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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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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양심
  • 의약뉴스
  • 승인 2004.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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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

인천 문인협회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평소 이용하던 간석오거리로 진입을 시도했으나 전철역 출입구 공사로 도로 폭이 좁아진 데다가 주말이 겹쳐 도저히 불가능했다.

다른 길로 가기 위해 조심스럽게 차를 후진했다. 좌측 뒷문 옆엔 고물장수가 리어카 손잡이를 잡고 돌아서 있었다. 갑자기 고물장수는 엉덩이로 뒷문을 들이받은 후 앞으로 다가와 운전석 유리창을 손으로 치며 운전을 똑바로 하라고 소리 쳤다.

기가 막혀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멀쩡히 걷던 그는 바퀴가 발등 위로 지나갔다며 길바닥에 주저앉은 후 차번호를 적으면서 노동으로 먹고사는 몸을 책임지라고 소리를 질렀다.

돌아서 있는 사람의 발뒤꿈치에도 바퀴가 닿기 어려운데 발등 위로 바퀴가 지나갔다니---.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자고 했으나 그는 막무가내로 마다하며 그냥 돌아가란다.
내 잘못 없이 길에서 망신을 당하기 싫어 빨리 현장을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순간적으로 ‘뺑소니 차량’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관할인 남부경찰서 간석3파출소에 전화로 신고를 하자 3분도 안되어 출동했다. 경찰이 병원에 가기 싫으면 파출소에 가서 사건을 처리하자고 했으나 이것마저도 거절한다.

사태를 파악한 차선경 경사는 즉시 수첩을 꺼내어 ‘몸에 이상이 없고 차후에 뺑소니 등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적은 후 고물장수의 서명을 받았다.
사고를 당한 당사자는 당황하여 판단력이 흐려지게 마련이다. 특히 여성이나 초보 운전자의 경우엔 영락없이 뺑소니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인데 한 경찰의 민첩한 기지가 억울한 피해자의 발생을 예방한 것이다.

평소 불우 이웃 사랑을 염두에 두고 신문지 한 장이라도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다가 그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그 대가(代價)가 인간 불신의 상처뿐이라니.
멀쩡한 걸음으로 리어카를 밀고 대로를 무단 횡단하는 고물장수를 지켜보는 순간 며칠 전에 감상했던 영화가 불현듯 비수처럼 떠오른다.

영화 A. 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 지능)는 양심을 져버린 채 반인륜적인 작태를 일삼는 인간성을 꼬집으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은 기계 인간인 로봇이나 할 수 있는가’ 질문을 던져 주는 작품이다.
인간 로봇인 데이비드 소년은 한 가정에 입양된다. 그들의 하나뿐인 아들이 식물인간으로 누워있기 때문에 양자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친아들이 깨어난 후 어머니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두 소년은 갈등한다. 자신과 똑같이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로봇 소년을 시기한 친아들은 그를 제거하기 위해 ‘어머니의 머리칼을 가위로 자르면 너를 더욱 사랑하실 것이라며 ‘인간의 사악함이라곤 전혀 모르는’ 순진한 로봇 소년을 충동한다.

한 밤중, 가위를 들고 다가서는 로봇에게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어머니는 결국 로봇 소년을 숲 속에 버린다. 로봇 소년은 인간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인간들은 비인간적인 행동으로 로봇에게 보답한 것이다.

하지만 로봇 소년은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찾아 2000년을 헤매다가 주머니 속에 간직한 어머니의 머리칼로 유전자를 합성할 수 있다는 해답을 얻는다.
로봇 소년은 단 하루밖에 생명력이 없는 복제된 어머니에게 그녀가 전에 즐겨 마시던 맛과 똑같은 커피를 타 드리고 어머니의 품에 안겨 그녀가 읽어 주는 동화를 듣기도 했다.

친아들의 곁에서 마냥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했던 어머니의 사랑을 2000년이 지난 후에야 맛본 로봇 소년은 어머니와 함께 행복한 삶을 마감한다.
과연 양심을 져버리지 않고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것은 기계 인간인 로봇만이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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