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이창 (1954)

2012-07-09     의약뉴스

여기 한 사내가 있다. 

사건 현장에서 사진을 찍다 발을 다쳐 7주간 기브스를 해야 하는데 6주가 지났다. 1주일만 있으면 길고 가는 나무를 석고 속에 집어넣어 가려운 곳을 긁지 않아도 된다.

그 1주일간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다. 사건 만큼 이나 정교하게 짜여진 뉴욕 아파트의 세트가 공간이다.

하루 종일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하니 얼마나 답답할까. 답답함을 풀어준 것은 다름 아닌 아파트 맞은편에 사는 인간 군상들을 몰래 훔쳐보는 것이다.

엿보기가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지는 한 번이라도 내 몸을 숨기고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대편의 모습과 움직임을 관찰해 본 사람은 안다. 주인공인 제프리스 (제임스 스튜어트 분)는 이제 엿보기에 길들여져 있다.

시간이 갈수록 가히 관음증적 편집증을 보인다. 법적으로는 문제될게 없을지 몰라도 도덕적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사생활 침해가 그의 유일한 취미다.

발레를 하는 젊은 여자와 고독을 씹는 중년의 여자, 사랑에 빠진 신혼부부 그리고 아픈 부인을 돌보는 남편, 베란다에서 잠을 자는 개를 좋아하는 노년의 부부, 피아노 솜씨가 일품인 작곡가 등 우리네 이웃 풍경이 고스란히 사내의 눈에 들어온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내는 부인을 돌보는 남자의 이상한 행동을 목격한다. 맨 눈으로 보는 대신 쌍안경이 등장한다. 그도 성이 안 차는지 사진 전문가 답게 대포로 불릴만한 망원렌즈까지 달고 남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한다.

긴 칼과 톱이 보이고 밧줄로 장롱을 묶고 아내의 귀금속을 챙기는 모습이 고스란히 파인더에 잡힌다. 사내는 살인사건이라고 단정 짓고 형사 친구 도일에게 연락한다. 압수수색을 하면 모든 것이 다 드러날 텐데 형사는 수색영장 등 이런저런 법적인 이유를 들어 친구의 요구를 묵살한다.

이런 와중에 남자는 목욕탕을 청소하는 등 사건 처리를 마무리하고 곧 떠날 채비를 한다.

제프리스는 애가 탄다. 그는 참 아름다운 여자 리사 (그레이스 켈리 분)와 간지러운 사랑 싸움으로 옥신각신 하는데 리사가 사건 현장으로 뛰어 들면서 두 사람의 애정전선이 동지의식으로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를 간호해 주는 한 성질 하는 늙은 여자 스텔라 ( 셀마 리터 분) 도 두 사람과 함께 사건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아끼던 강아지가 죽자 늙은 부인은 히스테리 발작이라도 난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그 장면을 모든 아파트 주민들이 지켜 본다. 그러나 단 하나, 그 남자의 집은 불이 꺼져 있다. 제프리스의 확신은 굳어진다.

화단을 다시 파보기도 하고 우편물의 내용과 수취인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치밀한 남자의 꼬리가 잡히지 않아 관객들은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마침내 리사는 남자를 유인한 제프리스의 계략으로 남자의 빈 집에 들어가 죽은 부인이 남긴 결혼반지를 증거로 확보한다.

이제 모든 것이 드러났다. 하지만 클라이막스는 이제부터다.

자신을 엿본 사내의 정체를 확인한 살인범이 제프리스의 집에 들이닥친다. 휠체어의 사내는 카메라 후레쉬를 터트리며 저항을 해 보지만 속수무책이다. 살인자는 사내를 창으로 밀어 부치고 아래로 떨어 뜨리려고 한다.

이때 경찰들이 달려오고 남자는 떨어져 나머지 성한 다리마저 기브스를 한다. 살인범과의 심리대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고조되는 공포 , 사건이 묻힐 뻔한 아슬아슬한 순간 , 남녀의 애정다툼 등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이창' (원제 REAR WINDOW)에서 그가 왜 공포물의 거장인지 명확히 증명한다.

짜증나고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요즘, 이 영화를 보면서 서늘한 공포를 체험해 보는 것도 여름을 이겨내는 한 방법이겠다. 은퇴 직전 보여주는 그레이스 켈리의 놀랍도록 요염하고 생기넘치는 키스신을 보는 것은 덤 그 이상이다.

남녀의 사랑이 살인사건을 해결 하면서 결합되는 과정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제프리스는 숨어서 늘 남을 훔쳐 봤는데 영화 마지막에서는 아파트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쳐다본다. 역시 히치콕이다. )

국가: 미국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출연: 제임스 스튜어트, 그레이스 켈리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