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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5-07-17 18:45 (목)
각박한 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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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박한 인심
  • 의약뉴스
  • 승인 2004.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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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여약사 한 분은 동네 신문에 오랫동안 광고 스폰서를 해 왔다. 직업상 약국을 비우며 나설 수 없지만 조그만 성의를 베푸는 것으로 봉사에 대신 할 수 있으리라 자위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자신이 약을 지어 준 환자가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전화가 왔다. 놀랜 가슴을 가라앉히며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환자는 특이체질로 인한 피부 발진 부작용이 생겼다고 했다. 헌데 피부과에 누워 있어야 할 환자는 엉뚱하게도 내과 병동에 누워 있었고 전직 신문기자였다는 환자의 남편은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며 여약사에게 엄청난 합의금을 요구했다. 그 후로 그 여약사는 각박하고 이기적인 사회에서 남을 위해 봉사해야 할 의욕을 잃고 말았다.

손님 한 분이 몇 만 원짜리 영양제도 아닌 몇 백 원짜리 드링크 한 병을 사 마시면서 ‘봉사한답시고 약값을 비싸게 받는다’고 면박을 준다. 약사회장이기 때문에 가격 장난으로 환자들을 현혹하지 않고, 건전한 거래 질서를 위해 정상적인 가격을 받는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노인 대학에 나가 무료로 건강 강연을 했더니 노인 한 분이 어렵게 길을 물으며 약국을 찾아와 따님의 약을 사 갔다. 그분은 내 어머니와 함께 노인 대학에 다닌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날, 딸은 노인을 모시고 와서 약을 물러 달라고 했다. 현대의 젊은 세대가 아무리 개성이 강하다지만 연로한 제 어머니의 체면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당당한 표정이었다.

내가 아는 이웃 중엔 상대방의 애경사(哀慶事)에 빠짐없이 참석을 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자신이 일을 당했을 땐 얼굴조차 비치지 않는 친지도 있다며 분개하는 분도 있다.

모 단체의 행사 때마다 후원금을 기탁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행사 용품을 구입할 땐 자신의 업소를 제쳐놓고 엉뚱한 곳을 이용한다며 서운해하는 기념품 가게 주인도 있었다.
某 구의원은 불경기 중에도 자신의 사업을 제쳐놓고 동네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있건만 그 속사정을 이해하고 그의 가게를 이용해 주는 주민이 몇이나 될지 안타까울 뿐이다.

약국을 개업한 이래 초등학교를 비롯하여 각 기관에 무료로 약품을 제공하고 장학금을 전달해 왔어도 약품을 납품해 달라는 인사 차례조차 받아 본 일이 없는데 친지 중엔 한술 더 떠 급식 우유나 소모품을 학교에 납품할 수 있도록 압력을 넣어 달라는 어이없는 청탁을 해 와 허전한 가슴을 더욱 허허롭게 하고 있다.

성인 군자가 아닌 이상, 이런 경우를 지켜보거나 겪을 때마다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일이 얼마나 바보스런 일인가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명절은 물론 연말 연시에 고아원이나 양노원을 찾는 후원의 손길이 점차 줄어드는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이 아닐까?

세상의 인심이 각박해지는 이유는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인식하지 않고 자신의 눈 높이로 세상을 보는 이기주의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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