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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 디 아워스(2003)- 꽃을 사자, 존재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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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 디 아워스(2003)- 꽃을 사자, 존재하기 위해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4.07.26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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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삶은 늘 인간의 관심사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살아갈 뿐이라고 말한다. 존재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고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산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존재에 대해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고뇌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한다. 어떤 삶이 더 좋은 삶인지, 더 바람직한 삶인지를 규명할 수는 없다.

각자는 각자에게 주어진 세상을 살아갈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 세 여자가 있다. 이들은 그냥 살기보다는 존재하는 여성들이다. 그러니 늘 고민과 고뇌가 일상을 지배한다. 1921년 영국 런던 외곽 리치몬드. 버지니아 울프( 니콜 키드먼)는 <댈러웨이 부인>을 쓰면서 주인공을 아주 사소한 일로 죽여야겠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의 생과 사는 작가에 달려있는 만큼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생각은 바뀔 수 있고 작품은 샛길로 빠질 수 있다. 주인공이 죽느냐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당장은 울프의 삶이 더 궁금하다.

그녀는 실제처럼 영화에서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울프를 언니는 이해하기보다는 의사에게 먼저 데려갈 생각만 한다. 파티장에 가서 기분 전환도 시키고 뭐 이런저런 다른 관심거리도 가져다 주면 좋지만 오직 의사만이 울프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울프는 아니다. 숲에서 어린 조카는 죽은 새를 보고 사람도 죽으면 새처럼 평온해 지는지 묻는다.

울프가 영국의 작은 도시에서 이렇게 고뇌하고 있을 때 시간은 훌쩍 지나 1951년 미국 엘에이에서는 로라( 줄리안 무어)가 아들과 케익을 만들고 있다.

▲ 작가 버지니아 울프 역으로 나온 니콜 킬드먼은 우수어린 눈빛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작가 버지니아 울프 역으로 나온 니콜 킬드먼은 우수어린 눈빛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성실한 남편 생일을 챙기기 위해서다. 열심히 케익을 만들던 로라는 이런 일상에 갑자기 진저리를 친다. 변함없는 오늘이 죽도록 싫다. 케익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녀는 서랍의 약병을 있는대로 챙겨서는 아들을 떠나 어느 낯선 호텔에 투숙한다.

로라는 죽기로 결심한다.

침대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다. 그리고는 죽기보다는 살기를 택한다. 집으로 온다. 그리고 케익을 다시 만든다. 불임 수술로 우울한 그녀의 친구 키티를 보고 로라는 위안을 삼는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은 남편이 아닌 그녀인지도 모른다. 둘은 아들이 보는 앞에서 사랑이 가득한 키스를 한다.

다시 장면이 바뀌어 2001년 뉴욕.

클라리스( 메릴 스트립)는 꽃을 사고 기분이 붕 떠 있다. 옛 애인 리처드의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파티를 열 계획이다. 한때 사랑했던 남자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 에이즈 때문에 상을 주는 것이라고 리처드는 시상식에 가지 않겠다고 버틴다.

클라리사는 그런 리처드가 안쓰러우나 한편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위로하고 설득하고 어떻게든 그를 시상식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파티는 리처드의 마지막 파티가 될 것이다.

과연 파티는 무사히 마무리 됐을 까.

울프는 작품을 완성하고 주인공을 죽이지 않고 그녀가 너무나 사랑하는 남편 레너드와 함께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을까.

로라는 남편의 생일 케익을 완성하고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까. 아니면 아이를 출산하고나면 어디 먼 곳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기로 작정했을까.

이 모든 것이 삶과 죽음과 인생으로 연결되면서 영화는 지금을 사는 사람들에게 인생에 대해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국가: 미국

감독: 스티븐 달리드

출연: 니콜 키드먼, 메릴 스트립, 줄리안 무어

평점:

: 1925년 버지니아 울프는 장편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썼다. 1차 대전이 끝나고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을 때였다.

자연히 삶과 죽음과 일상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궁금했다. 소설 속에는 영화처럼 그런 것들이 들어 있다. 한데 원작은 울프의 소설이 아니라 1999년 퓰리처상을 받은 마이클 커닝햄의 <세월>이다.

따라서 영화는 소설과는 다르다. 물론 클라리사나 리처드나 로라 등의 주인공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시공간을 넘나들거나 주인공 울프가 작품을 쓰면서 고뇌하는 장면 등은 새롭다 못해 신선하다.

잘 알다시피 울프는 주머니에 돌을 가득 채우고 강에 들어가 죽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울프는 실제로 그렇게 해서 죽는다. 모든 날 중에서 바로 그날이 오늘임을 분명히 알게 됐기 때문이다.

죽음은 울프에게는 새로운 삶을 의미했다. 그녀는 너무나 사랑했던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삶을 치열하게 살면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았지만 이제 그 삶을 접을 때가 됐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죽음은 남은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그러기 전에 우리는 클라리사처럼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꽃을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 기왕이면 암울보다는 환희를 불러일으키는 수국이나 장미라면 더 좋을 것이다.

꽃만큼 우리를 행복한 웃음으로 이끄는 것은 없다. 자기 이름 없이 누구 부인, 누구 엄마에 갇혀 사는 세 여자의 일상 탈출을 위한 하루로 본 인생 이야기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한 편의 시 같은 영화를 완성했다.

한편 울프 역의 니콜 키드먼은 황홀한 눈빛 대신 우울 어린 시선으로 완벽한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세 여자 주인공의 연기력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내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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