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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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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
  •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승인 2024.09.02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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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약 먹은 응급실 전문의, 돌아오지 않는다

[의약뉴스]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 주인공에게 빨간약을 먹을지, 파란약을 먹을지 선택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주인공은 빨간약을 먹고 거짓된 세상을 떠나, 진짜 세상을 만나게 되는데 현실에서 이러한 체험을 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 이탈의 심각성을 영화 매트릭스에 빗대 ‘빨간약을 먹는다’고 표현했다.

▲ 이형민 회장.
▲ 이형민 회장.

코로나19 팬데믹부터 시작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응급실 이탈은 올해 초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불을 붙이면서 본격적으로 늘어났다. 의료취약지를 중심으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이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응급실은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에도 운영할 수밖에 없어 이미 병원에서는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가급적 적은 인력으로 응급실을 운영해왔다.

응급의학의사회에 따르면 연간 응급환자 1만 명 이하의 응급실에는 총 6명의 응급의학과 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지만, 우리나라는 전문의 5명 이상이면 권역응급센터로 지정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최근 근무 중 환자가 열 명 누워있었는데 한 명이 갑자기 나빠져 30분 동안 지켜봐야했다”며 “바꿔말하면 9명은 방치된 셈으로, 응급실 밖엔 환자 5명이 더 있던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것이 과연 안전한 상황인가”라며 “나머지 14명은 병원엔 왔지만 의사가 없는 상황으로 상태가 안 좋아진 환자가 한 명 만 더 있었으면 둘 중 하난 죽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힘들고 어렵고 취약한 지역일수록 인력을 더 많이 잃었다”며 “평년보다 많은 이직이 이뤄지면서 지역의 불균형을 야기, 그나마 유지되던 응급실이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더해 “최후의 보루로 버티고 있던 전공의들이 떠나면서 해당 지역의 최종치료 역량이 떨어져 전체적으로 문제가 생기고 있다”며 “충남과 강원도 지역이 그랬고, 이제 부산ㆍ경남ㆍ전남 가릴 것 없이 퍼져 그 여파가 수도권까지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장은 업무가 과중한 의료취약지를 중심으로 응급실 의사 이탈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 지역에서 치료받을 수 없는 환자가 결국 수도권으로 몰리고, 이로 인해 수도권 응급실 업무 역시 과중돼 연쇄적으로 무너질 것이란 지적이다.

이 회장은 “이제 쉰밖에 안 됐지만, 응급실을 그만둘까 고민 중"이라며 "예전엔 당직을 해도 5시간 정도면 회복했지만 이젠 이틀은 지나야 하다보니, 건강이 악화하거나 일을 지속하기 힘들 것이라는 불안감이 크다”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태 초기 정부가 은퇴한 의사 데려오겠다고 해서 많이 웃었다"며 "은퇴한 분들이 응급실에서 어떻게 버틸지 의문”이라고 힐난했다.

이어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응급의료현장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라고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이 회장에 따르면 사직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개원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다. 최근 응급실 붕괴 사례로 언급되는 병원에서 사직한 전문의들도 연말까진 쉬겠다고 했다는 전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개원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부터 시작된 이러한 움직임은 의대 정원 증원 사태로 가속화되고 있으며, 실제로 10% 수준이었던 응급의학과 개원의가 최근에는 20% 수준으로 증가했다는 것이 의사회측의 설명이다.

이 회장은 “이 같은 상황을은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빨간약을 먹는 것과 비슷한데, 응급실 의사들은 응급실에서 일할 때 그곳이 세상 전부인 줄 안다”며 “그러다 응급실이 아닌 곳에서, 야간 근무와 당직이 일상이 아닌 곳에서 일하게 되면 얼마나 다른지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밤에 일하는 것과 낮에 일하는 것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느끼면 다시는 밤에 일하고 싶지 않다”며 “이어 응급실 일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고 과하기 때문에 한 번 나간 사람이 다시 돌아오기란 정말 힘들다”고 전했다.

다만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개원을 원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응급실에서 버틸 수 없어 개원가로 밀려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는 “최고의 컨디션으로 일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하지만, 응급실은 그렇지 않다”며 “그러다 보니 내가 졸리면 환자들 다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 이형민 회장.
▲ 이형민 회장.

이에 이 회장은 정부가 응급의료에 대해 단편적인 대책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응급실이 나아갈 방향부터 정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을 방문한 경증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90~100% 상향하는 등 정부의 대책은 방향이 틀리지는 않았지만, 세부적인 내용에 상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경증 환자 제한의 경우에도 불가피하게 대학병원 응급실을 방문할 수밖에 없고, 형편이 좋지 않은 환자들이 있어 구분이 필요하다”며 “무작정 비용만 올려버리면 그에 대한 비난은 의료계로 향한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경증이라도 한 병원에서 연속적으로 치료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어쩔 수 없이 대학병원에 가야 하는 환자도 있으며, 다른 병원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어 오는 환자도 있다”면서 “세밀한 접근이 필요한 상황인데, 경증 환자 본인부담금을 한 번에 올린다면 응급실 200곳 이상이 망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무엇보다 “경증 환자를 막겠다면 국민을 설득해 동의를 얻고 비용이나 법으로 시스템적인 장벽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는 정부가 할 일이지만 그 책임을 의료기관에 떠넘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응급실의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그 과정에서 감내할 부담과 비용 등에 동의하고 나아갈 수 있으며, 경증환자 제한을 위해 금액이나 법, 시스템으로 장벽을 세우는 것도 정부가 명확히 나서서 해야 한다"면서 "본인부담금만 올려서 의료계에 떠넘기는 식으로는 효과도 볼 수 없고, 환자와 의료인 간의 신뢰만 저하시킬 것”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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