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료분쟁조정법 시행되면 분만의사 포기

2012-01-18     의약뉴스 최진호 기자
최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의료분쟁조정법 중 “국가와 분만 실적이 있는 보건의료기관의 개설자가 각각 50%씩 재원을 부담토록 한다”는 법률이 본격 시행되면 분만의사를 선택했던 산부인과 전공의의 90%는 “분만의사가 되는 것을 고려해 보겠다”고 답했다.

이 같은 내용은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지난 해 12월 전국 산부인과 전공의 4년차(2012년도 예비 전문의) 60명을 대상으로 “의료분쟁조정법 시행령이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애초 분만을 하는 의사(분만의사)가 되겠다고 응답한 전공의 35명 중 90%가 분만의사를 포기하겠다고 답한 것이다.

설문조사 결과 현재 의료분쟁조정법 시행령이 입법 예고된 상태로 이 법률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저출산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산부인과의 의사 수급은 물론 산모 입장에서도 분만의사가 부족해지고 의료의 질도 저하되는 등 지금보다 더 큰 분만대란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전공의들의 90% 이상은 “의료분쟁조정법 도입은 산과의 안정적 진료환경을 해치고, 환자와 의사간 갈등만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산부인과의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모성사망 등에 대해서 산부인과 의사에게 ‘원죄’를 씌우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자괴감을 갖게 된다.”고 언급했다.

산부인과 전공의들의 29%는 근본적으로 분만을 담당하는 의사가 되는 것에 회의적이었는데 그 이유로는(복수응답) ① 분만 자체가 갖는 불가항력적인 상황 발생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다(87%) ② 분만관련 의료분쟁이 너무 잦기 때문(74%) ③ 응급이 많으므로 개인 여가시간이 보장되지 않아서(70%) ④ 낮은 산과 수가로 분만실 유지가 부담스럽다(57%) ⑤ 분만의사에 대한 사회의 존중 결여(39%)로 나타났다.

또 “수련 1년차 때 시행령이 발표됐다면 전공의 수련을 아예 포기했을 것”이라는 응답도 무려 44%로 나타났다. 실제로 2012년도 전공의 모집 기간 동안에 발표된 ‘의료분쟁조정법 시행령’의 영향으로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을 포기하는 사태도 속출했다.

이미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은 2006년 이후 ‘7년 연속 미달’을 기록하고 있고 (2006년 64%, 2007년 62%, 2008년 55%, 2009년 76%, 2010년 64%, 2011년 66%), 2012년도에는 정원을 20명 감원했음에도 69%에 그쳤다. 더구나 수련 기간 중에도 중도 포기자가 많아 산부인과 전문의 배출 수는 2000년~2004년 240~270명 선에서 최근에는 100명 미만으로 감소하고 올해 전문의 시험 응시자는 91명에 불과하다.

최근 산부인과 의원의 폐업이나 분만 포기로 인한 분만실 폐쇄 현상이 매년 증가하는 등 이미 국가적인 분만시스템의 붕괴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의료분쟁조정법이 시행될 경우 산부인과 전공의들이 수련을 포기하거나 분만을 하는 의사를 포기하는 사태가 속출할 가능성이 높아 분만시스템 붕괴현상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의료분쟁조정법 하위법안의 내용 중 보건 의료인이 충분한 주의 의무를 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발생되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 제도는 사회안전망의 의미로 도입되는 만큼,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의료기관이 부담하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또 산부인과학회는 "여러 차례에 걸쳐 우리의 의견을 제시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분만 실적이 있는 보건의료기관의 개설자가 각각 동등한 비율로 50%씩 부담토록 한 것에 대하여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표현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을 원죄처럼 책임져야 한다는 정부의 시각은 앞으로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을 더욱 하락시키고, 전문의들이 분만을 포기하게 만들어 필연적으로 의료의 질적 저하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분만병원이 없는 의료 소외지역을 증가시킬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건강한 분만과 출산을 저해하게 되어 국민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게 될 것이므로 산부인과 재원 부담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