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에 뒤질세라 대한약사회도 약권(藥權) 신장(伸張)의 차원에서 정치 참여를 선언하였다. 모 분회는 회원 보호 차원에서 보건소에 대응하기 위해 구의원의 필요성을 느끼고 임원들에게 구의원 출마를 적극 권장했다고 한다.
한약분쟁을 통해 여론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에 친분을 쌓아 온 정치인들, 기관장들과 사회단체장들을 분회 총회 때 가능하면 많이 초청하여 약사의 위상을 높이고자 동분서주할 때 약사회가 정치단체냐며 비아냥거리는 회원이 있었던 시절과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지난 지방선거 때 출마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는 나로선 정치 참여가 말처럼 쉬울까 싶은 의구심이 앞설 뿐이다. 정치에는 엄청난 돈과 시간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약사들 입장에선 흰 가운을 걸친 지식인이 생업을 포기하고 구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출마하면 유권자들이 감동하여 당선시켜 줄 것으로 믿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4년 전, 정치인들은 ‘김회장님 같은 분들이 구의회에 들어와 의장을 맡아야 의회의 위상이 선다’고 나에게 출마를 권하면서도 ‘그러나 선거판은 대학 출신 후보가 초등학교 출신 부동산 중개인에게 패배하는 곳’이라고 귀띔을 해 주었다. 그만큼 유권자의 수준이 낮고 정치 세계가 냉혹하다는 뜻이다.
내가 시의원보다 구의원에 뜻을 둔 것은 구청 관할지역의 분회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의약분업 과도기니 만큼 분회장 임기를 한 번 더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수락한 나에게 총회에 참석도 안한 전직 모 임원은 ‘분회장은 이제 그만 하고 사회 활동이나 하라’며 불평 섞인 충고를 했다.
하지만 나는 분회장 자리에서 벗어나는 순간부터는 오직 자신에만 충실할 작정이다. 그 동안 처방전을 포기한 채 각 기관장들과 사회단체장들과의 친분을 쌓고 각종 행사에 얼굴을 내밀며 사회 활동을 하고 끝내 구의원까지 출마한 이유는 회원들의 권익을 지켜야 할 분회장 이었기 때문이었다.
수년 전, 각 구 분회장을 포함한 지부 임원진들과 인천시장의 만찬 석상에서 술에 취한 모 보건국장이 ‘너희 약사들을 죽이고 살릴 수 있다’는 망발을 내뱉었을 때, 그리고 지부 회장단과의 상견례 약속을 해놓고도 말 한마디 없이 바람을 맞힌 모 보건국장의 망동을 지켜보며 당시 지부 회장단 중 인천시 공무원을 감독하는 시의원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런 대접을 받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내가 지방선거에 출마했고 차기 선거에 출마할지 모른다는 사실만으로도 약사회장을 대하는 공무원들의 자세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나를 진정으로 아껴주는 예술인과 언론인들을 비롯한 친지들은 나의 정치 참여를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정치판에 끼여들면 사회 봉사를 많이 한 약사회장, 수필을 쓰는 문인, 신문에 입바른 칼럼을 기고해 온 지식인으로서의 참신한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무너진다는 이유에서다. 회원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사회 봉사활동을 더 전개하고 신문에 날카로운 칼럼을 기고하거나 방송에 제보를 하여 압력을 가하라는 것이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모 후보가 ‘나를 찍은 내 자신 외에는 아내조차도 누구를 찍었는지 믿을 수 없다’는 푸념을 털어놓을 정도로 정치판은 불신과 배반이 난무하는 세계이다.
지금 약계(藥界)는 병. 의원 문전(門前) 약국으로 옮겨가기 위해 선후배 인연은 물론 십년지기(十年知己)의 우정마저 내팽개친 채 철면피를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개인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다. 이런 의약분업 풍토에서 처방전을 포기한 채 엄청난 돈과 시간을 퍼부은 대가로 배신을 당하고 끝내 그 자신도 배반을 서슴지 않는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감수하면서까지 회원들의 권익을 위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약사는 과연 몇이나 될까.
약사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선 일부 회원의 희생을 강요하기 보다 약사회 차원에서 약사 후보자나 특정 정당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약권(藥權) 성금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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