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증 900%, 공식가격의 1/10 불과"
"김용익 교수 작성한 글" 일파만파
2004-01-05 의약뉴스
지난 달 26일 '내과의사'라는 필명을 가진 이는 이 글을 건강세상네트워크의 자유게시판에 올리며, "의약분업의 당위성을 윤리적인 호소로 시작을 했던 김용익 교수의 당시 글입니다. 의약분업이 안되어서 모든 의료계 문제가 생긴다고 했습니다. 이제 약은 모두 약사에게 가 있습니다. 해결되었습니까? 대체 조제가 안되어서 아직 안된다고요? 헛소리는 하지 맙시다."라고 평했다.
글의 내용은 자못 충격적이다. 의사들이 치료에 효과가 있는 최적의 의약품보다는 이윤이 많이 남는 약을 처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약업계는 얼마되지도 않는 생산인력으로 카피품목을 만들어 난립하고 있는데, 이는 의사에게 로비만 하면 회사가 막대한 이윤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보험약가도 근거가 부족한 채 터무니 없이 부풀려져 있고, 할증이 900%에 이르는 경우도 있어 국민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나아가 복지부 공무원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며, 비리를 방치하고 있다는 식으로 비난하고 있다.
아래는 게시물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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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께서도 짐작하시다시피, 의약품에 얽힌 비리는 뿌리가 깊고, 방법도 다양하며, 그 액수도 어마어마합니다.
병원에서 약을 구입하는 과정에서는 계약시 할인, 중간 결재시 다시 할인, 최종 결재시 또다시 할인을 하는 일이 많고, 임상연구비, 기부금, 장학금, 학회 참가 보조금 등 실로 다양한 형태의 비밀스러운 거래들이 오고 갑니다. 어떤 약이 병원에 새로 들어가려면 소위 '랜딩비'라고 하는 채택료가 주어지고, 그 후에도 '리베이트'라 불리는 상납이 주기적으로 계속된다는 정도는 이제 널리 알려진 일이 되었습니다.
의원과 약국에서는 소위 '할증' 이라고 하는 방식이 흔히 쓰입니다. 할증이 100%라고 하면 공식적으로 구입한 약품 한 갑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한 갑을 더 얹어주는 것 입니다. 할증율이 900%에 이르는 약도 있다고 합니다. 이 경우 실거래 가격은 공식적인 가격의 1/10에 불과한 것이지요. 물론 이 때 의사들은 약을 사용한 만큼 의료보험에 청구하여 공식적인 약가대로 진료비를 받아 냅니다. 이것이 할증의 묘미입니다.
대통령님, 이런 부조리가 국민들에게 주는 피해는 무서운 것입니다.
의사들이 약을 선택할 때 의학적으로 최적인 약(drug of choice)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이윤이 제일 많은 약을 고르게 되기 때문에 환자들은 최선의 약을 쓸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비싼 약값을 치러야 합니다. 소위 '마진'이 좋은 약이란 항용 훨씬 더 비싼 약이기 때문입니다. 대학병원들이 1차 항생제를 버려 두고, 3차 항생제부터 쓰는 일은 이미 오랜 전부터 의사들간에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은 이러한 판촉 방식이 의사 들의 양심을 마비시켜 버린다는 것입니다. 타락할 만한 나이가 된 중년의 의사들만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공의나 공중보건 의사 등 20대의 젊디젊은 나이에서부터 이 병균에 노출되어, 30대 중반 개원을 하거나 병원에 봉직하게 될 때쯤에는 이것을 병의원 경영의 필수 불가결한 요령으로 보는 '현실주의자'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시시때때로 매스컴에 터져 나오는 병의원 비리 보도를 보면서 의사들은 말할 수 없는 분노와 모멸감 속으로 빠져들고는 합니다.
대통령님, 그러면 이런 의문이 안 드시나요? 제약회사는 어디서 돈이 나서 그렇게 많은 돈 을 뿌릴 수 있을까요? 아무리 경쟁이 치열하고, 병의원의 요구가 거세다 하더라도 제약회사 도 기업인데 이문이 없으면 그런 장사를 하겠습니까? 그 비밀은 의료보험 약가의 산정 과정에 있습니다. 의료보험이 지불하는 의약품 가격이 실거래 가격 보다 두배, 세배, 아홉배 이상 너무 높게 설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의보약가는 의료보험 약가심의위원회가 결정하는데, 각 제약회사들이 제출한 원가계산 자료를 기본으로 삼아 '서류 심사'로 책정합니다. 그리고 그 원가자료란 두 배쯤 부풀려져 있는 것이 보통이라고 합니다. 그보다 심한 것은 수입가격을 기준으로 정하는 수입의약품의 보험약가 입니다. 외국회사와 결탁하여 몇 배로 부풀려진 가짜 가격 자료를 기준 으로 의보약가가 정해지기 일쑤라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심의위원회가 보건복지부나 의료보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한제약협회 산하에 설치되어 있는 것입니다.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 지 겨우 4년 후인 1981년부터 그랬습니다. 보건복지부의 의보약가 담당직원은 아예 제약협회에 나가 근무를 한다고 합니다.
대통령님, 이런 방법을 통해 의보재정에서 제약업계로 엄청난 금액이 부당 유출됩니다. 이것이 의약품 비리의 원천이 되어 전국의 병의원과 약국에 뿌려지고 있습니다.
부당 유출된 액수를 여러 가지 근거로 추정해 보면 연간 1조5천억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줄잡아도 1조원은 훨씬 넘습니다. 금년에 의료보험이 지출할 총비용이 8조 5천 억원 정도이니 1조 5천억원은 그 18%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실상을 알고 보면 의약품 비리란 단순한 비리가 아니라, 의료보험 → 제약회사 → 병의원/약국으로 가는 비공식적인 재정기전이었던 것 입니다. 기가 막히는 것은 그 현실을 보건복지부의 간부들 모두가 다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님, 이런 안이한 길이 있기 때문에 한국의 제약산업은 정상적인 발전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1995년 자료로 연간 4조 9천억원의 의약품을 생산판매하여 세계 10위의 의약품 생산국이면서도, 원료의약품은 거의 생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재료를 들여오거나 로열티를 내고 완제품을 국내 생산하여 판매하는 데 머무르고 있습니다. 특허기간이 지난 약을 복사 제조하여 판매하는 것이 소규모 제약사가 하는 일의 전부입니다. 한국에서 자체 개발한 신약이 없고, 수출 비율도 미미합니다.
모두가 과다한 이윤과 로비를 통한 판촉 방식이라는 손쉬운 경영에 안주하여 연구개발과 수출을 도외시한 결과입니다. 1992년 기준으로 제약기업은 매출액의 36.8%를 판매관리비로 쓰고 있었는데 제조업 평균은 11.4%이었습니다. 작년 통계로 제약업체 전직원의 34.4%가 영업직인 반면, 연구직은 6.3%에 불과했습니다.
품질은 안 좋더라도 복사제품을 생산하여 판촉 로비로 판매하면 되기 때문에 1997년 현재 총 455개의 제약회사가 난립하여 있는데 그 중 종업원 10인 미만의 업체가 85개나 됩니다. 10 명도 안 되는 직원을 거느린 제약회사가 도대체 무슨 약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요?
이런 상황에서 의약품의 품질이 어떻게 보장될 것입니까? 종업원 100명 이상의 업체는 147 개로 32.7%에 불과합니다. 조만간 시장이 전면 개방될 의약품 산업은 이러한 취약한 구조로 인해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대통령님, 의보약가를 실거래 가격에 맞게 전면 재조정하여 의보재정 의 유출을 막아야 합니다. 이것이 안되면 의약분업도 할 수 없고, 통합 일원화된 의료보험도 도저히 운영을 할 수 가 없습니다. 제약산업을 제대로 육성할 수도 없습니다. 의보약가를 정상화하여 가격과 품질 경쟁을 하게 해야 구조조정을 제대로 거쳐 제약산업이 육성됩니다. 이렇게 하면 각 병의원을 단속할 것도 없이 의약품 부조리는 저절로 없어집니다. 부조리의 샘물이 말라버리기 때문입니다.
의보약가를 정상화하라는 조치를 시급히 내려 주십시오. 통합의료보헙법이 이번 정기 국회에 상정되어 2000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고, 의약분업은 내년 7월 시행예정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의보약가의 재정비는 아무리 서둘러도 몇 달이 걸릴 대작업입니다. '검토해 보라'는 정도 로는 안되고, 내년 상반기 중으로 1조원 이상을 반드시 절감하라는 지시가 있어야 합니다.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국세청과 검찰에도 지시가 내려져야 합니다.
대통령님, 의약품 비리가 일어나는 샘물을 말려 주십시오.
이것이 의사와 약사를 구원하는 길이고 우리 국민을 살리는 길이고, 우리 나라의 보건의료를 새 출발시키는 길입니다. 이러 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우리 나라의 보건의료가 21세기를 온전히 맞이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대학교수로서 애써서 가르친 제자들이 도둑질하는 의사가 되는 것을 이제 더 이상 보 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김 용 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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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창민 기자(mpman@newsm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