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에도 무보수로 봉사를 해 준 까닭은 필자와 절친한 K의 제의를 뿌리치기 곤란해서가 아니라 야당 후보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부평 선거구는 지금의 계양구와 서구까지 포함되어 있었고 필자는 녹음기를 들고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정보부 직원과 친해질 정도로 한달 동안 구석구석 까지 누비고 다녔다. 종반전에 들어서자 후보는 목이 쉬어 연설조차 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 안쓰러웠고 운동원들도 파김치가 된 상태였다.
한달 동안의 선거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지친 몸을 달래던 어느 날이었다. 함께 선거 운동을 돕자고 제안했던 친구 K가 낙선 소식과 함께 사과의 뜻을 전해 왔다.
내용인즉, 필자의 순수한 자원 봉사 의지와는 달리, 선거 운동 기간 S와 K는 일과가 끝난 후 필자를 따돌리고 유흥가를 드나들었으며 게다가 마이크로폰 한 개가 분실되었을 때도 필자를 의심했었다면서 용서를 빈다는 내용이었다. 친구의 고백은 필자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 이듬해 S가 군대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고 K가 이민을 떠난 지 28년이 지났건만 지금도 선거 운동 이야기만 나오면 당시의 허허로운 감정이 되새겨 지곤 한다.
99년 3.30 보선을 마무리하며 동아일보 정치부 공종식 기자가 쓴 ‘유권자도 혼탁 선거 책임’이란 글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경기 시흥의 국회의원 보선에 출마한 어느 후보의 진영의 핵심 관계자의 하소연에 의하면 결혼식, 계모임, 산악회, 향우회에서 하루 100통이 넘게 전화가 걸려 와 3-5만원씩을 지출했다고 한다.
150표가 있다며 1표 당 3만원씩 요구한 사람, 축구공을 사 달라는 조기축구회, 체육대회를 한다며 전자 오르간을 사 달라는 사람, 식당 음식값을 떠넘기는 전화 등 선거 판을 잔치 판으로 착각하고 후보자를 봉으로 여기는 유권자의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 한 유권자들도 마냥 정치인들을 향해 손가락질 할 자격이 없다. 모두가 선거 판 오염의 주범들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선거에 출마한 경험이 있는 후보자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이 후보 저 후보를 좇아 다니며 식사를 여덟 번이나 얻어먹었다고 자랑하는 타락한 유권자가 있는 반면에 ‘잘 부탁한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후보자에게 ‘주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분에게 오히려 우리가 부탁을 드려야 한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 유권자들도 간혹 있다.
요즘은 필자가 대학생 시절처럼 몸을 던지고, 약사가 된 후엔 주머니 돈을 털어 가며 밀어 주었던 그런 순수한 자원 봉사는 찾아보기 힘들고 선거꾼들이 활개를 치는 것 같다.
운동원의 대부분은 후보가 좋아서가 아니라 잿밥에 더 마음이 가있고, 후보자의 선거 자금은 눈먼돈이라고 여겼는지 ‘내게 맡겨야 선거법에 걸리지 않고 쓸 수 있다’며 친절(?)을 베푸는 선거꾼도 있었다. 낙선의 아픔을 눈물로 삭이는 후보에게 ‘그건 댁의 사정이고 일당을 더 달라’며 억지를 부리는 운동원도 있었다.
보선 혹은 재선과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부도덕성과 유권자들의 부화뇌동이 척결되지 않는 한 어느 선거에서든 당선자도 유권자도 떳떳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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