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정부가 분만병원 지원을 위해 투입한 2600억원이 오히려 산부인과 병원의 인력난을 부추기고 있다는 쓴소리가 나왔다.
특례시와 광역시 간의 차별, 생활권을 고려하지 않은 지원 등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어 정책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회장 김재연)는 13일 롯데호텔 서울에서 추계학술대회 기념 기자가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의사회는 산부인과가 심각한 위기상황 이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먼저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분만병원 지원 정책이 오히려 산부인과 병원의 인력난을 심화시켜 폐업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례시와 광역시에 대한 개념 정리 없이 지원금을 차등 지급하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것.
이인식 부회장은 “특례시는 광역시보다 인구밀도와 의료인프라가 훨씬 앞서 있지만, 광역시가 아니라는 이유로 분만 건당 110만원을 지급하는 반면, 광역시는 55만원을 지급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서울과 경기, 인천과 경기는 같은 생활권임에도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지원금을 차등 지급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다”고 말했다.
실례로 서울은 지역 가산제도에서 제외된 이후 인력난을 겪으며 병원을 유지하기도 힘든 상황이라는 전언이다.
그는 “경기도 산부인과에서 지역가산으로 월급을 대폭 올려 서울 지역 산부인과는 인력 확보가 어려워 병원을 유지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분만병원은 24시간 365일 의사, 간호사 등 다양한 팀이 가동돼야하는데, 24시간 근무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4월 이후 인건비가 대폭 상승하면서 경영난이 심화돼, 40년간 운영해온 병원을 문 닫을 수도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 이 부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현 지역 가산제도는 특례시와 광역시 간의 차별, 생활권을 고려하지 않은 지원 등 문제를 안고 있고, 이는 분만병원간 부익부 빈익빈 상황을 초래해 분만 의료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며 “지속가능한 분만 의료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개선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더해 산부인과의사회는 산부인과의 위기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산부인과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중 의료인력 부족현상이 가장 심각하며, 레지던트 임용 대상자 474명 중에서도 남은 산부인과 전공의는 38명, 사직한 전공의 중 산부인과 의원에 취직한 경우도 48명에 불과하다는 것.
의사회는 산부인과 의사 이탈의 주요 원인으로 ▲열악한 근무환경 ▲낮은 보상 ▲높은 소송 위험 등을 꼽았다.
조병구 총무이사는 “대다수 대학병원의 산과 교수는 1~2명뿐이며, 62%는 한 달에 6~10회 이상 당직을 서는 등 혹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고 있다”며 “임산부를 돌봐서 건강보험으로 받는 보험수가는 매우 낮고, 건강보험 진료에 따른 원가 보전율은 6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고위험 임신을 맡다보니 소송 위험이 높고, 최근에는 산과 소송에서 10~15억원에 이르는 배상 판결이 나오고 있다”며 “출생률 감소와 함께 분만을 책임지는 산부인과 병원의 폐업 현상이 심각한데,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는 2018년 555개소에서 올해 425개소로 줄어들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심지어 전국 시군구 250곳 중 22곳은 산부인과가 없고, 산부인과가 있더라도 분만실이 없는 곳이 50곳으로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약 30%가 분만실이 없다는 것.
그는 “고위험 산모와 태아의 진료를 담당하는 전국 대학병원 산과 전문의 중 4명 중 3명은 사직을 고민하고 있다”며 “산부인과 위기는 단순히 의료계의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사회 전체의 문제로, 저출산 문제 해결과 국민 건강 유지를 위해 정부는 산부인과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한다”고 역설했다.
이 가운데 산부인과의사회는 ‘분만사고 배상 국가 책임제 전환’을 요구했다.
지난 2월 정부는 형사처벌 특례법 체계 도입을 전제로, 의사 또는 의료기관의 책임보험과 공제가입을 의무화하고, 손해배상과 보험료 적정화를 반영한 공제를 개발, 운영하기 위한 의료기관 안전 공제회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보험은 일부 민간보험과 대한의사협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의료사고배상공제’에서 맡고 있다.
이중 2022년 3월 현재 의료사고배상공제에 가입한 의원은 34%(1만 6033명), 병원은 19%(813개)로, 최대 보상 5억원 기준 연 보험료로 외과계가 1200만원, 산부인과는 1173만원, 내과계는 120만원을 부담하고 있다.
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은 “정부가 필수의료 분야 의료인에 대한 보험료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내년 예산에 94억원을 신규 배정했고, 산부인과 개원의에겐 14억 3900만원을 지원한다”며 “이는 분만실적이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 621명에게 1인당 463만 5500원의 보험료 50%를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분만 산부인과 의사배상보험료는 1173만원인데 반해 1인당 463만 5500원의 보험료를 50% 지원하는 건, 턱없이 부족하게 산정한 것”이라며 “기존 의료인들이 가입한 의협 공제회와 각 진료과에서 운영 중인 다양한 의사 배상보험이 있는데도, 중복 기능이 예상되는 ‘의료기관 안전 공제회’를 설립하려고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의료기관 안전 공제회의 설립을 중단해야한다”며 “분만실적이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 621명에게 1인당 463만 45500원의 보험료를 50% 지원하는 방식을 중단하고, 분만사고 배상 국가 책임제로 전환해야한다”고 요구했다.
그 이유로 “법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주는 것처럼 하고, 이해당사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제도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며 “지금 현재 산부인과 교수들이 50대로, 10년 후면 환갑을 넘기는데, 이렇게 되면 분만현장은 더욱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