들을 잃은 전직 여자 필드하키 국가 대표 선수인 ‘김순덕’씨가 정부로부터 받았던 훈장들을 청와대로 되돌려 보냈다고 한다. 정부를 믿을 수 없는 이 나라에서 하나 남은 자식마저 잃지 않기 위해 이민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는 순간 독일 ‘하멜른’ 지방의 ‘피리 부는 사나이’란 전설이 떠오른다.
신비한 피리 소리로 모든 동물을 이동시킬 수 있는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국왕은 온 나라에 들끓는 쥐를 없애 주면 엄청난 상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사나이는 피리를 불어 쥐들을 바다 속으로 유인해 빠트렸지만 국왕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국왕이 자신을 배신한 대가로 이번엔 온 나라의 어린이들을 피리 소리로 유인해 바다 속에 수장시키고 말았다.
약속 위반으로 인한 불신은 이처럼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정치인들은 깨달아야 한다.
한심스런 일은 ‘김순덕’ 씨의 면담을 외면해 오던 ‘김종필’ 총리가 언론에서 이 내용을 대서 특필하기 시작하자 그제야 면담을 수락하겠다고 태도를 바꾼 것이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얕은 수작이 아닐 수 없다.
김사연 ( 수필가, 인천시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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