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김성수 감독의 <비트>는 슬픈 영화다. 환규( 임창정)의 절친인 민( 정우성)이 환규가 사랑하는 여자와 잠을 잤기 때문이다.
잘못된 만남도 이런 잘못된 만남이 있을 수 있나. 허나 이것은 약과다. 이 영화가 진짜 슬픈 이유는 주인공들이 처참하게 죽어 나갔기 때문이다. 살지 않고 죽는 영화는 나를 울게 만드는 새드 무비가 틀림 없다.
대학 입시를 앞둔 학교는 그야말로 지옥이다. 학교가 지옥인 것은 세기말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지만 야구 방망이로 얻어 터지는, 교사의 학교 폭력이 다반사였던 당시는 지옥 그 이상이다.
태수( 유오성)는 일찌감치 주먹의 길로 접어들었다. 깡패로 성장하겠다는 것이 인생 목표다. 재벌이나 건달이나 성공하면 똑같다는 것.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알고 가는 자의 당당함이라니. 그것이 비록 잘못된 길이라고 하더라도 일단은 멋져 보이는데.
민은 아버지가 없다. 죽었는지 어디 다른 곳으로 갔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외간 남자와 논다. 창문으로 그 모습을 지켜 본 민에게 엄마의 남자 친구가 하는 인생 당부의 말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다.
민은 생각한다. 냉면 발처럼 가늘고 길게 가는 평범한 삶을 살겠다고.
양아치 짓을 하는 환규는 마음을 다잡는다. 근사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꿈을 갖고 있다. 그 꿈이 이뤄진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나 꿈은 꿈일 뿐이고 현실은 현실일 뿐이다.
이 세 명의 남자와 로미( 고소영)는 영화를 이루는 중심축이다. 잘생긴 민과 예쁜 로미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그때는 노예팅이라는 것이 있었다. 십 만원 주고 산 노예 민은 주인 로미의 말을 잘 따라야 하는 게 맞다.
콜하면 바로 달려와야 한다. 하지만 노예 주제에 번번이 엇나가는 짓을 한다. 한 번 나가면 죽을 때까지 돌아오지 못하는 원양어선의 멍텅구리 배로 다시 팔아도 할 말 없을 터.
하지만 로미는 그런 나쁜 주인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공부를 잘한다. 집도 부자다. 일등을 도맡으니 서울의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남자 친구와 놀면서도 잘한다. 아니 노는척 하지만 실제로는 공부한다. 야구장에 간 것처럼 꾸민다. 그런 로미에게 경쟁자들은 주눅이 든다. 친구 가운데 한명이 시험을 망쳐 들어오는 전차에 몸을 던진다. 충격과 공포.
이 일로 로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로미의 방황. 한 번 넘어졌으면 다시 일어나야 하는데 로미는 계속 쓰러져 있고 싶어 한다.
한편 태수는 종횡무진 활략이 대단하다. 어린 나이에 보스의 눈에 들었다. 겁대가리 없는 젊은 건달의 눈에 사람 목숨은 장난감이다. 철거 깡패는 쉬운 일이다. 허나 잘 나가는 때가 있으면 그렇지 않은 때도 있는 법.
그걸 모르는 태수는 감방 신세를 진다. 그는 들어가기 전 민에게 선물을 준다. 밟으면 300은 나가는 오토바이. 민은 그 오토바이를 타고 새벽 도로를 질주한다. 로미가 보고 싶거나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면 텅 빈 아스팔트에서 두 손을 놓고 바람에 몸을 맡긴다.
뱃머리의 <타이타닉>도 아닌데 그 모습은 오래 잔영에 남는다. 영화의 명장면이라고나 할까. 감독은 컷을 외치면서 안면 가득 웃음을 터트렸을 듯. 됐어, 이 정도면 성공이야 뭐 이런 만족감이었을 것이다.
감독이 웃고 있을 때 배우들은 울고 있다. 태수를 중심으로 싸움질이 그칠 날이 없다. 화면은 일그러지고 빠르게 장면이 바뀌어 눈이 나쁜 관객은 어지럽지만 얻어터지고 피를 흘리는 태수를 생각하면 참아야 한다.
천성이 착한 민은 주먹질을 아낀다. 함부로 쓰고 싶지 않다. 태수는 그런 그를 급하면 부른다. 친구의 우정은 이런 때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니지만 피가 끓는 민은 태수를 구하기 위해 질주한다.
타고난 싸움꾼 민을 태수의 보스는 끌어들이고 싶어한다. 민은 거기에 발을 딛는 대신 환규와 분식집을 차린다. 떳떳하게 벌어서 먹고 싶다. 하지만 잘 될까. 세상 물정 어두운 민과 태수는 다 털린다.
환규는 분노한다. 동네 건달에게 돈까지 상납하면서 잘해 보겠다고 다짐을 했건만 무너진 가게 앞어서 눈이 돌아간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환규의 한 성질이 볼만하다. 뒤처리는 언제나 민의 몫.
영화는 어느새 종말로 치닫고 있다. 주인공들은 아직 살아 있다. 여기서 끝을 맺을 수는 없을 터. 태수는 나이답지 않게 큰 꿈을 꾸고 있다. 조직의 보스를 치고 자신이 그 자리에 있고 싶다.
똘마니들을 긁어모아 기습을 하는데 보스는 미리 알고 대기하고 있다. 결과는 뻔할 뻔 자. 태수는 갔다. 민의 품에 안겨서.
민은 태수를 잊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로미를 찾아서 함께 뉴욕이나 파리로 유학을 가야 한다. 환규의 충고를 들었어야 했다. 넌 건달 밥 먹을 놈이 아니다, 그러니 태수 따라 다니다 X되지 말라는 말을 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민은 그러지 않았다. 감독은 민이 그렇게 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담배 사러 편의점 간다는 말이 로미와 민이 나눈 마지막 말이었다. 금방 돌아온다고 해 놓고선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죽음의 순간, 로미를 찾고 태수를 부르고 환규를 외쳐 본들 무슨 소용 있으랴. 젊은 청춘의 생은 여기서 끝났다. 가늘고 길지 않고 굵고 짧다. 그러니 <비트>는 슬픈 영화가 맞다. 친구의 여친과 잠을 잔 비열함 때문이 아니고 우정을 지키다 목숨을 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그게 어찌 슬픈일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면 그런 것이다. 슬프지 않고 기쁜 것이라고 봐도 된다. 뭐, 영화에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니까. 이런 걸로 싸울 일 없다. 날도 더운데.
국가: 한국
감독: 김성수
출연: 정우성, 고소영
평점:
팁: 영화를 보고 기시감을 느끼는 관객들이 제법 있겠다. 홍콩 영화가 떠오르거나 왕가위 감독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맞는 부분도 있고 비슷한 장면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독자적이다. 누군가는 한국 청춘 영화의 레전드급이라고 말한다. 맞을 것이다. 이 시대 이런 영화가 나온 것만으로도 한국 영화계는 축복을 받았다.
<서울의 봄>이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두 작품 간의 시차는 길지만 <비트>가 없었다면 <서울의 봄>도 나오기 어려웠을 터.
정우성과 고소영의 젊음을 보는 것만으로 영화의 본전은 이미 뽑고도 남았다. 간혹 장면들이 중간 중간 끊긴다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그만하면 스토리도 탄탄하다.
이쯤해서 슈 탐슨이 부른 ‘새드 무비’나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을 들어보자. 여운이 길게 간다. 아니면 민이 좋아하는 비틀즈 노래를 실컷 들어도 상관없다.
올 봄 재개봉을 놓친 관객이라면 사라지기전에 넷플릿스에서 꼭 찾아 관람하기를 권한다.
가능한 한 혼자 말고 둘이서. 약속이 있다는 말에 속아 혼자 영화관에 가지는 말자. 나의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있는 애인을 만나기 싫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